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밤입니다.
봄도 괜찮은 편이군요, 적어도 밤에는요. 슬슬 쌀쌀해질 때의 바삭한 가을 바람이 그립지만, 참을 만합니다.
오늘은 정체모를 향기가 저녁 공기를 감싸고 있었습니다. 바다를 따라 걷기 전에 만난 의외의 기쁨이었습니다. 아마도 나무에 잔뜩 핀, 이름 모를 꽃이었겠죠.
우스운 것은 첫 1초 동안 나는 그 향기를 마치 거름 냄새처럼 역하게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언젠가 당신이 해준 말이 기억났습니다. 장미 향기도 과하면, 배설물에서 나는 냄새와 구분할 수 없다고.
시간이 많이 흘렀고, 내가 당신과 소통하지 않도록 했던 이유들이 이제는 내 속에서 온전히 소화를 거쳤습니다. 내 것이 되고 나니, 당신에 관한 기억도 제법 향기처럼 느껴지는군요. 적어도 내게는 말입니다.
그래서 드디어 당신에게 펜을 들었다고 하면 무례하게 들릴까요.
생각해보면, 내게는 항상 당신에게 직설적일 수 있는 여유가 있었지요. 당신은 그 사실을 무척 싫어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는 당신이 그것을 감히 싫어한다는 사실을 싫어했고요.
그러나 오늘은 그 이야길 하려는 게 아닙니다.
노트르담의 성당, 위고의 그 소설 말입니다. 그 이야기는 수 차례 영화화되면서,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되어버리곤 했었지요.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엉뚱한, 행복한 결말이 거의 매번 따라붙곤 했습니다.
원래대로라면 집시 소녀는 처형 당했고, 긴 세월 끝에 그녀를 찾은 어머니는 마음이 무너져내려 그 자리에서 같이 죽었지요. 집시 소녀가 사랑한 군인은 그녀를 까마득히 잊었으며, 그녀를 애증했던 성직자는 처참한 죽음을 당했죠. 그리고 노트르담 성당의 종을 울리던 추한 곱추는 집시 소녀의 무덤까지 따라 들어가 죽었습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현실은 거의 그렇게 진행됩니다. 아니, 거의 그렇습니다. 물론 오늘날 그렇게 처형당하고 죽고 죽이지 않을지는 모르지만요.
아름다운 집시 소녀는 여전히, 영혼이 없어 보이는 미남자에게 마음을 쏟지요. 사실상 육욕인 것 같은데 그녀는 그것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녀가 그렇게 바라는 금빛 머리의 군인은 그녀의 아름다움을 진짜로 이해할 능력 따위는 없는 남자인 것 같습니다.그의 사랑은 가볍고 빠르며, 당장의 욕구와 신분상승에의 꿈에 가려 결코 성장하지 못할 것이구요.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당신이 빠져버린 그녀는 그런 남자를 택하기 마련입니다. 시간이 지나 상처를 입으면, 당신을 택할 수 있을까요. 모르겠습니다. 현실에서는 그녀에게 꽤나 괜찮은 배경이 있고, 금빛 머리 남자는 그녀에게 만족하여, 얕고 유쾌한 관계 속에서 둘이 영원히 행복하게 살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다가 그녀가 대화가 필요할 땐, 어쩌면 당신에게 전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아마 전화를 매번 받을 것입니다.
자신에게 영감을 준 신을 섬기고 학문에 종사하기 위한 길을 택한 성직자는 어떨까요. 그는 뒤늦게 자신의 몸과 마음 속에 있던 열정을 알아차립니다. 차라리 몰랐다면 좋았을 터이니, 자신을 일깨운 집시 소녀를 저주하게 됩니다.
그가 그 길을 선택하기 전에 한 남자로 살아보았다면 달랐을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젊은 시절의 그에게는 인생을 고민해보고 선택할 그런 여유 따위는 주어지지 않았었지요. 그래서 그는 오늘도 그렇게 살아갑니다.
집시 소녀의 몸을 억지로 가지려고 해도 어떻게 뭘 해야 할지도 모르는 동정의 신체, 그리고 차라리 그녀를 고문하고 죽이려고까지 하는 심정, 두 가지 모두 한 사람의 것이라는 사실은 안타깝지만, 솔직히 그 이상으로 추하게 느껴져요. 애써 그렇게 느끼지 않으려고 해도 말이지요.
또, 누가 봐도 겉모습이 흉측한 곱추는 짐승처럼 자라났습니다. 그가 성직자를 도와 그녀를 납치하는 범죄를 저지르다가 채찍으로 맞는 형벌을 당할 때, 성직자는 그를 버립니다.
그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은 집시 소녀 뿐입니다. 곱추는 마치 처음으로 배려를 받은 동물처럼 감격해서, 갚고 또 갚으려는 마음을 갖게 되지요.
그래서 훗날 곱추가 집시 소녀를 구했을 때, 집시 소녀는 그를 점차 믿음직한 가구처럼 익숙하게 여기고, 어쩌면 의존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이상 바랄 수 없는 존재였지요. 그녀를 백 번 구했어도 마찬가지였을 거에요.
집시 소녀의 어머니는 딸을 알아보지 못하고 긴 세월을 보내지요. 소녀를 볼 때마다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여서, 딸인줄도 모르고 매일같이 그녀를 저주합니다.
그러다 결국 딸을 알아보게 되지만, 그 날에는 마침 딸의 처형식이 있습니다. 그런 비참함을 마주한 모성에 대해서는 뭐라 말할 수 없군요. 상상도 가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나의 고양이들을 관찰한 결과에 따르면, 새끼를 잃는다는 것은 분명히 세상에서 가장 가슴 아픈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저, 추측을 할 뿐입니다. 당신의 아픔에 대해서 그러하듯이.
결국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이것입니다.
당신이 나를 회의주의자로 부를 때, 나는 당신에게서 느꼈어요. 노트르담의 성당 이야기를 아름답고 행복한 이야기로 바꾸어서, 영화로까지 만든 사람들의 마음을요.
그러나 이것 역시 나름대로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닌가요.
그림은 전부 뭉크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