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맛'이란 어떤 존재인가? 누군가에게 '맛'이란 굉장히 중요한 존재일 수 있다. 반 농담으로 "먹기위해 산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맛있는 음식을 먹고 미미(美味)를 찾는것을 즐기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다. 수많은 맛집 블로거, 먹방, 쿡방 등이 이를 증명한다.
거꾸로 맛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 사람도 많다. 즉 누군가는 치킨을 먹을때 {뿌ㅇ클, 스ㅇ윙, 교ㅇ레드, 굽ㅇ볼케이노] 이렇게 상품 단위로 구분할수도 있고, 누군가는 그냥 {양념치킨, 후라이드, 간장} 이렇게 브랜드와 상품에 크게 신경쓰지 않을수도 있다. 이건 단순한 개인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어느쪽에 속할까? 나 스스로 미식가라곤 할 수 없지만, 맛엔 상당히 민감한 편이다. 3년전 소화기 질환에 걸린 후, 먹는 음식에 제약이 걸리면서 이전과 달리 '맛'에 많은 신경을 쓰게 되었다. 먹고싶은 음식을 맘대로 못먹는건 서러우니, 기왕 먹는 음식이라도 맛있는걸로 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라는 마인드가 생긴 것이다.
(필자는 초밥을 사랑하지만 누군가에겐 그냥 평범한 한끼일 수 있다)
'칼과 혀'에는 맛과 요리에 (아주) 민감한 세 인물이 나온다. 자칭 '미식가'라고 여기는 만주국의 일본인 사령관 "오토조", 아버지에 의해 태어날때부터 요리사가 될 운명을 갖고 태어난 중국인 요리사 "첸", 그리고 그 두 남자 사이에 위치한 조선인 여자 '길순'이다.
세 사람은 모두 요리에 관한 각자의 철학을 갖고있다. 아니, 이 책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캐릭터들은 각자만의 요리와 맛에관한 주관이 뚜렷하다. 인물들간의 물리적인 위치(칼)는 확연하게 구분되어 있지만, 캐릭터들이 자신이 생각하는 맛과 요리에 대해 말할때는(혀) 그러한 물리적인 위치는 무의미해진다. 만주국의 허수아비 국왕도, 오토조를 따라다니는 부관도 모두 각자의 맛에대한 주관이 뚜렸하고 요리에 대해 이야기할때는 자신의 의견을 당당히 피력한다. 그만큼 이 소설에서 '혀의 세계'는 '칼의 세계'와 별개로 중요한 존재이다.
하지만 동시에 혀의 세계는 현실(칼의 세계)을 반영하기도 한다. 일본이 2차대전에서 항복한후, 오토조가 최후에 길순의 투박한 요리에 굴복한다는 점에서 '혀의 세계'는 '칼의 세계'의 연장선상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러한 특징에서 [칼과혀]는 상당히 흥미로운 소설이다. 작가의 깔끔한 문장과 맛에대한 묘사, 세명의 화자의 시선에서 빠르게 진행되는 이야기를 읽고 있자면 나도 모르게 '칼의 세계'에서 '맛의 세계'로 빠져드는듯 했다.
[칼과 혀]에서 '식객'과같이 요리로 대결하는 이야기를 기대한다면 다소 김빠질지도 모른다. 오로지 '요리'에만 집중한 소설은 아니다. 그러나 역사와 사회, 인물의 철학과 요리가 맛있게 버무려진 그런 특이한 소설을 읽고 싶다면 [칼과 혀]를 한번 펼쳐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