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철학사의 계보에서 여성 철학자가 단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더 놀라운 건 내가 숱하게 서양 철학사를 접하면서도 그 사실을 단 한 번도 깨닫지 못했다는 것이다.
여성은 고대의 일부 문화에서(현재도 일부의 원시 문화에서), 아주 짧은 시간을 제외하면 늘 사회적 약자에 머물러왔다. 심지어 여성이 인간의 한 종류로 취급된 것도 꽤 최근의 일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여성을 조애, 즉 동물과 같은 비이성적 존재로 분류했다. 여성들이 참정권을 얻게 된 건 그 위대한 진보적 선진국에서 조차 채 100년이 되지 않는다.
한 마디로 철학이 말하는 인간은 남성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그들이 논하는 세계의 보편은 남성의 보편이지 결코 여성을 포함한 보편이 아니었다. 철학은 아주 오랫동안 여성을 배제해 온 것이다. 왜? 보편의 세계에 편입하기에 여성은 예외적 존재였고 비이성적 행동과 감성에 지배받는 예측 불가능한 괴물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 예수라는 사람이 보편적 사랑을 논하며 수고롭고 짐 진 자 모두를 하나로 묶는 모험을 감행했지만 그의 사후 교회는 철저히 여성을 쫓아냈고 그들의 역사에서 여성의 흔적을 지우기에 급급했다. 로마 가톨릭은 아직도 여자 신부를 용인하지 않는다. 일부 개신교의 목사들은 '여자가 생리대를 차고 교단에 오르는 건' 용납할 수 없다고 말한다.
20세기에 이르러 여성들이 철학사에 등장하기 시작하지만 그저 주변부를 맴돌 뿐이었다. 한나 아렌트 조차 초창기에는 그녀 자신으로서 보다는 하이데거의 연인으로 더 유명했다.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을 집필한 뒤 한나 아렌트가 없었다면 결코 그것을 완성하지 못했을 거라고 말했지만 이는 여성이 아직도 남자의 뮤즈나 위대한 '지지자'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었다.
이 책은 20세기에 등장한 6명의 여성 철학자 또는 사상가의 삶과 철학을 짤막하게 소개한다. 어떠한 계보로 묶인 것은 아니지만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세계, 대립과 차별을 낳는 이분법적 세계관, 거기서 소외된 경계인으로서 겪어야 했던 경험들을 독특한 사상으로 풀어낸 철학자들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크게 두 가지의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됐다.
첫째, 페미니즘은 단지 가부장제의 반담론이 아니라는 것이다. 남자가 갖지 못한 여성만의 특징을 강조할수록 여성은 과도하게 신격화 되어(예컨대 생명을 창조하고 보호하고 기르는 숭고한 존재) 스스로 그 판단에 취해 결국 가부장제가 지키려는 이분법을 더욱 강화시키는, 그리하여 그 체계에 포섭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여성은 남성과 다른 '또 하나의 인간'이 아니라 인간 그 자체여야 한다. 페미니즘의 목표는 여성을 남성과 똑같은 자격을 가진 존재로 인정 받는 것으로 그쳐선 안된다. 이러한 논의는 결국 남성의 '승인'을 필요로 할 뿐만 아니라 여자답지 못한 여자, 혹은 남자답지 못한 남자를 경계 밖으로 몰아내는 폭력을 자행한다. 여자는 절대로 '또 하나의 남자'가 되서는 안된다.
둘째, 보편이라는 이름이 가진 폭력성이다. 모든 문제는 우리가 세계를 개념으로 이해하려는 것에서 시작한다. 우리는 '제인'이라는 인간을 파악할 때 그녀를 여자, 엄마, 혹은 주부라는 개념 안에서 이해하려 한다. 하지만 개념이란 개개의 개체가 가진 다양하고 모순적인 개성이 지워진 파편에 불과하다. 우리는 개인을 특정한 범주로 묶어 이해하려는 태도를 거부해야 한다. 인간은 결코 개념으로 기술될 수 없고 개념으로 기술된 인간은 팔이나 다리, 혹은 눈, 코, 입이 사라진 불구로서 쓰여질 뿐이다.
그러니까 보편 개념이란 일종의 라이센스와 같은 것이다. 세계의 지배자들이(그들이 남성이든 여성이든) 끊임없이 우리편인지 아닌지를 묻기 위해 만든. 그리하여 자신의 세계로 받아들여야 할지 말지를 결정하기 위한 증명서 말이다. 우리는 이러한 자격증을 과감하게 찢어 버려야 한다. 그 자격이 주어졌을 때 따라오는 사회적 이득을 포기해야 한다. 모두가 그것을 포기할 때 자격은 더 이상 의미를 가질 수 없다. 우리 모두가 믿기를 거부한다면 신조차 이 세계에서 지워버릴 수 있거늘 하물며 인간이 만든 제도나 규범이 문제겠는가?
<생각하는 여자는 괴물과 함께 잠을 잔다>는 175p 밖에 되지 않는 짧은 책이지만 내용은 결코 만만치 않다. 개념이 어려운데다 생소하기까지 하다. 나는 이 글을 쓰기 위해 이 책을 세 번이나 읽었다. 정확히 들어맞는지는 좀 더 생각해 봐야 할 문제지만, 나는 이 책의 본문을 인용하여 그 난해함을 옹호하려 한다.
쉽게 읽히는 글은 이미 우리가 복종하고 있는 문법과 사상 그리고 문화를 내포한다. 우리는 이러한 전제를 잊고, 글을 읽고 이해했다고 착각한다. 그런 쉬운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오래된 낡은 집단 안에 깊이 묶여버려,
새로운 사고와 관점을 받아들일 수 없게 된다.(p.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