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내용은 아니지만, 하단에 요약이 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욕설의 소재들이란 거의 정해져 있다. 첫째로 지능에 대한 욕설이 있다. 개인적으로 기분이 분명 나쁠 것임엔 분명하지만, 사실상 가장 낮은 수위의 욕설에 속한다. 또 배설물에 대한 욕도 있지만, 가장 심한 욕은 주로 성적인 성격을 가졌다. 상대방의 행동이나 직업을 성과 결부시켜서 비하하는 욕설들이다. 부록으로 상대방의 부모에 대한 욕설이 있다. 가령 부모를 동물에 비교하는 것도 성적 욕설의 응용으로 볼 수 있다.
전부 싸움이 일어날 정도로 기분 나쁜 내용임에는 분명하지만, 상대방에 대해 가질 수 있는 가장 폭력적인 태도는 사실 말이 아닌 생각에 있다. 상대방을, 존재해서는 안 될 사람으로 보는 것이다. 없어져야 할 부류, 박멸해야 할 부류. 인류의 가장 큰 폭력 사건들은 다 이런 생각에서 일어났다.
욕설보다는 생각이 중요하다면, 나는 왜 욕설에 대한 이야기를 굳이 먼저 꺼냈을까. 물론 대부분의 일상적인 욕설은 그냥 말일 뿐이기에, 어떻게 보면 무해(?)하다. 욕을 한다고 해서 꼭 상대방을 무슨 없애버려야 할 종자로 보는 마음이 있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그러한 태도를 만들어내거나, 이미 존재하고 있는 그러한 태도를 표현해주는 가장 대표적인 행위가 욕설이다. 신조어로 등장하는 새로운 욕설이 있다면 기분 나쁜 뉘앙스가 아닌, 그 정확한 내용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인간은 요리 보고 조리 봐도 참 악하고 폭력적인 존재이다. 과거를 봐도 현재가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옛날 이야기(?)를 하나 보기로 한다.
중세 말, 근대 초의 유럽에서 널리 유행(?)했던 프레스코화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소재 중 하나는 남근 나무(the phallus tree)이다. 아래는 그 중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투스카니 지역에서 1265년도쯤에 그려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1265년 투스카니의 '남근 나무' 프레스코화
위의 프레스코화가 꼬집고자 한 것은 신성 로마 제국 황제를 지지하던 기벨리니 당으로, 교황을 지지하는 겔프 당에 속한 화가가 그린 작품임을 알 수 있다. 그림의 1차적 메시지는 기벨리니 당이 성적으로 타락했다는 내용으로 볼 수 있는데, 다수의 프레스코화가 그렇듯, 그린 이의 의도에는 분명 유머가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위 그림을 심각하게 표현해봤자 정치적 패러디 정도였을 터인데, 욕설로 치면 성적인 욕으로 보면 될 것이다.
그러나 위 그림이 겔프 당이 기벨리니 당을 단순히 성적으로 비하한 결과는 아니다. 남근 나무는 기독교의 진정한 '내부의 적'으로 인식되었던, 고대 종교 또는 '이교'를 표현하는 아주 전형적인 개념이다.
물론 고대 종교 혹은 이교란 상당히 포괄적인 표현이지만, 대체적으로 풍요와 다산, 풍년 등을 기원하며 나아가 주문이나 주술 등의 방법을 사용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남근상' 또는 '남근 나무'도 같은 맥락의 개념이다. 나무 아래에서 서로 '열매'를 차지하겠다고 싸우고 있는 모습은 기독교 세계에서 몰아내야만 하는, 성적으로 타락했을뿐 아니라 매우 이교적이고 주술적인 류의 탐욕으로 그려진 것이다.
