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축사가 즐비한 강원도 인근의 지역에서 군대 생활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여름이면 파리를 잡느라, 겨울이면 눈을 치우느라 상상을 초월할 고통 속에 2년이 넘는 시간을 지냈습니다.
자기 다녀온 군대가 제일 힘들다고들 하는데, 진짜로 제가 있던 곳이 제일 힘들었습니다.
여름에는 저녁 청소 시간이 되면 파리 당번이 따로 여러명 있어서 일인당 백 마리씩 잡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또 겨울이면 관측사상 역대 기록을 갱신하는 수준의 눈이왔습니다. 몇날 몇일을 눈을 치우느라 끝없는 고통의 시간을 보내었습니다.
다 치우고 나면 또 눈이 내리기 일수였습니다. 자연 재해 앞에 인간이야말로 파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선선한 봄가을에는 인근 지역의 각종 개보수 사업이나, 심지어 온천 목욕탕의 보수공사에도 투입되었습니다.
지역의 주요 시설인 목욕탕에 군대를 투입함으로써 지역 경제에 이바지하며 지역민을 위한 어쩌고 뭐 그런 순수한 목적일리는 없었습니다. 용역의 댓가가 누군가의 뒷주머니로 들어간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군대든 사회든 우리 사회는 어디에나 부조리함이 많이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힘든 시기 중에도 한번씩 면회를 와주는 여자친구의 존재는 광명과도 같았습니다. 면회를 오면 분식집, PC방 등 모든 주요시설이 밀집되어 있는 읍내로 당일자 외출을 나갈 수가 있었습니다.
파리만 가득한 군대 막사와는 전혀 다른, 화려한 네온 사인이 즐비한 읍내의 광경은 저에게는 "오아시스" 그 자체였습니다.
(사진 출처 : https://www.yagaja.com/pages_m/story?event_idx=90396)
최근 몇일간 제가 비루스로 이불 밖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이, 봄 방학에 집에만 갇혀 외기를 쐬지 못하던 첫째 아이가 갑자기 혼자 집안을 전력 질주하는 등 이상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왜 그러느냐 물으려던 찰나 그 녀석의 눈을 보고서 알게 되었습니다. "오아시스"가 필요하다는 것을. 저는 아픈 몸에도 불구하고 부성애를 발휘하여 가족들을 데리고 꽤나 먼길인 옆나라 바레인으로 향했습니다.
차 밖으로 몸을 내어 찍은 차량의 행렬입니다. 국경을 통과하고자 수많은 차들이 줄지어 서 있습니다. 이 곳 사람들의 월평균 수입은 일인당 150만원 정도인데, 문화적인 그리고 종교적인 영향으로 인해 미래에 대한 고민없이 항상 최선을 다해 현재를 즐기고 삽니다. 그래서 고급차가 많고 보통 월급을 타면 첫번째 주에 대부분 써버린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기름이 펑펑 나는 나라이다 보니 그 동안은 정부의 보조금으로 경제가 지탱되어 왔습니다.
반면 옆나라 바레인은 제주도의 30% 정도 크기의 작은 섬나라일 뿐 아니라, 부존 자원이 매우 부족합니다. 그래서 일찍이 외국인에게 문호를 개방하고 이슬람 국가임에도 술과 돼지고기를 허용하는 등의 개방적인 정책으로 지금은 외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지역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https://www.internations.org/expat-insider/2017/the-best-and-worst-places-for-expats-39182)
금융업, 관광업, 제조업 등이 골고루 발달되어 있고 1인당 국민소득도 우리나라와 비슷한 수준입니다. 1971년 영국의 식민지에서 벗어난지 얼마되지 않는 기간동안 눈부신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전국민이 금수저인 인근의 카타르라는 나라도 있습니다. 인구 250만 중 현지인은 15만명에 불과하며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가가 모든 것을 책임져 줍니다. 결혼 후 가족을 동반하여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면 모든 학비를 정부에서 지원할 뿐 아니라, 생활비로 매월 3천만원을 지급합니다.
이는 인구가 적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대의 가스전과 무시무시한 수준의 석유 매장량을 가지고 있는 덕입니다.
카타르의 남동쪽에는 두바이가 있습니다. 아마 가보신 적은 없어도 이름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이 곳은 부가티 베이론,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 같은 슈퍼카를 경찰차로 씁니다. 이 곳은 도로가 잘되어 있다보니 시속 300km 이상으로 달리는 차들을 단속하기 위해 경찰차도 고사양을 사용한다는 후문입니다.
이제 바레인에서의 2박을 마지막으로 휴가를 마치고 정다운 저의 시골 집으로 돌아 갑니다. 단조로운 삶을 벗어나 돌아다녀보니 그래도 집 만큼 편하고 좋은 곳이 없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짱구와 다이어트 콜라도 가득 있습니다.
어쩌면 꿈을 찾아 파랑새를 찾아 떠났지만 결국 자신의 가까운 곳에 파랑새가 있었다는 어느 동화의 이야기처럼, 내 인생의 오아시스도 그 어느 휘황찬란한 곳이 아니라 우리 가족이 같이 숨쉬는 집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행복한 주말들 보내시기 바랍니다.
p.s. 오늘은 흔한 동네 흑형들의 노래 대결 영상을 덧붙입니다. 한 때 꽤 좋아했던 영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