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여러해 동안 자칭 "난독증"이라 불리는 집중력 저하 증세에 책을 도저히 읽을 수가 없었다. 책을 붙잡는 것만으로 잠이 쏟아지고, 책장 한장 넘기는 게 여간해선 쉽지 않고, 같은 문장을 수십번 읽고 있는 것을 깨닫고는 화들짝 놀라 책을 덮어 버리곤 했다. 그러던 중 천명관의 "고래"라는 소설을 만났다.
단숨에 읽어 버린다. 눈깜짝 할 사이에 종착지에 온것 같다. 정신이 혼미하다. 마치 롤러코스트를 탄듯 그들의 삶에 일순간에 투영된다.
그날 밤을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단지 금복이 겁간을 당하고 돈을 빼앗겼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가뜩이나 파란 많은 그녀의 운명을 다시 한번 거센 소용돌이 속으로 몰고 간 그날 밤의 기적 같은 사건은 며칠 전부터 쉬지 않고 내린 장맛비로 인해 가능한 일이었다. 도대체 무슨 얘기냐고? 성급한 독자여, 조금만 더 들어보시라.
- 발췌 : 고래, 천명관
비극의 시작과 끝(노파)은 한 지점에서 머무르다 스러진다. 인간의 일그러진 욕망과 그 욕망이 부르는 시대정신(금복)은 정체가 불분명하다. 욕망이 낳은 비정상적 실체(춘희)는 세상 어디에도 존재할 수 없다. 마치 바다에 고래떼가 창궐한듯 짐작할수 없는 소용돌이에 휘말린 것 같았지만 그것은 현실이 아닐수도, 죽어야 끝이 나는 쳇바퀴속에 갇힌 것일수도 있다.
이 소설을 '특별하다'고 표현할수 밖에 없는 것은, 소설에 대해 우리가 가져온 기존의 상식을 보기 좋게 훌쩍 비켜서는 놀랄만한 다채로움과 개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임철우(소설가)
인연과 복선의 엉켜진 실타래를 풀어가는 전개를 통해 독자가 끝까지 내달릴수 있게 채찍질한다. 어마어마한 서사적 스케일이다. 그러나 소설의 형식과 법칙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음 페이지가 궁금해 미칠것 같다.
이 책은 단연코 가장 흡인력이 좋은 소설이라 말할수 있겠다. 문득 작가가 천재가 아닐까 의심해 보며 그의 프로필을 찾아본다. 역시 그는 시대 최고의 이야기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