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뻔뻔할 수 없었던 노회찬 의원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지난 3월 21일에 인터뷰를 진행했다. 블록체인 매체 창간기념으로 축사를 해달라며 마련한 자리였다. 블록체인 기술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나, 규제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하나 등등의 질문을 준비해갔다. 그런데, 인터뷰가 진행되는 와중에 느꼈다. 재미가 없었다. 제목으로 뽑을만큼 새롭거나 박주민 의원만의 독창적인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다. 이럴 땐 약간 도발해야 한다.

"의원님은 쌍용창 해고 노동자, 세월호 희생자들과 유가족들 등 어려운 일을 당하거나 사회적 약자인 분들을 위한 좋은 활동을 많이 해오신 것으로 안다. 그런데 박주민 의원이 첨단을 달리는 블록체인 기술에 관심이 있어?라고 의아해하는 분들도 있을 것 같다."

그제서야 그만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정치 후원금에 블록체인을 도입해서 실시간으로 어떻게 썼는지를 확인하게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노회찬 의원의 비보를 접하고서 그와 만났던 여러 순간들이 떠올랐다. 가장 최근의 만남은 박주민 의원을 만난 이튿날인 3월 22일이었다. 전날 박주민 의원의 아이디어가 마음에 들었는지, 내가 "박주민 의원께서는 블록체인을 적용해서 정치후원금을 실시간으로 조회하는 시스템을 만들자고 했다"는 말을 인터뷰 초반과 말미에 걸쳐 두 번 반복했다. 나는 노회찬 의원께서 그 아이디어에 동의해주길 원했다. 명사들이 좋은 생각이라고 평가하고, 그런 발언들이 뉴스에 실려서 그 아이디어가 진지하게 발전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인터뷰 초반에 박주민 의원의 아이디어로 말을 시작하니, 노회찬 의원은 미소만 지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인터뷰 말미에 '블록체인 기술을 정치에 어떻게 적용하면 좋겠나'라고 물으면서 다시 '정치후원금 투명화' 아이디어를 꺼냈다. 그때에도 노 의원은 "블록체인이 국민들의 다양한 요구, 하고 싶은 얘기, 중요한 사안에 대한 생각들을 모아서, 그것을 전체의 결정으로 만드는 촉매작용을 했으면 좋겠다", "대의제가 불신당해도 안 되지만, 과거 어느 때보다 직접 민주주의를 하기에 좋은 환경이다. 대의제와 직접 민주주의가 병용되는데 (블록체인이) 활용됐으면 좋겠다"는 등의 답변을 했다.

노회찬 의원은 맞장구를 잘 치는 사람이다. 그냥 맞장구가 아니라, 촌철살인의 비유로 맞장구를 친다. 그런 노 의원이 분명 그가 동의할 법한 아이디어에 대해 약간이라도 언급하지 않은 것을 그땐 별다르게 느끼지 못했다. 어제의 비보를 접한 뒤에 다시 인터뷰 녹음파일을 들어보니, 다르게 느껴졌다. 그는 뻔뻔하게 "후원금 실시간으로 공개합시다. 투명하게 합시다"라고 말하지 못한 것이다. 그는 뻔뻔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노회찬 의원이 정의로운 사람이고, 약자를 위하는 정치인었단 사실을 굳이 내가 보태서 이야기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이미 그에 대한 많은 증언들이 나오고 있다. 그래서 내가 보탤 수 있는 이야기를 더 해보련다.

내가 정치부에 첫 출근한 2016년 9월 8일 오후에 나는 당시 야당 반장으로부터 정의당 행사에 가보란 지시를 받았다. 행사 이름은 '2016 정기국회 정의당 입법과제 설명회'였다. 국회 출근 첫날이니 모든 게 새로웠다. 현장에 가서 자리에 앉고 노트북을 펼쳤다. 예정된 행사시작 시간에 이르렀다. 이럴수가 기자가 나 뿐이었다. 시간이 좀 지나고 나서야 촬영기자 한 명과 아시아경제 소속의 취재기자 등 두 명이 더 들어왔다. 그제서야 사회를 맡은 김종철 정의당 원내대표 비서실장이 '설명회를 시작한다'고 알렸다. 설명을 맡은 노회찬 의원이 피티를 하러 자리에서 일어섰다. 취재석에 달랑 두 명의 취재기자를 보고 노 의원은 순간 '흠짓' 놀란 표정을 지었다.(나는 분명 그 표정을 봤다) 정의당이 이날 행사를 위해 준비한 40여개의 음료수와 수십장의 보도자료도 그대로 탁자 위에 올려져 있었다. 노 의원은 금새 특유의 넉살 좋은 미소를 지으면서 피티를 시작했다. 거의 첫 슬라이드가 김연아 선수가 시상대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고 있는 장면이었다.

"기분 좋은 사진이죠. 그런데 여기 보면 1,2,3등만 나옵니다. 4등은 보이지 않죠. 우리 정치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치 정당이 3개만 있는 것처럼 원내 4당이 보이지 않습니다. 국민의당이 등장하면서 우리 정의당이 원내 4당으로 밀려나면서 마치 투명정당처럼 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 당이 있으나마나한 정당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보세요. 새누리당이 재벌경영권 세습을 비판했고, 민주당은 성장의 혜택을 공평 분배하자고 합니다. 안철수 대표(국민의당)는 시대정신이 격차해소라고 합니다. 이전에는 정의당만 했던 이야기입니다."

단 두 명의 취재기자를 앞에 두고서 노회찬 원내대표는 신명나게 설명을 이어 나갔다. 사실 이렇게 재치있는 비유로 말하는 정치인은 정말 그 뿐이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정의당의 모토는 '민생, 반발짝만이라도'입니다. 반발짝이 무엇이냐, 현실성 있게 무언가 실적을 남기고 실현가능한 것들을 밀고 나가겠다는 뜻입니다. 우리 마음이야 여러 발짝 내딛고 싶지만, 반발짝이라도 성사시키겠다는 마음이 강합니다."
그가 그날 강조한 정책과제들은 '어린이병원비 국가보장법', '자발적 퇴사자 실업급여 지급', '사병월급 현실화', '전월세 상한제 및 임대차기간 3년으로 연장', '군피아 방지법', '가습기 살균제 특별법 제정', '누리과정 국가책임 약속 실현' 등이었다. 당시 정책과제들의 디테일을 중요시했던 나로선 과제들을 그냥 나열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모두 우리 사회의 진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담고 있단 점을 의심하진 않았다. 정책에 대해 공부를 열심히 하면, 내가 정의당이 하려는 일에 도움을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물론 그렇게 되진 않았지만..

노회찬 의원은 내가 쓴 책 <공약파기>를 다른 용건 없이 따로 찾아가서 드렸던 유일한 정치인이었다. 그냥 책만 살짝 드리고 오려 했는데, 그는 잠시 앉아서 차를 하자고 권하셨고, 살짝 담소를 나눌 수 있었다. 그때 책에서 다룬 '반값등록금 공약'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안타깝게도 그의 발언이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그가 "엠비가 있지도 않은 생선을 팔았다"(??)고 하며 나름 또 한번 촌철살인의 비유로 '반값등록금' 공약파기에 맞장구를 쳤다.

사실 이런 개인적 경험 말고도, 미디어를 통해서 접한 그의 모습들 중 기억나는 장면들이 무척 많다. 그분을 추모하는 마음으로 내가 겪은 경험들이라도 공유하려고 써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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