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작가&글작가 콜라보 이벤트] 산타클로스 비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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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bok님의 '산타와 친구들' 시리즈를 모티브로 하여 만든 이야기입니다. @zzoya님의 그림작가&글작가 콜라보 이벤트 응모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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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클로스 비긴즈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 중 하나인 산타가 최근 마법을 잃고 평범한 농부로 살아가게 된 이유를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이 서신이 전달된 이후엔, 세계에서 몰려든 기자들과 숨바꼭질을 하며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산타가 평화를 찾길 바랍니다.

 모든 의혹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그간의 사정을 남김없이 말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산타의 뜻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세간의 추측과 의심을 담은 시각으로 산타의 이야기를 담아낸다면 또 다른 의혹이 불거질 가능성이 크기에, 산타는 기자 대신 동화 작가인 저 베델만을 선택했습니다.

 이야기는 2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산타의 증조부 니콜은 핀란드의 도시 로바니에미의 유력한 가문의 서자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는 알지 못했습니다. 비천한 계급의 떠돌이 집시 정도로만 추측합니다.

 니콜의 아버지 크링글공은 일 년 정도 이 도시에 머문 집시 광대들을 후원하고 있었습니다. 집시들은 이 북쪽의 추운 도시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녹여주는 연극과 갖가지 공연, 묘기 등을 선보였습니다. 별 즐거움 없이 살아가던 도시 사람들에게 이 광대 집시들은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밤마다 사람들은 따뜻한 난로가 있는 공연장에 모여서 집시들의 연극과 묘기를 감상했습니다. 집시들로 인해 도시에 활력이 생기자, 도시의 유력자 크링글공은 그들을 도시에 붙잡아 두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후원하였던 것입니다.

 집시들과 격이 없이 지내던 크링글공은 어느 날 공연이 끝난 후 저택으로 집시들을 초대해 술과 음식을 대접했습니다. 흥이 있고 호탕하던 크링글공은 밤새 그들과 즐겁게 어울렸습니다. 그때 크링글공의 눈에 든 집시 여인 하나가 매일 밤 크링글공의 저택을 드나들었던 것입니다. 니콜은 그 결과물이었습니다.

 니콜이 태어나고 석 달 후에 광대 집시들은 도시를 떠났습니다. 니콜의 어머니도 아기 니콜을 단 두 달 동안만 품에 안을 수 있었습니다. 그 후로 니콜은 엄마 없이 자랐습니다. 크링글공의 아내였던 수잔 부인은 니콜을 미워하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별다른 관심도 두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낳은 세 아이의 양육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니콜은 유모의 손에서 자랐습니다. 니콜 위의 세 남매와도 격이 없이 지냈습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말고는, 똑같은 형제로 대우 받았습니다.

 니콜이 처음으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게 된 것은, 귀족 학교에 들어가고부터입니다. 도시의 유력 가문의 자녀들이 다니던 학교에서 니콜이 출신은 늘 꼬리표처럼 따라다녔습니다. 학교의 선생님들도 다른 가문의 아이들과 니콜을 똑같이 대하지 않았고, 친구들도 가까이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니콜은 늘 혼자였습니다. 니콜은 어두운 밤이 되고, 방에 홀로 남겨질 때면 외로움과 그리움에 눈물이 났습니다. 아무나 사귈 수 없는 귀족이지만, 정작 귀족들은 자신에게 다가오지 않으니, 니콜은 친구 없는 외로움을 간신히 견뎌내고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멀리 떠났다고만 들은 엄마도 그리웠습니다. 자신의 눈물을 닦아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크링글공은 일 년에 두 번, 몬디에 숲으로 사냥을 떠나곤 했습니다. 그때 아이들 중 한 두 명을 데리고 가곤 했는데,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 모두 홍역에 걸렸고, 셋째 딸은 사냥에 가기 싫어 꾀병을 부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니콜에게 처음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니콜은 집을 떠나 먼 곳으로 간다는 것만으로 기대에 부풀었습니다. 크링글은 언제나처럼 도시에서 잘나가는 궁수들로 사냥 팀을 꾸렸습니다. 사냥 여정의 일행에는 유모의 남편이었던 베르누이 아저씨도 있었습니다. 아저씨는 활촉을 벼리는 역할로 크링글의 부름을 받고 따라나섰습니다. 니콜은 유모와 베르누이 아저씨를 좋아했습니다. 어른들뿐인 여정에 그나마 의지가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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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몬디에 숲에는 진귀한 동물들이 많았습니다. 몬디에 숲은 신령한 숲이라고 알려져 있었습니다. 숲의 법칙을 거스르면 반드시 응징하는 것으로 전해 내려왔습니다. 그래서 사냥꾼들은 새끼 동물들은 사냥하지 않았고, 유니콘 같은 요정의 동물로 알려진 것들 또한 건들지 않았습니다.

