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메스의 작은생각] 스피노자에게서 Be동사를 배우다

이번 글은 가입글에서 약속드린 “오직 대한민국 사람들만을 위한 영어”의 예고편 격입니다. 언어는 소통의 수단이기 전에 생각의 수단입니다. 따라서 원어민이 아닌 한, 외국어를 배우는 가장 효율적인 길은 그들의 사고방식을 우선 이해하고 연습을 통해 체득하는 것입니다. 무작정 외우지 말고 우선 생각하자! 이번 글을 통해 저는 영문법과 철학을 잇는 작은 실험을 해보았습니다. 헤르메스는 오늘도 꿈꿉니다. 많은 질문과 대화가 함께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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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에게서 be동사를 배우다


이번 글의 주인공은 be. 가장 쉬워 보이지만 가장 많이 오해받는 영어 단어. 오해는 문법책을 쓰는 ‘영어도사’들도 예외가 아닌데, 이런 식이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이야기입니다.

Mary is at school. 영어도사들이 말하는 1형식. 그들에 따르면 이때 be는 ‘있다’라는 뜻이랍니다. 흠, 여기까지는 간단해 보이네요. 으흠, 순서만 바뀐 거군. ‘메리는 있다 학교에.’

다음은 Mary is happy. 2형식입니다. 영어도사들은 형용사가 보어인 경우라며, 이때 be는 ‘~하다’라는 뜻이라 가르칩니다. ‘~를 하다(=do)’와 헷갈릴 수 있으니 이 경우는 ‘형용사인 보어가 주어의 상태를 서술해주는 경우’라고 설명하네요. 틀린 말 같진 않은데 외계어처럼 들려 머리가 아파옵니다.

또, 이렇게 묻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be가 ‘~하다’이면 ‘Mary is happiness.’가 맞지 않느냐고. ‘메리는 ~하다 행복.’ 그렇죠? happy의 뜻은 ‘행복한’이니, ‘Mary is happy.’의 뜻은 ‘메리는 하다 행복한.’인 거고...ㅠㅠ

아이고 머리야~ 그런데 영어도사들은 이게 다가 아니라네요. Mary is a student. 같은 2형식인데 이번에는 또 명사가 보어랍니다. 영어도사들은 이때 be는 ‘~이다’라는 뜻이라며 여기서 주어는 보어와 같다(Mary=a student)고 신나게 가르칩니다.

그런데 영어도사 아저씨, 잠깐만요!!!

보다 못한 ‘생각도사’가 등장합니다. 이건 좀 심각하게 이상하군요. 지드래곤은 가수다(A=B). 아이유도 가수다(C=B). 따라서 지드래곤은 아이유다(A=C)? 이 무슨 개 풀 뜯어 먹다가 식중독 걸려서 신경정신과 찾는 소리?

게다가, 무슨 단어 하나에 뜻이 셋씩이나? 영어도사의 설명이 당최 석연치 않은 생각도사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생각에 빠져 듭니다. 윌리엄 오컴 선생님도 말씀하셨죠. 설명이 장황할수록 진리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구구한 설명 따위는 면도칼로 잘라버리는 게 좋다고.

그러다 불현듯 be동사가 들어있는, 생각 덕후들이라면 누구나 아는 문장 하나가 떠오릅니다.

“I think therefore I am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아하~ 좋았어. 일단 데카르트 선생님의 가르침, 철학의 제1원리에 따라 be의 뜻은 일단 ‘존재하다(=있다)’인 걸로!

그러고 나니 그의 생각은 자연스레 데카르트 선생님의 라이벌인 스피노자 선생님으로 이어집니다. 그 분에 따르면 자연은 전체가 하나이며 그 안에 있는 무수히 많은 사물은 자연이 자신을 드러내는 무수히 많은 모습들일 뿐입니다. 자연과학에서, 우주를 구성하는 여러 원소들이 갖가지 방식으로 뭉치고 흩어지면서 다양한 사물이 생겨나고 없어지는 것이라 설명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죠.

이때 스피노자 선생님은 원래 전체가 하나인 자연이 시시 때때로 자신을 드러내는 다양한 모습을 모드mode(양태)라 부르고 그렇게 모습을 다양하게 바꾸는 것을 모디파이modify(변용)한다고 하는데요. (어? 그러고 보니, 형용사와 부사를 묶어서 영어로 모디파이어modifier/수식어라 부르지 않나요? 이 무슨 우연의 일치?)

​아, 이제야 뭔가 알 것 같습니다. 이런 거였어요.

메리는 있습니다. (Mary is.)
메리는 지금 학교에 있고 (Mary is at school.)
‘행복한’ 모드로 있으며 (Mary is happy.)
‘학생’ 모드로 있기도 하죠. (Mary is a student.)
‘열공’ 모드로 있을 수도 있고 (Mary is studying hard.)
시험 기간이라 ‘탈진’ 모드로 있을 수도 있겠네요. (Mary is exhausted.)

와우! 이렇게 생각을 이어가다 보니 영어도사들이 외우라고 시키는 1형식, 2형식, 형용사인 보어, 명사인 보어가 그냥 이해될 뿐 아니라 진행형(Mary is studying hard.)과 수동태(Mary is exhausted.)도 단번에 이해되었네요! 유레카~!!!

이제 흥분을 가라앉히고^^ 글을 마무리할 시간입니다. 언어를 외워서 익힌다는 것은 원칙적으로불가능한 일입니다. 자칭 영어도사들은 다 외울 수 없다면 공식을 만들어 외워라, 통구문으로 외워라, 문장으로 외워라, 심지어 책 한 권 통째로 외워봤냐 다그치지만, 그건 반복적인 노출을 통해 뇌를 '적응'시키는 것에 불과합니다. 서커스를 위해 훈련받는 코끼리 신세인 거죠.

수없이 많은, 그리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존재(있음)의 수없이 많은 모드=양태를 '적응'을 통해 익힌다는 건 지극히 고통스런, 그리고 비인간적인 일입니다. 인간은 '적응'이 아니라 '행복'을 위해 사는 존재 아닌가요?

사전에서 ‘be’를 찾아 보세요. 줄잡아 20여 개의 뜻이 튀어나와 여러분의 뇌를 갉아먹을 것입니다. 헛똑똑이 영어도사들처럼 문장 형식, 수동태, 진행형 따위로 괜한 공식 만들어 외우느라 힘, 시간, 자존심 낭비하지 마시고 ‘존재하다’라는 뜻을 중심으로, be가 다른 단어들과 맺는 다양한 관계들을 살펴보고 거기서 드러나는 주어=주체의 다양한 양태들을 발견해 내시길... be와 친구되고, 영어와 친구되고, 생각과 친구 되는 스피노자의 비법이랍니다.

오늘 “헤르메스의 작은 생각”은 여기까지입니다. 보팅, 댓글, 리스팀, 팔로우, 뭐든 여러분의 반응은 헤르메스의 날갯짓을 더 힘차게 만듭니다. 하지만 스팀잇 뉴비인 지금의 헤르메스는 리스팀이 더 간절하답니다. 헤르메스의 보람은 더 많은 사람들과의 나눔이니까요. 글이 좋으셨으면 RESTEEM! 부탁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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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드린 장기 연재 “오직 대한민국 사람들만을 위한 영어”도 준비를 마치는 대로 곧 시작하겠습니다. 도입 부분은 집필을 마쳤고 본격적인 연재는 겨울학기 강의가 얼추 마무리되는 2월 초쯤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도 저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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