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적한 업무가 좀 많아 그간 글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계속 이어 정관사 the에 대한 썰을 풀어보도록 할까요? 먼저, the가 갖는 핵심적인 본질이 '배타성'을 떠올려 보겠습니다. 배타성은 어떻게 하면 생길까요? 가장 쉬운 방법은 바로 '지정'이 아닐까 합니다. 무언가를 지정하면, 지정하지 않은 나머지와 지정한 대상이 분리되기 때문이죠. the의 철자가 this와 that의 'th-'와 어떤 관련성은 없는지 개인적으로 궁금합니다만, 저는 언어학자가 아니므로 p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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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에 내포된 이러한 성격은 '공통의 대상'으로 지정되는데 사용되기 시작합니다. 어떻게? 일종의 메모리를 활용하는 것이죠. 요즘엔 잘 쓰지 않는 표현이지만 메모리를 RAM과 ROM으로 구별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먼저, RAM(Random Access Memory)처럼 사용되는 경우는 어떤 경우일까요? RAM은 일종의 휘발성 저장소로서 전원이 꺼지기 전까지 특정한 내용을 기억하고 있다가 전원이 차단된 후 다시 켜지고 나면 새로운 내용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저장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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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1) A와 B가 대화를 합니다. A가 대화 중에 어떤 대상을 언급합니다. 그 내용을 들은 B역시 그 대상을 (순간적으로) 기억할 수 있습니다. 이제 A와 B는 공통으로 인지하고 기억하는 대상이 생겼습니다. 그렇다면 그 대상을 언급할 때 우리는 'the'를 붙이며 구별할 수 있습니다. A와 B가 공통으로 지정한 대상이 된 것이죠.
(예2) A가 썰을 읊습니다. 그 과정에서 어떤 대상을 언급했습니다. 그 대상이 청자나 독자에게 순간 저장됩니다. (물론 A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그 대상을 다시 언급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럼 자연스럽게 the를 붙여 저장된 내용을 꺼내올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문법론에서 '한 번 언급한 내용을 다시 언급할 때 the를 붙인다'는 풀이는 크게 이 두 내용에 해당될 것입니다. 네이버 사전에 나온 예문을 한 번 보겠습니다.
There were three questions. The first two were relatively easy but the third one was hard.
'three questions'라는 대상이 나오고, 이 내용은 기억 속에 저장됩니다. 그리고 뒷 문장은 앞에 기억된 내용을 바탕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the를 통해 지정하고, 구별해 사용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그다지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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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우리는 이런 방식을 확대해 나갈 수 있습니다. 바로 ROM(Read Only Memory)처럼 활용하는 것이죠. 인류가 여러 세대에 거쳐 살아오는 동안 공통적으로 인지해온 내용들이 분명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특별한 의미도 부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태양은 수많은 별들 중 하나이지만 인류에겐 큰 의미가 있던 별이었습니다. 달도 마찬가지지요. 어쨌든 여러 사람, 여러 세대를 거쳐오며 늘 회자되고 이야기의 대상이 되는 것이라면 the를 붙여 특별히 구별해 나갈 수 있습니다. 뭐.. 생각해보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밤에 달을 보며 기도를 올렸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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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RAM처럼 썼든 ROM처럼 썼든, the는 일종의 메모리 효과를 이용하는 방식입니다. 사적인 대화에서 자유롭고 다양하게 대상을 지정(기억)하고 맘껏 꺼내쓰는 방식이든, 인류의 '인지' 특성에 기인한 특정 대상에 가치를 부여하는 방식이든 기억하고 꺼내쓰고.. 그것이 the를 활용하는 기본적인 개념입니다. 부정관사 a가 이를테면 내 눈앞에 나타나는 대상을 자세히 확인해 나가는 방식을 설명한다고 한다면, the는 나의 또는 우리의 머릿속에 인식되고 기억된 대상을 다시 꺼내오는 방식으로서 성격적으로도 엄연히 구별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정리해 볼까요?
- 부정관사 a : 흐릿한 개념을 자세히 확인해간다.
- 정관사 the : 저장된 내용을 다시 꺼내서 사용한다.
자세한 용례는 출장 좀 다녀와서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