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체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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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원래 kr 태그에 있는 모든 글을 다 읽었다. 모든 글을 다 읽고 마음에 드는 글을 쓰는 작가와 관계를 쌓기 위해 노력했다. 내 피드를 내가 읽고 싶은 글로 채우고 싶었다. 하지만 단순히 나와의 관계로 작가들의 동기가 유지되지는 않았다. 나는 보팅파워를 거의 소진하지 않았다. 거의 항상 100%를 유지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스팀잇이 지금보다도 느려서 보팅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서 시간이 모자랐다. 그리하니 스팀잇 생태에서 살아남기는 아주 어려웠다. 당시에는 댓글을 엄청 길게 달았다. 평소에 쓰는 포스트의 길이에 버금가는 길이의 댓글을 달곤 했다. 수도 없는 신규 회원 사이에서 이는 그다지 효과적인 전략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명성도 낮고, 스팀파워도 낮다.

그래도 꾸준히 읽고 싶은 글들을 쓰는 작가들과 관계를 형성했다. 내가 그리도 긴 댓글을 다니 상대도 그에 버금가는 양의 댓글을 달았다. 아마 그래서 그 작가들은 다른 이들과 관계를 형성할 시간을 희생해서 나에게 쏟았을 것이다. 내가 그들의 글에 가서 장문의 댓글을 다니, 거기에 장문의 댓글로 화답한다. 그리고 내 글에도 장문의 댓글로 답변하며, 나도 이에 장문의 댓글로 답변한다. 나는 두 사람과 댓글을 주고 받는 것에만 하루에 5시간 이상을 투자한 적도 있다. 아마 이 시간에 50명의 신규회원에게 댓글을 달았다면 더 많은 팔로워를 얻고, 더 많은 스팀파워를 가졌으며, 더 높은 명성을 지닌 작가가 되었을 것이다. 스팀잇의 한계 중 하나이다. 생산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은, 오히려 비생산적이다. 실체가 없는 허상에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은 생산적이다.

그래도 나는 꾸준했다. 꾸준히 마음에 드는 작가들과 관계를 형성했다.그렇게 희망을 가졌다. 하지만 그 작가들은 어느새 떠나갔다. 스팀잇에서 있었던 많은 논쟁, 특히 "가벼운 글"에 대한 논쟁에서 많이 떠나갔다. 당시에 나를 비롯하여 시간을 크게 쏟던 이들은 그 "가벼운 글"에 비해 압도적으로 부족한 보상을 받았음에도 "가벼운 글이 보상을 더 많이 받아야 한다."는 주장에 역겨움을 느꼈다. 가벼운 글에는 보상이 따르면 안 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일상을 담은 이야기도 좋아한다. 하지만 "어려운 글"은 충분히 보상을 받고 있다는 주장이 역겨웠다. "가벼운 글"도 보상 받아야 한다는 작가는 내가 한달동안 쓴 글의 보상보다 많은 보상을 한주만에 받고 있었다. 나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었다. 나보다도 더 컨텐츠에 집중하는 사람들은 처절한 보상을 받았다. 100원은 되었을까? 관계에 의한 보상이 나쁘다는게 아니다. 컨텐츠에 집중한 사람을 크게 압도함에도 부족하다며 일어나는게 역겹다는 것이다.

많은 작가들을 놓치고 나는 KR 태그를 모조리 읽을 자신이 없어졌다. 당시에는 스팸도 엄청나게 많았다. 한국 커뮤니티에 발 디뎌보기 위해 표절부터 스팸까지 엄청나게 몰아치는 와중에도 다 읽어냈던 KR 태그를 더 이상 읽을 기운이 남지 않았다. 그래서 놓친 작가들도 많을 것이다. 내가 KR 태그를 더 열심히 읽었다면, 힘을 잃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갔다면 떠나가지 않았을 작가도 있을 것이다. 보상과 관계 없이 하나의 댓글만으로도 남았을 작가가 있었을 것이다. 이를 실감할 때도 있다. 나는 기운을 잃고 나서부터 댓글을 많이 달지 않았다. 조용히 보팅으로 지지를 표했다. 하지만 내 적은 스팀파워가 작가에게 어떤 힘을 줄 수 있겠는가? 대부분의 작가들은 투덜거리지도 않는다. 투덜거린다는건 남은 힘이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그들은 그냥 떠나간다. 기운이 다해서, 작별을 고하기도 힘들어 그냥 떠나간다.

암호화폐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고, 스팀의 강세가 지속되며 신규 회원들이 많이 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 나에게 @Morning께서 스팀파워를 임대해주셨다. 내가 부탁 드린 것도 아니고, 임대와 관련하여 말 한번 나누어 본 적도 없음에도 제안하신 이유를 잘은 모른다. 그래도 뿌듯하다. 반년간의 몸부림이 전달된 것 같다. 그래서 이제 나는 작가들에게 "커피 한잔 사먹고 힘냅시다." 할 수 있을 정도의 파워는 가지게 되었다. 이제는 기운을 차릴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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