겔프 당은 기벨리니 당이 성적으로 타락했다고 희화화하길 넘어 '이교도' 낙인을 찍은 것이다. 반대편을 성적으로 비하하기 위해 '이교'개념을 끌어왔다기보다는, '이교'로 못박기 위해 성적인 이미지를 활용한 것이다. 실제로 겔프 당이나 기벨리니 당의 일원들이 비밀리에 '이교적인' 행위들을 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치사회적 적군을 정치사회적 적군이라고 정직하게 부르는 대신에, 기독교 왕국에서는 박멸해도 무방한 '이교' 딱지를 붙였다는 점이 중요하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서양의 종교를 논할 때 기독교에만 머무르는 경우가 많은데, 기독교는 원정을 통해 이슬람과 대립한 것 이상으로 이교의 잔재와 맞서 싸운 끝에야, 진정한 의미에서 유럽의 지배적인 종교가 될 수 있었다. 로마 제국이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해서, 곧바로 유럽 지역 곳곳에서 오래 전부터 존재해온 고대 종교들이 뿌리 뽑혔을 리가 만무한 것이다. (한반도에 일찍이 불교나 유교가 들어왔다고 해서, 이미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 샤머니즘적 요소들이 갑자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고 말할 수 없듯이 말이다.) 따라서, '이교'라는 것 자체가 허상은 아니었다. '이교'라는, 오랜 민속적 전통으로 뿌리내린 종교에 대한 인식은 굉장히 생생한 정치 싸움들에 불을 지폈고, 약 3백년 후부터는 마녀사냥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물론 애초에 로마 제국이 받아들인 기독교의 포교 자체도, 그러한 민속적, 고대 종교적 요소들과 결합해가면서 이루어지기도 했다. 그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하지만 기독교는 시대별로 명확한 '권위자'와 성서라는 '문서'가 존재하는 종교로서, 어떤 것이 '기독교적'이고 어떤 것이 '이교적'인지에 대한 의견을 종교 권위자로부터 구하기는 비교적 용이했을 것이다. 중세에는 쉽지 않았겠지만, 국가의 중앙 집권화, 신학을 포함한 학문의 집대성, 종교인의 체계가 잘 자리잡게 된 시기부터는 매우 쉬운 일이 되는 것이다.
앞에서 '이교'라고도 지칭한 고대 종교란 농업을 하는 지역이라면 어디에서나 자연스럽게 발전할 수밖에 없는 류의, 매우 민속적인 성격의 종교들을 말한다. 그 중에서도 기독교의 입장에서 본 유럽 내 '이교'의 뿌리란 상당부분 구약 성서 속 야훼 이외의 신들을 섬기던 종교들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이었다. 따라서 기독교 유럽 내의 '이교'란 성서에서 언급된 이교도적 행위들, 즉 유아 살해와 인신 제사, 난교 등의 성적 타락, 주술과 주문 등을 특징으로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성서를 떠나서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동체에 대한 '가해자의 보편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다. 아이들을 납치한다거나, 먹는다거나, 우물에 독을 푼다거나 하는 소문들은 어느 시대 어느 지역에서나 발견되는 소수 집단 박해의 서론이다. 유럽의 '이교' 이미지가 유독 성적 타락이나 유아 살해와 연관된 이유는 그러한 이미지가 성서에서 도출되었기 때문이리라. (물론 그런 행위를 하는 종교 집단이 유럽 땅에 아예 없었다거나, 전부 기독교의 망상이었다는 뜻은 아니다.)
물론, 기독교가 전파되기 이전의 오랜 종교들에 대한 그런 이미지들이 얼마나 현실에 부합했는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고대 종교들의 뿌리란 넓고 깊었기에, 기독교 유럽이 가졌던 그런 '이교'의 이미지들이 완전히 허구였다는 주장도 하기 힘들다. 중요한 것은 '이교'에 대한 그러한 이미지가 중세 유럽에 강하게 남아 이어졌다는 점이다. 그리고 3백년 쯤 후에 대대적으로 일어난 근대 초 유럽 마녀사냥의 근간을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고작 몇 달, 몇 년 이어진 선동으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는 못하는 것이다.