 크링글공 일행이 도착한 첫 날, 크링글은 니콜을 데리고 숲의 한 가운데로 갔습니다. 이번엔 커다란 수사슴을 잡아 박제를 해 둘 계획이었습니다. 일행이 그곳에 도착했을 때, 니콜은 오줌이 마려웠습니다. 그래서 타고 있던 작은 말을 나무에 묶어두고 베르누이 아저씨에게 다녀오겠다고 말한 다음, 스물 걸음쯤 떨어진 곳으로 볼 일을 보러갔습니다. 그 순간, 일행의 눈 앞에서 거대한 수사슴 한 마리가 나타나 북쪽으로 달려갔습니다. 크링글과 사냥꾼들은 말을 몰아 수사슴을 뒤쫓았습니다. 니콜이 함께 있는지 확인해볼 사이도 없었습니다. 소변을 보고 돌아온 니콜은 숲의 한가운데에 혼자 있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오길 기다리며 한참을 서성거렸지만,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습니다.

 밤의 어둠이 숲에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풀벌레 소리가 커지고, 하늘엔 별이 돋았습니다. 어디선가 노랫소리 같은 소리도 들리는 것 같고, 피리 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니콜은 몬디에 숲엔 밤에 가는 게 아니라는 더 어릴 적 들었던 유모의 얘기가 떠올랐습니다. 니콜은 숲을 빠져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타고 왔던 작은 말에 올라탔습니다. 어쩌면 아버진 숲 밖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니콜은 기억을 더듬어서 왔던 길로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한 시간을 넘게 갔는데도 숲의 입구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저 멀리 앞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뭔가를 발견했습니다. 말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니콜은 멀찍이 말을 묶어놓고 그곳으로 조심스레 다가갔습니다. 썩어 넘어진 나무를 방패막 삼아서 나무 너머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자세히 들어보니 그건 사람의 목소리였습니다. 니콜은 반가운 마음에 고개를 들고 나무 너머를 바라보곤 깜짝 놀랐습니다. 대화를 나누고 있던 건, 사슴 한 무리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사람처럼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족장님은 무사하실까? 왜 가셨을까, 평소처럼 숨어 있으면 사냥꾼들은 다른 곳으로 갈 텐데 말이야. 그 귀족들은 숲의 법칙을 지킬 사람들 같아 보였는데.”
“아니야. 그 무리 중에 숲의 파괴자가 있다고 하셨어.”
“숲의 파괴자? 숲의 동물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고 숲을 파괴하는 녀석들 말이야?”
“응 맞아. 귀족 일행 틈에 조용히 숨어서 들어온 모양이야. 그가 들어온 이상, 우리 숲은 안전하지 못해.”

 니콜도 숲의 파괴자에 관한 옛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숲의 파괴자는 숲의 동물과 숲을 황폐화 시킬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전염병을 퍼뜨리고 전쟁을 부추겨 인간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존재였습니다. 마법을 부린다고 알려져 있고, 평소 조용히 지내다가 달과 태양이 일정한 지점에서 일직선이 되는 해에 활동을 하여 엄청난 피해를 준다고 이야기책에서 읽은 기억이 있었습니다. 이야기 속 존재로 생각했던 숲의 파괴자 이야기를 사슴에게 들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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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사슴 중에 몸집이 작고 코가 유독 빛나는 사슴 하나가, 다른 사슴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끼어들었습니다.

