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담수첩-kr-contest] 마음을 품은 집 (아빠 저건 뭐야?)

내 스팀잇의 시작은 여행기였다. 어디를 가서 어떠한 것을 보고 무엇을 할지를 계획하는 일은 여행을 가기 앞서 오는 즐거움이다. 그저 눈으로 보고 오는데 그치지 않으려면 눈으로 보이지 않는 것들을 미리 알아두고 가면 더 많은 것들을 담아올 수 있다. 지난 여행의 나는 드라이버이자 가이드로서 꾀 쓸만한 역할을 했다고 자부한다.

그런 의미에서 tvN에서 방영하는 '알쓸신잡'을 좋아한다. 무리가 우르르 몰려 다니며 이거는 어떠느니 저거는 어떠느니를 떠들지 않는다. 각자 가고싶은 곳을 둘러 보고 돌아와 여기는 이러이러하고 저기는 저러저러하더라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IMG_1563.JPG

구본준의 喜怒哀樂 건축이야기

o-DEFAULT-570.jpg

건축에 관심이 있다면 한겨레 구본준기자를 알 수도 있을 것 같다. 건축가인 친구와 함께 땅콩집을 처음으로 지은이다.

꿈, 밥, 일, 책 같은 한 글자짜리 단어를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집을 가장 좋아해 건축 기자가 되었다.

그는 몇 해 전 좋아하는 한 글자들과 함께 머나 먼 이국땅에서 세상을 떠났다. 예전에 과제덕분에 우연히 들른 블로그를 통해 그를 알게 되었고 그의 첫 책을 구입해 놓고 이제서야 읽어보았다.

'건축의 묘미는 건축이 '공간'이기 때문이 아닐까.'
'처음에는 디자인이 멋지고 근사한 건축이 좋았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집에 담긴 이야기를 알게 되며너 건축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건축은 미술도 디자인도 아닌 인간의 모든 것을 담은 그릇이다.'
'집들이 내게 들려준 그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어 이 책을 썼다.'


미소 짓는 집이 있다. 喜

53444_16465.jpg_M800.jpg

어린이 대공원 꿈마루

되살아난 부활의 기쁨, 잊혀지고 사라졌다 돌아온 건물

40880_31542.jpg_M613.jpg

건축가 조성룡이다. 선유도공원을 지금의 모습으로 바꾸어 놓았다. 신축도 물론 잘하지만 이분만큼 리노베이션을 잘하는 이도 드물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서울역고가도로 현상설계에서 아쉽게 떨어졌는데 당선되었다면 지금과는 또다른 모습일 것 같다. 옛 것의 흔적을 남기고 보존하는 것, 앞으로도 하실 일이 많을 것 같다.

40854_58154.jpg_M686.jpg

땅의 역사

본래 어린이대공원이 있던 자리에는 골프장이 있었다. 그리고 그 이전에는 조선 왕실의 묘였다. 이 능이 일제강점기에 경성골프장으로 바뀐다. 해방 이후 이름이 서울컨트리클럽으로 바뀌었고, 한국에서 가장 좋은 골프장으로 인기가 대단했다. 골프장에서 공원으로 바뀐 것은 유신시대의 일이다. 바로 옆에는 육영재단의 어린이회관이 있다. 부녀의 역사가 땅의 역사가 되었다.

53150_7411.jpg_M800.jpg

쓰임새

골프장의 클럽하우스로 쓰이던 건물은 대공원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쓰임새가 바뀌었다. 처음에는 관리사무소로, 그리고 교양관으로 쓰이게 된다. 그리고 다시 공원의 리노베이션 과정에서 건축가와 만나게 된다. 건물의 예사롭지 않음을 눈여겨 본 공무원이 조성룡을 찾아 연락하게 된 것이다. 애초의 계획에는 건물을 헐고 신축을 하는 것으로 가닥이 잡혀 있었다. 건축가의 눈에도 보통 건물이 아님이 보였다. 그리고는 부수지 않고 원혀을 되살리기로 결정된다.

97818_98936.jpg_M800.jpg

시간의 켜

흔하게 볼 수 없는 공무원의 안목과 건축가의 만남이 쓰임새를 달리하는 것으로 교양관은 되살아 나게 된다. 리노베이션의 시작에서 건축가가 제안한 개념은 '걷어내기'였다. 기존 건물의 뼈대 자체가 튼튼하고 디자인적으로도 우수한 만큼 나중에 건물에 덧씌운 부분들을 모두 걷어내 원형을 보여주자는 것이었다. 걷어낼수록 이 건물의 진면목이 나타났다. 걷어내기만 한다고 해서 건물이 다시 태어나지는 않는다. 선배 건축가의 생각에 더할 것은 더하고 뺄 것은 빼야 한다. 껍데기를 바꾸는 것이 아니고 알맹이를 바꾸는 것이다.