물론 농촌 사회일수록 고대 종교의 잔재 또는 그러한 신앙의 요소들을 찾아보기가 쉬웠을 것이다. 기독교뿐 아니라 근대 태동기의 이성과 과학, 산업 역시 '이교 마녀'를 박멸하기 위한 도구로 작용했다. 민속 요법으로 치료하는 사람들, 뭔가 자연과 소통한다거나 신비로운 힘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사람들, 어떤 이유로든 자본주의의 태동기에 밀려나고 소외된 사람들, 이웃을 저주했는데 실제로 안 좋은 일이 일어났다거나 하는 일에 휘말린 사람들 등등. 이렇듯 마녀사냥은 고대~중세의 기독교와 이교 간의 싸움을 초월해서, 근대의 이성(으로 일컫는 측)과 비이성(으로 불리는 측) 사이의 오랜 혐오가 폭발한 결과로 일어났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중세의 산물로 많이들 인식하고 있는) 마녀 사냥은 사실 근대 초에 가장 심했던 것이다. 중세까지는 기독교 내의 '이단 박멸'이나 정치적 세력 싸움이라고 봐도 무방한 반면, 근대 초에는 대대적인 마녀사냥이라 불릴만한 것들이 유럽 온 지역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신앙의 시대에서 이성의 시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초자연적인 힘을 악마로부터 부여받았다'는 이유로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다는 것은 매우 아이러닉한 일이다. 근대 초의 마녀사냥이란 인간의 이성이라는 개념이 가장 비이성적인 일을 벌이는 데에 기여한 사례이다. 아니, 그러한 사례 중 하나이다.
물론 근대 초에 절정에 달한 마녀사냥의 원인들은 많고도 복잡하지만, 그 중에는 중세의 종교가 그간 다소 눈감아주며 상생해온 민속적 요소들에 붙여놓았던 '이교' 딱지가 분명히 한 자리 차지하고 있었다는 얘기이다. '이교'에서 출발해, 마술사, 마녀의 개념을 이론적으로 탄탄하게 정리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근대 초의 전형적인 마녀 이미지. 마술사나 마녀는 어떤 초자연적인 존재가 아니라 이교도를 계승한 후손으로, "악마와 결탁한 사람들"이었다.
마녀는(번역어는 이렇지만, 여성에 국한된 개념은 결코 아니다.) 겔프당의 프레스코화에서 볼 수 있는 '이교도'와 마찬가지로 성적으로 타락한데다가, 거기서 더 나아가 악마와 결합하는 존재로 그려졌다. 아기들을 악마에게 바치면서 온갖 난교를 행하는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산파들은 출산 또는 낙태를 도운 이유로 마녀 이미지에 쉽게 부합하는 직업군이었다. 또한 마녀 곧 악마 숭배자들의 흑미사라 불렸던 것은 주로 성적인 행위와 난교로 이어지는 의식을 뜻했다.
왜 '마녀'에 대해 유독 그렇게 성적인 이미지가 생겨났을까. 물론 성을 활용하는(?) 종교 의식은 고대의 '이교'의 특징이었고 그것이 '마녀'의 특징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그 외에도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성적 타락과 유아 살해란 근대 사회에 필요한, 일부일처 제도에 충실하고 자식을 낳아 인구증가에 기여하는 인간상과 가장 대척점에 서 있는 인간상의 특징으로 이해되었던 것이다. 소위 대세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박해는 고대에도, 중세에도, 근대에도 항상 인류의 역사를 장식했다. 겔프 대 기벨리니 시대의 시각과 근대 초 마녀에 대한 시각 사이에는 3백년 정도의 엄청난 시간적 간극이 있지만, 별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 어느 시대로 이동해도 그럴 것이다.
현대인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라는 공허한 책망은 효과도 없는 데다가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라, 굳이 할 필요도 없다. 싸우고, 갈등할 수 있다. 그게 현실이다. 그러나 의견 차이로 인한 갈등은 그냥 그대로 지칭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인간이란 구체적인 갈등이 생길 때마다, 보편적인 흑백 개념들을 끌어와서 갖다 붙이기 바쁜 존재이다. 나와 네가 싸우는데 무슨 선과 악의 대립이라는 둥, 오글거리는 말을 너무 쉽게 내뱉는다. 단편적으로 볼 수 없는 역사라는 것을 가지고 너무나도 쉽게 상대방에게 '박멸 대상', '불의', '내부의 적' 등의 딱지를 붙이는 일이 빈번하게 있다. 구체적인 이슈, 가령 복지에 대한 생각, 난민 수용에 대한 생각, 과세나 최저임금에 대한 생각이 다른 사람을 그냥 그렇게 있는대로 보는 일은 매우 힘들다. 애초에 '그릇된 인식의 틀로 세상을 보는' 사람으로, 자신도 모르게 남을 못박게 된다.