“숲의 파괴자는 마법을 써서 돌려보내면 되잖아? 숲의 정령에게 부탁해도 되고.”

 다른 사슴들은 그 작은 사슴을 비웃으며 말했습니다.

“너 이 녀석, 숲 파괴자에겐 마법이 안 통한다는 거 몰라? 인간 마법사가 있어야 그를 쫓아낼 수 있어. 넌 그 정도도 모르면서 이 대화에 끼려고 하냐? 제발 입 좀 닫고 있어.”

 작은 사슴은 이내 잔뜩 움츠러들었습니다. 사슴 무리들은 말을 마치더니, 숲 저쪽으로 사라졌습니다. 홀로 남은 작은 사슴은 한동안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니콜은 그 눈빛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외로움과 그리움. 그래 저 사슴의 눈빛은 내 눈빛과 같구나.

 니콜은 사슴 앞으로 나섰습니다. 사슴은 갑자기 인간이 나타나니 놀라서 몸을 세우고 달아나려고 했습니다. 니콜이 사슴의 등 뒤에다 대고 외쳤습니다.

“내가 해결할 수 있어! 그 사냥꾼 일행의 우두머리가 내 아버지야. 내가 돌아가자고 설득하면 돼.”

 저만치 뛰어 가던 사슴이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그의 코가 더욱 빛이 났습니다. 사슴이 완전히 몸을 돌리고, 니콜 쪽으로 걸어왔습니다. 네 아버지라고? 네가 할 수 있다고? 그래, 내가 할 수 있어. 너희들 얘기 다 들었어. 우리 일행을 집으로 돌아가게 할 수 있단 말이야. 니콜은 사슴의 목소리를 듣고 다시 한 번 놀랐습니다.

“내가 들었던 게 착각이 아니었어. 말을 하는 사슴이 있다니!”
“이 숲에서 그건 별로 놀랄 일이 아니지. 내 목소리가 들린다는 건, 너도 평범한 사람은 아니라는 뜻이야. 너의 코를 봐.”

 니콜은 말을 하려다 말고 자기 코를 내려다봤습니다. 작은 사슴의 코처럼 빛이 나고 있었습니다. 어, 내 코가 어떻게 된 거지.

“이 숲은 마법을 가진 사람이 느끼는 강력한 몇 가지 감정을 비추어주지. 마음에 있는 게 신체로 표시된다는 말이야. 코가 빛나는 걸 보니, 너는 무척 외롭구나. 어떻게 아냐고? 내 코를 봐. 나도 너와 같은 처지야.”
“마법을 가진 사람이라고 했어? 난 그런 거 없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네 말이 맞아. 아직 없지만, 마법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라는 말이야. 누가 건네준다면 말이야.”

 니콜은 마법에 대한 얘기엔 별 관심이 가지 않았습니다. 지금 당장 아버지를 만나는 것이 우선이었습니다. 니콜은 사슴에게 아버지를 만나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숲의 파괴자가 누구인지를 몰라도 일행 전체를 끌고 이 숲을 떠나겠다고 했습니다. 작은 사슴은 알았다고 말하곤, 곁에 있던 큰 떡갈나무에 달라붙어 뭔가를 속삭였습니다.

“너희 아버지 일행이 널 찾고 있나봐.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고 해.”
“그걸 어떻게 알아?”
“응 이 나무들은 냄새를 뿜어내서 서로 소식을 전달할 수 있어. 머지않은 곳에 있는 참수리나무에게 전해온 소식이래. 냄새를 내뿜는 나무들을 따라가면 아버지를 만날 수 있을 거야. 날 따라와.”
“그래! 고마워.”