세개의 시간축

2011년 5월 5일 건물은 꿈마루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골프장의 클럽하우스에서 대공원의 교양관으로 바뀌고 마침내 다시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꿈마루는 현재 일부는 관리사무소로 쓰이고 나머지는 문화시설로 탈바꿈되었다.

''먼 길 돌아와 우리 앞에 선 꿈마루 앞에선 이제 아이들이 뛰논다. 이 건물에 어떤 이야기가 깃들어 있는지 알 리 없는 저 아이들의 웃음소리야마로 이 건물을 진정으로 완성시킨 마지막 마감재일 것이다.''


분노로 찡그린 집이 있다. 怒

56423_4526.jpg_M800.jpg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

''끝나지 않은 분노의 건축,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집"

109871_31623.jpg_M800.jpg

전숙희와 장영철. 부부건축가이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주최하는 제4회 젊은건축가상을 수상했다. '알쓸신잡2'에서 활약중인 유현준교수도 2회 수상자이다.

간판없는 건물

단독주택이 몰려있는 서울 성산동에 가보면 첫눈에 어딘가 다른 집들과 달라 보이는 건물 한 채가 나타난다. 2012년 5월 5일 문을 연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이다. 으레 있어야 할 표지판이 없어 정체를 알 수 없지만 어딘지 모르게 닫혀 있는 분위기가 이 건물의 표정을 말해주는 듯 하다. 아직도 치유되지 못한 위안부 할머니들의 상처를 우리가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나 아파요'라고 써 붙이지 않았지만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그 아픔을 느낄 수 있다.

45346_44826.jpg_M800.jpg

이야기가 지은 집

날짜를 보면 단번에 어떤 날인지 알 수 있는 날에 문을 열었다. 5월 5일 어린이날. 상처를 품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이 집을 짓게 만들었고, 집이 지어지는 과정 자체도 하나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들의 상처가 미래의 어린이들에게 되물림되지 않기를 바라는 이야기를 품은 집이다.

98761_64717.jpg_M800.jpg

이야기를 들려주는 집

간판도 없지만 단번에 들어가는 입구를 찾기도 쉽지 않다. 정면이 아닌 옆의 좁은 쪽문으로 들어가며 집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시작된다. 건축가들의 의도가 엿보인다. 우아한 진입구나, 근사한 로비, 큼직한 전시실 대신 '맥락의 흐름'을 네세우기로 했다. 관객들의 동선을 자연스레 이끌어 이야기를 들려주는 집을 지었다. 한마디로 '스토리텔링 박물관'이다.

23103_89949.jpg_M800.jpg

끝나지 않은 이야기

단순히 눈으로만 느낄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모든 감각기관을 동원하게 만들어 상처를 매만지게 만들었다. 눈과 귀로는 헤아릴 수 없는 할머니들의 한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우리는 뉴스를 통해 보고 듣는 것 너머에 이야기를 느껴야 한다. 바다 건너 저들이 외면한다 할지라도.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은 지어졌으되 완성되지 않은 박물관이다. 일본이 스스로의 범죄를 인정하고 할머니들에게 사죄를 할 때, 그래서 할머니들의 한이 풀릴 때 이 박물관은 비로소 완성될 것이다."


눈물 흘리는 집이 있다. 哀

526225660b4b93c27b2b1b604f89ddb9_x3hNPG8SR9562jQGM.jpg

봉하마을 묘역

아무도 예상 못한 죽음이 만들어낸 새로운 건축

Shs-s.JPG

건축가 승효상이다. 우리나라 1세대 건축가인 김수근의 제자이며 그의 회사 '공간연구소'를 이어받아 이끌었다. 그 후 독립하여 건축사무소 이로재를 열었다. 첫 작품은 유홍준의 자택인 '수졸당'이다. 경남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 문재인 대통령과는 동창이다. 문과 문재인, 이과 승효상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학업에 두각을 나타냈다고 한다.

