[백일장 참여] 한국 가요계와 스티밋의 공통점 - 어느 신인 가수의 일상

안녕하세요, 글 쓰고 책 읽는 Bree입니다. @marginshort 님께서 듣기만 해도 정겨운 백일장을 연다고 하셔서, 저도 글쓰기를 좋아하는지라 어떤 글을 올릴까 열심히 생각해봤습니다. 그러다가 요 며칠 제 머리속에 맴돌던 이야기를 풀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짧은 소설 같은 이야기입니다. 그냥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


메롱 차트를 들여다보던 그는 한숨을 내쉬며 컴퓨터 창을 닫았다. 오랜 기간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고 발표한 그의 자작곡은 차트에서는 찾아볼 길이 없었다. 가수의 부푼 꿈을 안고 한 길만 걸어왔던 그는 드디어 싱글 앨범을 발표할 수 있게 됐다. 이젠 어엿한 신인 가수가 된 것이다. 하지만 그뿐, 세상 어느 누구도 그가 '가수'라는 걸 알지 못했다. 잊혀지는 게 아니라, 아예 알려질 기회조차 없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예견된 일이었다. 가요계에서는 인기가수와 무명 가수(그래, 신인 가수라기 보다 무명가수라고 하는 게 낫겠다)의 처지가 천지차이니까. 처음 가수가 되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 그의 목표도 역시 유명한 한류 스타였다. 아시아를 호령하는 한류 아이돌 가수 '고래'. 그의 손짓 하나에 모두가 환호했고, 거리에선 그의 노래가 울려 퍼졌으며, TV에선 채널을 돌릴 때마다 화면에 얼굴이 나왔다. 나도 열심히만 하면 저렇게 멋진 인기 가수가 될 수 있어! 그는 마음을 다잡으며 가수로 데뷔하기 위해 열심을 다했다.



그런데 막상 가까이에서 본 가요계는 그의 생각과는 달랐다. 실력이 좋다고 다 유명한 가수가 되는 것도 아니었다. 어떤 가수는 립싱크나 오토튠이 아니면 노래를 들어줄 수 없을 정도였지만 인기가 하늘을 찌르기도 했다. 말도 안 되는 엉터리 가사에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허접한 노래를 들고 나와도 언제나 그 가수의 노래는 차트에서 1, 2위를 다퉜다. 노래 실력은 개뿔도 없으면서, 그저 예쁜 얼굴과 섹시한 춤사위로 유명 가수가 돼서, TV예능에 수시로 출연하고, CF 하나에 수천만원을 버는 사람도 있었다.



반면 그가 아는, 정말 기가 막히게 노래를 잘 하는 한 가수는 라디오에 자기 노래가 한번 방송되는 게 소원이라고 말한 적도 있었다. 이렇게 실력있는 가수가 아직도 무명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노릇이었다. 한번 인기 가수로 이름을 알리게 되면, 그 다음에는 발표하는 노래마다 음원 차트에 줄을 세우곤 했다. 하지만 그렇게 뜨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노래를 알리기 위해 프로모션 하는 것도 돈이 많이 드는 일이었다. '스팀파워''파워업'처럼 유명한 기획사에 소속된 가수라면 상관이 없을 테지만, 소속사도 그저 그런, 돈 없는 무명가수는 꿈도 못 꿀 일이었다.



실력이 좋아도 꽤 오랜 기간 무명가수의 삶을 사는 사람도 많았다. 아무리 좋은 노래를 만들고, 실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눈 앞에 보상이 보이지 않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자기가 만든 자식 같은 노래들이 그냥 묻혀버리고, 생계를 꾸리기 힘들 정도로 노력에 대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자, 실력이 좋은데도 불구하고 가수를 그만두는 사람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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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그도 알고 있다. 가수의 꿈을 가진 사람들이 모두 다 자신처럼 음반을 낼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음반을 냈다는 것 자체로도 굉장히 대단한 일이고, 예전 선배 가수들이 초반에 고전했던 걸 생각하면 이건 정말 아기들 투정에 불과하다는 걸.



