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령 어떤 커뮤니티 A가 무료 과외 수업 네트워크를 블록체인 같은 걸(아니면 그 후신들)로 구축한다. 커뮤니티 B는 초여름에 무료 모내기 봉사를 하는 네트워크로 구축된다. 커뮤니티 C는 무료로 머리를 깎아주는 미용사들과 그 소비자들의 네트워크다. 커뮤니티 D는 할인매장과 도매시장에서 기부받은 식품을 무료로 나눠주는 네트워크다. 커뮤니티 E는 .....
그런데 이 커뮤니티들 모두가 무료 서비스 제공자들에게 블록체인(이나 후신들)을 바탕으로 발급되는 모종의 회계단위--말하자면 또 다른 비트코인--를 발급해준다. 서로 제휴하는 모든 커뮤니티에서 각각의 회계단위로 서로 다른 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도록 협약한다. 어떤 커뮤니티에 무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활동이 다른 커뮤니티의 서비스를 청구할 수 있는 '구매력'을 발생시킨다. 그 구매력으로 생계를 지탱할 수 있는 정도만큼 (부분적인) 일자리/생계 수단을 창출하는 수평적인 교환/결제 네트워크가 형성된다. 그 그물망들이 계속 확장되며 뒤엉킨다. 이 네트워크들에서는─즉 그들의 관심 활동에서는─중앙은행이 발권하는 현찰과 기존 은행권의 예금통화가 필요없다.
나도 황당한 생각이라고 여긴다. 그런데 영원히 황당할까?
블록체인 비슷한 홀로체인이란 걸 만드는 사람들 중 하나인 모양인데, 그가 이런저런 과격한 전망을 하는 가운데 "활발하게 돌아가는 암호통화들의 생태계(a vibrant ecosystem of cryptographic currencies)"가 생길 것이라고 전망했다고 한다(기사 자체에는 별 내용이 없어 보인다). 사실 지역통화를 설계하고 실행하는 먼 나라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봤는데, 그들 대부분은 단일경작에 대비되는 생태적 혼작처럼 단일한 통화 대신 여러 종류의 통화가 공존하는 생태계를 강조한다. ( ... ... )
가령 이런 수평적 네트워크들이 각자의 필요에 따라 분산돼서 유용하게 돌아가고, 그것들이 서로 얽히며 진화하면 예측하기 곤란한 새로운 창발적(emergent) 현상이 생길 수 있다. 아직 상상하긴 어렵지만 ... ...
[어느 날 복잡계(complex adaptive system)를 쉽게 전달하려고 애쓰는─그러나 역시 학자적 상상력이 넘치는 분이라 아주 쉽지는 않은─이 아티클을 보다가 적어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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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계 이론을 대충만 구경했지 별로 자세히 파고든 적은 없어서 창발(emergence)을 쉽게 설명할 수는 없다. 그래도 그까이꺼 대충, 나무와 풀과 곤충과 미생물 개체들이 제각기 각자의 본능대로 어느 곳의 여기저기에 대충 각자 알아서 살다 보니, 어느 날 갑자기 그 개체들로서는 전혀 상상하지 못한 신비로운 숲의 균형이 생기는 것과 비슷한 게 아닌가 짐작할 뿐이다.
한편, 맨 앞에서 예로 든 커뮤니티 A, B, C, D, E .... 중에서 아무거나 하나를 골라 그것이 작동하는 추상적 단면을 상상해 보면 이러하다. 가령 커뮤니티 X에는 창수, 갑돌, 영수 이렇게 세 사람만 있다고 치자. 창수가 갑돌이 집에 가서 저녁을 얻어 먹고 "너에게 5000원을 빚졌다. 너를 비롯하여 누구든 이 쪽지의 소지자에게 5000원어치 물건이나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적은 쪽지를 갑돌이에게 건넨다. 갑돌이는 영수 집에 가서 저녁을 얻어 먹고 창수에게서 받은 이 쪽지를 건넨다. 영수는 창수 집에 가서 이 쪽지를 주고 저녁을 얻어 먹는다.
창수가 써준 쪽지는 '너에게 빚졌다'는 채무증서이고, 이 채무증서를 지불수단으로 갑돌이와 영수가 수용했다는 점에서 '채무증서를 지불수단으로 인정하는 신용'이 발생한다. 그렇게 창수, 갑돌, 영수가 행동으로 창출한 '신용 네트워크가 화폐 현상'이다. 즉 화폐는 애초부터 신용이다. 이렇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 창수가 국가라고 상상해 보면, 창수가 써서 건네는 쪽지가 바로 국정화폐가 된다고 볼 수 있다.
- 창수가 제 맘대로 쪽지를 쓰고 남들(갑돌과 영수)이 그걸 신뢰하는 게 아니라, 창수와 갑돌과 영수가 모두 믿고 사용할 수 있는(혹은 합의한) 모종의 어플리케이션이나 규칙에 따라 애초의 쪽지가 발급될 수도 있다... 이렇게 상상해 볼 수도 있다.
- 창수가 써 준 채무증서 쪽지를 '지불수단으로 신뢰'하는 순간, 신비로운 비약이 일어난다. 창수는 단지 쪽지를 써줬을 뿐인데, 갑돌이가 그걸 신뢰하는 바람에─이어서 영수가 신뢰하는 (또 다른 누가 신뢰하는) 바람에─갑돌이가 저녁을 대접하는 개별 노동이 거기서 끝나지 않고 영수가 저녁을 대접하는 개별 노동과 이어지고 등치되는 '추상'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이것이 왜 추상(abstraction)일까? [이건 또 새롭게 가지치는 이야기가 될 수 있지만, 여기서 멈추는 게 좋다. 이 멈춘 자리만 기억하자.]
- [그리고 또 다른 여러분들의 상상을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