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메스의 작은생각] 단일팀 반대 - 공정성에 대한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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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277&aid=0004164142

불안. 그것은 오르페우스로부터 지옥에 구한 아내 에우리디케를 다시, 그리고 영원히, 빼앗아가고 소돔 성 밖에서 롯의 아내를 소금기둥으로 만든 이래, 언제나 모든 불행과 죄악의 근원이었다.

아들 오이디푸스가 자신을 죽이리라는 불안이 라이오스를 죽게 만들었고, 기다려도 오지 않는 모세에 대한 불안이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우상 숭배의 죄악을 범하게 만들었으며, 유대인들의 세계 지배에 대한 불안이 아우슈비츠의 비극을 만들었다.

젊은이들이 느끼는 '공정성에 대한 불안'를 이해한다. 이해하기 때문에 두려워한다. 촛불 혁명의 시작을 알린 것도 어쩌면 그들이 갖고 있는 '공정성의 불안'이었다. 하지만 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 이번엔 희극이 먼저였다. 그렇다면 다음은...?

더구나 우리에게는 불안의 틈바구니를 비집고 헤집고 이용하는 세력이 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그들이 지키려고 하는 크고 단단한 권력은 조금도 두렵지 않지만 그들이 자신의 행동이 낳는 결과에 대해서 일말의 성찰도, 거리낌도, 관심도 없다는 점은 너무나 두렵다.

"그건 근본적으로 이미 자주 이야기했던 '불안'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 불안은 모든 것으로 확대되어, 매우 큰 일에 대한 불안, 작디 작은 일에 대한 불안, 외마디 지껄임에 대한 경련적 불안으로 변했습니다. 이런 불안은 물론, 그저 불안한 것에 머무르지 않고 불안을 야기하는 모든 것을 넘어서는 그 무엇에 대한 '그리움'이기도 합니다. " - 카프카 "카프카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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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불안은 그리움이기에 이해할 만한다. 정당하지 않은 불안은 없다. '정당한 불안'이 영혼을 잠식하고 죄를 낳고 파국을 몰고 온다니... 그렇다면 구원은 어디에서? 나는 '초조함을 몰아내려는 노력이 곧 철학'이라는 철학자 고병권의 생각에 동의한다. 삶을 곱씹는 것, 돌아보는 것, 타인의 속도에 맞춰 서두르지 않고 주변을 살피는 것 그것이 철학이다. 구원의 길이다.

"아론이 말한 불은 이스라엘 백성이 느낀 불안고 초조의 감정일 것이다. 거기다 금붙이를 넣었더니 수송아지가 튀어나왔다는 것은 참 재밌는 말이다. 어떻든 야훼는 모세를 시켜 우상을 숭배한 백성을 삼천이나 떄려 죽였다. 단지 철학이 필요했던 백성에게 가한 형벌치고는 참으로 혹독한 것이었다." - 고병권 '초조함은 죄다' "철학자와 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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