물론 상대방이 나와 굉장히 다른 인식의 틀을 갖고 있음은 분명하지만, 우리는 종종 상대방을 무슨 인류의 적쯤 되는 것으로 부르고 싶어하지 않는가. 기독교 왕국에서 겔프와 기벨리니가 서로 '반대편에 선 정치 세력'이 아닌 '이교'로 못박고, 근대 초의 정치-종교-이성의 트리오가 많은 비주류들을 '마녀'로 못박았듯이 말이다.
겔프 당과 기벨리니 당으로 돌아가서, 그들의 갈등의 본질은 애초에 그들이 내세웠던 '교황 대 신성로마제국'이라 보기도 힘들다. 두 정치, 종교 세력 사이의 갈등이 봉합된 후에도 계속해서 지역별로, 길드별로 나누어서 싸움의 전통을 이어나갔기 때문이다. 겔프 대 기벨리니의 갈등 원인은 애초부터 지역 감정, 그리고 각종 이익 관계였던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가령 겔프 당의 색채를 가진 도시가 내부 반란을 겪고 기벨리니의 도시가 된다거나 하는 일도 계속해서 일어났는데, 이러한 역사들이 쌓여서 혐오를 오래 유지 시켰다.
결국 애초에 누굴 위해, 뭘 위해 싸운 것인지는 별로 중요하지도 않게 되었다. 수많은 개인들 사이의 이익 및 원한 관계가 얽히고 섥혀서, 애초에 교황파 대 제국파였다는 이미지만 겨우 유지하게 된 것이다. 우리가 내세우는, 반대편과의 갈등의 원인은 아직도 생생하고 유효한 것인가, 아니면 우리의 탐욕과 시기심, 이기주의를 채우기 위한 허울뿐인 명분인가?
갈등이란 인간의 고질적인 질병이다. 이에 대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는 갈등이 자기파괴적인 성격을 띠지 않도록, 상대에 대한 태도를 '부동의'나 '이의' 정도의 차원으로 유지하는 것이다. 인간의 특성으로 이성을 내세웠으면, 그에 맞게 행동해야 하지 않는가. 사실 같은 인간이라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상대방의 존재 정도는 허용해줄 수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인류에 대한 막연한 사랑을 가질 필요도, 또 그럴 수도 없지만, 최소한 이름과 얼굴을 아는 개개인들에 대해서는 좀 존중할 수 있지 않을까. 가령 어느 개인의 이름을, 굳이 고인이라는게 중요하단 건 아니고, '자살'의 뜻으로 사용하는 것은 보기 괴로운 일이다. 그리고 그런 일은 수많은 사례 중 하나일 뿐이다.
중세와 근대 초에는 종교+이성의 이름으로 권력자들이 칼을 휘두르고 민초들이 욕설로 점철된 노래를 하며 불을 지폈지만, 현대에 와서는 '정의'가 비슷한 역할을 하지 않을까 싶다. 이 시대에는 자신이 더 논리적 혹은 현실적이라는 생각만으로 상대를 죽이려고까지 하기는 매우 힘들다. 하지만 자신이 정의롭고 상대는 부패, 또는 불의의 화신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는? 아마도 상대로부터 삶의 발판까지도 빼앗고, 심지어 죽일 수도 있는 부류는 이런 사람들이 아닐까. 항상 "정의"를 자신의 신념과 동일시하는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기피하게 되는 이유가 그것이다.
원래는 구체적인 어느 사안에 대해 이야기하려 했는데 또 서론의 성격을 가진 글을 쓰고 말았다. 다음 회차에서는 옛날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고, 좀 구체적인 현안에 대해 써보고자 한다. 그러나 옛날 이야기는 계속해서 조금씩은 등장할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인간은 예로 보나 지금으로 보나 똑같이 악한 존재이니까. 이렇게 생각한다 해서 우울하거나 그럴 필요는 없다. 나도 인간이니까, 자조도 웃음이다.
아, 이 시리즈는 매번 이름에 걸맞게 성전 청소 영상으로 마지막을 장식하기로...이 영상은 '불관용'이 아니라 그런 '불관용'을 몰아내는 메타포 정도로 이해해주면 좋겠다. 아니, 그냥 '신의 아들' 캐릭터를 빌어 나 자신을 포함한 '인간'에 대한 유감을 표명하고자 하는 것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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