닫았던 컴퓨터 창을 켜고 다시 메롱 차트에 들어가봤다. 10위 안에 자신들의 노래를 모두 줄세우기 하고 있는 인기 가수들의 이름이 보였다. '고래', '내가고래', '너도고래', '난 돌고래', '준고래', '고래고래', '고뤠~?'...



이들은 뭐가 달랐기에 이렇게 인기있는 가수가 된 걸까? 그는 곰곰이 생각해봤다. '고래'는 노래를 기가 막히게 잘헀다. '내가고래'는 가창력이 뛰어나진 않았지만 춤과 퍼포먼스가 일품이었다. '너도고래'는 얼굴이 예쁘고 몸매가 좋았다. '난 돌고래'는 예능에서 활약이 두드러졌다. '준고래'는 고음을 내지는 못했지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고래고래'는 한번 들으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후크송을 들고 나왔다. '고뤠~?'는 랩과 스웩에서 따라올 자가 없었다.



인기 가수들을 하나씩 분석해보던 그는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그는 지금까지 "가수라면 당연히 노래를 잘 해야지. 가창력이 좋아야지."라는 생각만 했었다. 하지만 지금 인기있는 가수들의 면면을 살펴보니 그의 생각이 얼마나 편협했는지 알게 됐다. 메롱 차트를 점령한 이 인기 가수들은 각자 나름의 매력과 장점으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그건 고음일 수도 있고, 호소력 짙은 목소리일 수도 있다. 칼군무나 멋진 퍼포먼스일 수도 있고, 어여쁜 외모일 수도 있다. 화려한 입담이나 재치일 수도 있고, 뛰어난 연기 실력일 수도 있었다. 노래도 못 하는데 인기가 있다고 폄하할 일이 아니었다. 어쨌건 그들은 자신만의 매력이 있었기에 대중의 인기와 환심을 살 수 있었고, 당당히 인기 가수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건 어찌 보면 그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사실 그가 김연우나 국카스텐처럼 가창력으로 승부를 볼만큼 실력이 뛰어나진 못했으니까. 가수는 노래를 잘 불러야 한다지만, 자기보다 노래 잘 부르는 가수는 언제나 많은 법이다. 어쩌면 그도 자신만의 매력을 찾아서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 매력은 뭘까? 그는 종이에 적어내려가기 시작했다.

목소리. 춤실력. 자작곡을 만드는 능력. 기타 연주 솜씨. 외모.

그는 거울을 한번 힐끔 쳐다보고는 종이를 고쳤다.

목소리. 춤실력. 자작곡을 만드는 능력. 기타 연주 솜씨. 외모.

비록 인기 가수는 아니었지만 양심은 있었으니까.



마지막으로 컴퓨터 창을 닫기 전에 초록 창에 가서 자기 이름을 검색해봤다. 늘상 하던 일이라, 그리고 늘상 이렇다할 검색결과가 없었기에 별 기대는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뭔가가 그의 눈을 사로잡았다. 어느 네티즌의 개인 블로그였다.



"이 가수 노래 정말 좋은데 아무도 몰라서 속상하다. ㅠ.ㅠ 내 블로그에서라도 홍보해줘야지.
앞으로 노래 많이 많이 내줬으면 좋겠다."



배시시. 글을 보는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자기 노래 음원을 다운로드 해준 천연기념물 같은 사람이 어디에 있나 했더니, 이 사람이 그의 노래를 사줬나보다. 플랑크톤 같은 보상이었지만, 가슴이 뿌듯했다. 자신의 음악세계를 알아주고, 나를 인정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이렇게 행복한 일인지 미처 몰랐다. 내가 지금까지 헛발질 한 건 아니었구나, 안심이 됐다. 고마운 마음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컴퓨터를 끄고 집을 나섰다. 메롱 차트를 보며 슬퍼하는 건 그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저녁 바람이 시원했다.



그래, 나만의 매력을 찾고, 꾸준히 좋은 노래를 만들어야지. 나와 음악세계가 같은 사람들이랑 함께 소통해야지. 노래 연습도 열심히 하고, 만들다가 팽개쳐둔 자작곡도 완성해야지.
언젠가 인기 가수가 되리라는 꿈을 꾸며 작업실로 향하는 그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그 신인가수의 이름은 '뉴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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