유언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유언은 간단했지만 그의 죽음은 간단하지 않았다. 전직 대통령이니 당연히 현충원에 안장해야 했지만 유족들은 그의 유언대로 사저 뒷산에 안치하기로 결정한다. 반대 진영에서 아방궁이라 힐난하던 사저를 지은 건축가는 이미 연로했다. 건축가들에게 집을 짓는 다는 것은 그렇게 만만하게 볼 일이 아니다. 건축주의 인생에 들어가 보이지 않은 것들까지도 잡아내야 한다. 그래야 모두가 만족하는 집이 지어진다. 그래서 그의 죽음은 건축가에게도 큰 충격이였다. 사저를 지은이는 건축가 정기용. 기적의 도서관으로 유명하다. (이 책 '희'편에 실려있다.)

그가 떠난지 6일째 되는 장례식 바로 전날, 문화계인사들이 모여 만든 '작은 비석 위원회'는 그의 무덤을 만드는 작업을 논의하기 시작한다. 묘역의 설계는 위원회의 또 다른 건축가 승효상이 맡게 된다.

26.jpg

산자와 죽은자

건축가는 이 독특했던 대통령을 다시 돌아봤다. 그가 생각한 노무현은 '자발적 추방인이며, 그래서 시대의 지식인'이었다. 대통령이 떠난 이튿날, 건축가는 봉하로 향했다. 마을 풍경이 범상치 않아 보인다. 마을을 돌아본 건축가는 유족들이 생각해 둔 뒷산은 묘역으로서 불가능 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후에 망자를 추모하려 모여들 산자들을 생각해야 했다. 건축가가 고른 땅은 사저 옆 평지, 삼각형 모양의 땅이었다. 평지와 산이 만나는 그 곳이 죽은 자와 산 자가, 떠난 자와 기리는 자가 만나게 될 곳으로 제격이라고 건축가는 생각했다.

20101001000155_0.jpg

비물질의 아름다움

전례없던 전직 대통령의 무덤을 지으려는 건축가의 머리속은 복잡했다. 그가 살아온 길, 대통령으로 향하는 길, 죽음으로 내몰린 길. 그 길을 함께한 이들에게는 성역으로 받아드려질 수 밖에 없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었다. 그러나 우상화하는 곳이 되어서는 안된며 노무현다운 무덤, 진정성이 담아내는 무덤을 만들어야 했다.

여러 고민의 끝에 그가 찾은 해법은 종묘였다. 이 건물의 아름다움은 정전에서도 나오지만 그 아래 펼쳐진 월대에서 진정한 아름다움이 나오기 때문이다. 가본 이들은 안다. 월대에 올라서 본 정전과 월대 아래에서 본 정전의 차이를.

subimg_10294.jpg

공동작품

묘역은 승효상만의 것이 아니다. '작은 비석 위원회'에 속한 문화인들이 함께했다. 유분함은 안규철 교수, 도자기는 박영숙, 조경은 정영선(선유도공원), 바위글씨는 지관스님, 강판에 새긴 글씨는 신영복 교수, 그리고 수많은 시민들.

죽음의 건축

죽은자에게는 5평의 검소한 안식처가 그리고 산자들에게는 1000평이 넘는 광장이 펼쳐진다. 죽음을 담았지만 산자들의 삶이 다녀간다.

봉하까지 가는 길은 멀고 쉽지 않았다. 기차를 타고 먼길을 가서도 버스로 갈아타 돌고 돌아 가야했다. 굽이굽이 돌고 도는 길의 끝에 사자바위와 부엉이바위가 품고 있다. 종묘의 월대가 정전의 장엄함을 극대화 하듯 넓게 펼쳐진 삼각형의 꼭지점의 바위하나가 작지만 크게 보였다.

"노무현을 지지하든 그렇지 않든 이 건물은 건축적으로 분명 우리가 가볼 만한 새로운 공간 건축이다. 삶과 죽음과 사회를 동시에 생각하게 하는 것, 그게 바로 죽음의 공간만이 지니는 힘이며, 그런 죽음의 공간으로 우리 동시대에 만들어진 것은 이곳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즐거움으로 들썩이는 집이 있다. 樂

104426_3334.jpg_M800K1B=aHR0cDovL2Jsb2cuaGFuaS5jby5rci9ib25ib24v=.jpg

창덕궁 정자

*왕의 정자, 정자의 왕을 만나다

28741_51744.jpg_M800K1B=aHR0cDovL2Jsb2cuaGFuaS5jby5rci9ib25ib24v=.jpg

서울에 사는 행복

안다녀서 문제이지 서울에는 참으로 가볼 곳이 많다. 궁궐이 다섯개나 있는 도시도 서울이 유일하다. 그 중에서 경복궁밖에 가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 지난 명절연휴 창덕궁으로 향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했다. 차를 가져가니 서울 4대문 안이 그리 넓을 수가 없었다. 속도는 제자리에 차를 둘 곳도 마땅치 않았다. 결국 허탕치고 돌아왔다.

