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공부좀해라ㅉㅉ 넌 커서 뭐가 될래?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말.
넌 커서 뭐가 될래?약 5년전까지 들었던 말이다.

..누구나 한번쯤은 생활에 일탈을 두어 마음대로 하고 싶은 날 들이 있을 것이다.
무려 5년전까지 들어왔던 말이었다. 23살이되고 난 그때 당시에 이렇게 생각했다.
앞으로 "난 잘 될거야" 취업도 하고 좋은 배우자도 만나 행복하게 살 수 있을걸?
그게 내 꿈이었나보다, 시간이 지나다보니 내게 남겨지는건
앞으로의 미래의 시간과 점점 흐려저가는 내 꿈들, 떠나가는 친구들, 내게 남는건 큰 야망이 아닌 작은 허망함일 뿐이었다.
어린시절부터 남들보다 손재주가 좋았고 여러 과학부분과 기술부분 수상도하며 나름 어린시절 전성기로 요즘듣는 "인재"소리도 듣고는 했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그 시절에 과대망상일뿐 쭉 갈 것이라는 착각에 시간이 너무나 많이 흘렀고
이제 내게 남겨진건 친구도 시간도 아닌 나 혼자다.

"야 장금아 잘 지내냐?"
"어? 오랜만이다. 잘지내지, 어쩐일이야?"

매우 반가웠던 친구들의 안부,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내 착각이었고 하나같이 똑같았다.

"어~ 그냥 '부탁할게 있어서' 혹시 보험 들었냐?"
"아.. 어.. 들었지 나중에 보험들거 있으면 연락해줄게..."
"그래 고맙다. 친구좋다는게 뭐냐~"

늘 같은 래파토리에 연락오는 친하지도 않은 친구라는 이름으로 개같은 위선 매번 짜증났다.
어느 친구하나 내 생일도 기억못하고 난 주변 친구들의 생일을 축하해주고 있고
내가 인생을 잘못 살아왔나 자괴감까지 들고는 했었다.

군대를 23살 12월에 영장을 받고 입대전까진 흔히 말하는 좀 생겼다는 부류에 속한 페이스로 남사친보다 여사친이 더 많을 정도였었다. 내 스스로가 남사친보다 나랑 자주놀고 맘이 맞는 여사친의 친구가 더 좋다고 느낀 것이다.
하지만, 페이스북의 여러가지 남녀관계에대한 폭탄글들이 터지며 여자들과 남자들의 갈등관계가 형성되고
연애한번 해본적도 없이 그냥 여사친이 많다는 이유로 일생에 연애를 해본적이 없었다. 또한 연애하고 쓰렉이짓하는 남자들과 똑같은 취급을 받기도 했었다. 말그대로 좆같았다.
이 억울함을 꾹 참고 참을 수 있었던건 내가 앞으로 잘 살거라는 희망하나였다.

23살까지 내게 공부좀하라고 했던 사람이 "아버지와 선생님"이다.
난 그저 어린 17살 나이와 23살의 나이까지 내가 뛰어난 손재주를 가졌으니 특별히
무엇을 안해도 잘 될 것이라 생각하였고 대학생이 되었을 나이 20살에 모든걸 착각속에 살았다는걸 그때 하나씩 느껴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누구든 남을 탓할때가 있다. 자신이 인정하지 못해 회피하기 위하여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경우이다.
안타깝게도 나도 그런 아이였다.

더 좋은 대학을 갈 수 있었는데 아버지 능력이 이것뿐이라서 내가 원하는 대학도 못갔다며, 소리질렀고
사업에 실패하고 시골에서 농업으로 자식들을 키우며 다시 일어나신 아버지께선 화가나셨는지 날 때리셨다.
난 너무나 슬펏고 아버지를 원망하며 집을 뛰처나갔다. 넉넉한 형편에서 자란 사람은 모른다.
그 가난함과 배고픔이 얼마나 가슴아픈지...
17살부터 난 이르바이트를하며 모든 생활비를 내가 감당했었다. 시급 3천원도 안되는 악덕업주에게 12시간씩 굴려가며
일해서 이틀간 벌은 돈 7만원.. 난 그것마저 감사햇다. 핸드폰비와 내가 사고싶은 물건의 돈이 조금은 마련됐으니까..
이렇게 난 꿈도 포기하고 공부도 포기하며 누군가 제발 공부좀 하라고 했을때 일을 시작했고
주변에서 나에게 묻는다, 넌 커서 뭐가 될래?
난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이것을 알게 된 선생님은 더이상 내게 아무말씀 안하셨고
날 봉사동아리에 넣으셨다. 내가 삐뚤어질 것을 감안해 봉사하며 마음을 비우라는 의미였던 것 같았다.
선생님의 예상은 적중했는지 난 대학교를 가기전까지 삐뚤어지지 않고 무사히 학교를 졸업했다.
그리고 선생님의 마지막 한마디와 함께 난 학교에서 점점 멀어졌다.

"너무 미워하지말거라"

대학교를 더 좋은 곳으로 갈 성적이 되었으나 가지 못해 아버지에게 소리지르고 뛰처나온 내 자신이
너무나 후회됐지만 아버지의 성격은 무뚝뚝하고 고지식하시며 굉장히 엄격하고 무서우셨다.
그렇기에 난 후회해도 아버지께 섣불리 죄송하다고 말하지 못한채 많은 시간이 흘렀고
2월 13일 난 대학교를 졸업하게 된다. 가족들이 졸업식에 와주었고 누구든 다 찍는 졸업사진
나도 남길 수 있게 되었다. 사진을 찍기전 아버지는 내게 이렇게 말씀해주셨다.

"거 지금와서 생각하니, 너 가고싶은 대학 내가 빚을 내서라도 보내줄걸 그랬구나"
후회안하겠냐, 아들아?내가 일생에 널 때리면서 옳게 키우길 바래 엄하게 키웠지만
넌 이제 성인이고 그때 널 화가나서 때린 이 못난 아버지가 미안하구나"

.....
사진을 찍어야하는데 그 순간 참아왔던 눈물이 터젔고..
내 가슴속에 응어리들이 한번에 터저나와
날 슬프게 만들었다.

...
시간이 흘러 이제 내게 남은건 없다.. 한가지 다시 내게 생긴건 아버지라는 존재
그리고 내가 꿈꿔왔던 꿈. 아직도 날 친구라 부를 내 벗들.

누군가는 내게 이렇게 물어본다." 왜 혼자야?"

"그냥 .. 꿈꾸기에는 혼자가 편해서"

"얌마 왕따냐? 그땐 날 불러 내가 남아도는게 시간이니까ㅋㅋ"

"어ㅋㅋ.. 그래 연락할게"

처음이다. 날 소중하다 생각해주는 친구가 있다고 느낀게.

"그래서 난, 커서 꿈을꾼다."
"성공한 내 모습으로 감사하다 전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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