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PXs의 One Shot One Kill_#3] 노래가 들리는 만화 - 해롤드 사쿠이시의 BE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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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의 이해>의 저자 스콧 맥클라우드는, 만화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모든 감각을 오로지 시각을 통해서만 전달하는 매체라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만화가는 듣고, 맡고, 맛 보고, 느끼는 것들을 오로지 그림으로만 보여줘야 하는 난관에 부딪힌다.

그러나 우리가 대단한 작품이라고 칭송하는 것들은 언제나 이런 난제를 멋지게 극복해낸 것들이 아니던가. 예를 들면 <미스터 초밥왕> 같은 만화 말이다. 비록 지겨울정도로 되풀이되는 구성에 몇 권 지나지 않아 진력이 다하지만 그 흑백의 잉크가 빚은 초밥이 우리의 침샘을 자극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미각은 원래 시각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 게다가 미각은 맛을 연상케 하는 단어만으로도 자극이 되는 냄비 같은 감각이다. 내 말을 못 믿겠는가? 그렇담 지금부터 아래 단어들을 천천히 읽어보기 바란다.

식초,
참기름,
겨자,
와사비,
마늘.

이제 내 말에 동의하는가?

그렇다면 청각은 어떨까?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라는 것을 시각적으로 표현할 방법이 있나? 없다고 생각한다면 여기 굉장한 만화 한권을 소개해 보겠다. 보는 것만으로도 음악이 들리는 만화, 해롤드 사쿠이시의 <벡(BECK)>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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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의 주인공 다나카 유키오는 삶의 목표가 없는 무기력한 중학생이다. 사실 중학생이라면 누구나 그렇지 않은가. 자신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인정해주는 환경은 없고 그렇다고 과감히 세계 밖으로 뛰쳐나갈 수 있는 자유도 없는 나이. 하지만 우연히 류스케라는 남자를 만나 락 밴드 BECK을 결성하면서 유키오의 인생은 평범한 삶의 궤도를 벗어나기 시작한다.

BECK을 만나기 전까지 유키오는 그저 노래 부르길 좋아하는 소년에 불과했다. 기타를 치기 시작한 것도 단순히 좋아하는 여자에게 잘보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모든 위대함은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사소한 이유. 바로 그렇게 시작한 일에 서서히 몰두하게 되면서, 노래를 부른다는 의미가 과연 무엇인지 어렴풋한 윤곽이 만져진다.

하지만 아직까진 자신이 얼마나 음악을 사랑하는지, 얼마나 큰 재능이 있는지 정확히 깨닫지는 못한다. 그것을 완전하게 만드는 것은 관객과의 교감이며 동료의 신뢰다. 서로가 서로의 능력을 믿게 되는 순간 개인의 능력은 날개를 펴고 밴드는 알에서 깨어난다. 이들과 함께하지 않으면 음악을 한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라고 생각하게 되는 시점이 바로 이 때다. 그렇기 때문에 투어를 이끄는 고물 승합차 안에서도 BECK의 멤버들은 웃을 수 있었다. 어떠한 고난과 역경도 믿음 앞에선 장애물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뻔한 얘기라고? 맞다. 그러나 묵직한 삶의 진리는 언제나 뻔한 얘기 속에 담겨 있다는 것을 당신도 잘 알 것이다. 예컨대 야채를 많이 먹고 운동을 꾸준히 하라 라던가 스팀과 스달을 벌어 존버하라 같은 말처럼(응?).

나는 정대만의 3점슛 장면에서도 그랬지만 다나카 유키오가 노래를 부르는 2 페이지 풀샷 씬에선 언제나 눈물을 흘린다. 자신을 믿어 주는 동료와, 자신을 사랑해주는 관객 앞에서, 자신의 가진 모든 능력을 던져 넣는 작디 작은 고교생(연재 도중 고딩이 됐다)의 모습에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면 과연 무엇을 위해 울어야 한단 말인가.

평범한 사람의 노력과 성장 이야기가 언제나 유치한 것만은 아니다. 거기엔 가슴을 울리는 묵직한 발걸음이 있다. 꿈도 목표도 없던 중학생 유키오가 락 페스티발의 3rd 스테이지에 올라 노래를 부르는 순간,

내 재능을 보지 못한 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어쩌면 나 자신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이,

끊임없이 현실에 안주하려는 내 마음을 일으켜 세운다.

일상에 멍들고 더럽혀진 영혼은
바로 이런 깨달음 속에서 자란다.

노래가 들리는 만화, BECK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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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 나는 이 만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24번 읽었고 전권을 책으로 소장하고 있다. BECK은 애니메이션과 영화로도 제작이 됐는데, 이걸 만든 사람들은 전부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dPXs의 One Shot One Kill>은 책, 영화, 미술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 또는 그 세계의 한 장면을 포착하여 먹기 좋게 내놓는 2018 Steemit Exclusive 콘텐츠입니다, 라고 하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고 그냥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싶은대로 지껄이는 내 맘대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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