창덕궁 후원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작년에 다녀온 종묘를 무척이나 좋아하셨다. 4대문안을 헤매다 문밖으로 벗어났다. 서오릉을 다녀왔다. 최선을 선택하지 못하지만 차선을 택할 수 있고 만족할 수 있는 것, 서울에 사는 행복이다.

55396_17398.jpg_M800K1B=aHR0cDovL2Jsb2cuaGFuaS5jby5rci9ib25ib24v=.jpg

경복궁과 창덕궁

창덕궁은 태종때에 지어졌다. 조선의 역사는 경복궁에서 시작되었지만 왕이 된 태종은 경복궁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그의 형 정종도 개경에 머물렀다. 경복궁에는 태종을 바라보는 아픔의 그림자들이 많이 있었다. 구조상으로도 반듯하게 지어져 답답함이 밀려왔을 것이다. 경복궁이 정도전의 마음으로 지어졌다면 창덕궁은 태종의 마음으로 지어졌다. 반듯하지 않다. 자연에게 몸을 맡기듯 자연스럽게 지었다. 창덕궁은 서울에서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유일한 궁궐이다.

53828_16307.jpg_M800K1B=aHR0cDovL2Jsb2cuaGFuaS5jby5rci9ib25ib24v=.jpg

정자를 보는 법

우리 전통건축의 아름다움은 밖에서 안을 보는 것보다 안에서 밖을 보는 것에서 나온다. 차경이라 한다. 밖의 풍경을 안으로 가져온다. 정자는 차경의 끝판왕이리라. 후원을 제대로 느끼기에 정자가 위치한 곳이 최적의 장소일 것이다. 사진도 정자를 등지고 찍는 것 보다 정자가 서있는 위치에서 다른 정자를 바라보는 것이 더 잘나올 것이다. 아직 후원을 가보지는 못했지만 하루에 들어갈 수 있는 인원을 제한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정자 또한 들어갈 수 있게 됐으면 좋겠다. 목조건축은 사람과 함께하지 못하면 썩게 마련이다. 일부러 걸레질을 하며 청소하는 수고로움보다 사람들이 신은 양말로 자연스레 광이 나면 더 좋을듯 싶다. 물론 아끼고 조심해야 겠지만 말이다.

같은 모양의 정자가 없다. 누가 누가 더 예쁜가 자랑하는 듯 하다. 작지만 디테일하다. 그러한 것들을 찾아보는 재미가 있으리라. 각 정자마다의 자세한 이야기는 책 속에 있다.

"창덕궁에서 우리는 누구나 왕이 될 수 있다. 스스로 조선 시대 임금이 되어 창덕궁 후원을 거닐며 각양각색 정자마다 다른 분위기를 즐기며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상상해보자. 그것만으로도 즐겁지 아니한가.''


IMG_1561.JPG

평소에 영화를 읽고 느낀 바를 쓰듯이 키워드 중심으로 적어보았습니다. 오랜만에 책을 읽게 되어 좋았습니다. 아직 건축관련 분야의 책이 없는 듯 하여 꺼내 읽어보았습니다. 관련되어 있지 않지만 관심있는 분야입니다. 건축가들의 강연을 듣다 보면 인문학에 통달한 사람들 처럼 보여집니다. 희노애락으로 분류되어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어 좋았습니다. 각 챕터별로 4개의 이야기가 담겨 있으니 위에 소개한 이야기 말고도 12개의 이야기가 더 있습니다.

모두가 가볼만 한 이야기가 있는 곳들입니다. 누구와 함께이든 좋은 곳입니다. 가기전에 책에 담긴 이야기들을 품어 함께가는 이들에게 들려준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입니다. 더 많은 것들이 보일 것입니다.

예전에 법정스님의 책에서 본 구절이 생각납니다. 좋은 책은 오래보지 않고 잠시 읽어 덮어두게 하여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 책 또한 그러합니다. 그림이 많고 쉽게 읽혀 하루면 다 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루에 한가지의 이야기만 읽어두고 되새기게 합니다. 좋은 책입니다.

아직도 장식품인지 책인지 모를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번을 계기로 많이 읽어야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 고맙습니다.

H2
H3
H4
3 columns
2 columns
1 column
22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