 니콜은 작은 사슴을 따라서 숲의 동쪽으로 나아갔습니다. 작은 사슴은 큰 나무들에 귀를 대가며 방향을 잡았습니다. 얼마나 갔을까요, 저쪽 풀숲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사람들의 목소리도 어렴풋이 들렸습니다. 작은 사슴은 니콜에게 저쪽으로 가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꼭 숲을 떠나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베르누이 아저씨가 그들이 서 있는 뒤쪽 풀숲에서 나타났습니다. 베르누이 아저씨가 니콜을 불렀습니다. 니콜과 사슴이 동시에 아저씨를 바라보았습니다. 아저씨의 이마가 밝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니콜이 반가운 마음에 아저씨를 부르려고 했습니다. 베르누이 아저… 니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슴이 탄식하며 말했습니다. 저 이마의 빛, 분노로 가득 차 있어! 그가 숲 파괴자야. 사슴은 몸을 부르르 떨며 도망을 가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사슴은 얼마 안가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베르누이 아저씨가 쏜 화살에 목이 관통하고 말았습니다. 작은 사슴은 비명 한 번 내지 못하고 즉사했습니다. 니콜은 순식간이 벌어진 일에 비명을 질렀습니다. 아저씨! 대체 왜! 니콜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아저씨가 다가왔습니다. 여전히 이마엔 빛이 번뜩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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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친 데는 없니? 우리가 얼마나 찾았다고. 이 사슴은 보통 사슴이 아닌 것 같은데. 혹시 이 사슴과 말을 주고받았니?”

 베르누이 아저씨가 손으로 니콜의 머리를 쓰다듬으려고 하는 순간, 니콜은 아저씨의 정강이를 힘껏 차버렸습니다. 아저씨는 갑작스런 일격에 몸이 휘청하더니, 앞으로 꼬꾸라졌습니다. 아저씨의 이마가 더욱 밝게 빛났습니다. 니콜은 피로 물든 사슴을 옆구리에 끼고 왔던 길을 내달렸습니다. 등 뒤에서 아저씨의 외침이 들렸습니다. 널 찾을 거다, 니콜! 니콜은 완전히 어둠이 내린 숲 속으로 쉬지 않고 달렸습니다.

 얼마나 달렸을까요. 커다란 리기다소나무가 군집을 이룬 곳에 도착했을 때 니콜은 처음으로 사슴을 내려놓고 큰 숨을 몰아쉬었습니다. 니콜의 온 몸은 붉게 물들었습니다. 사슴도 피로 물들었습니다. 니콜은 나무 아래서 거친 숨을 몰아쉬다 그대로 잠이 들었습니다. 니콜이 눈을 뜬 건, 가까이에서 따뜻한 공기를 느껴서입니다. 많은 사슴들이 니콜을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아까 보았던 사슴 중 하나가 누군가에게 말을 했습니다.

“숲의 정령님, 숲의 파괴자예요! 그가 루디를 죽였어요. 저흰 두렵습니다.”
“슬픔보다, 두려움이 앞서느냐. 루디는 너희의 형제였다.” 니콜은 자신이 기대고 있는 나무에서 부드러운 음성이 흘러나온다는 걸 깨달았다.
“정령님, 루디는 어려서부터 가족이 없었어요. 저희의 형제도 아닙니다. 저희가 다만 걱정하는 것은 숲의 파괴자가 이 숲을 모두 쓸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것입니다.”
“너희의 걱정을 알겠다. 내겐 죽은 루디를 위해 슬퍼해줄 사슴이 없다는 것이 더 큰 위험으로 느껴지는구나. 슬픔보다 두려움이 앞서게 된 사실이 더 큰 위기로 느껴진단 말이다.”
“정령님,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이 아이가 그 일행 중 한 명의 자식입니다. 이 아이를 이용하여 그들을 쫓아내야 합니다.”
“너희들의 두려움은 내게 맡기고, 온전히 슬퍼하도록 해라. 루디의 죽음을 말이다. 내가 루디를 살려내기 전에, 슬퍼할 기회가 있을 때 슬퍼하라.”

 니콜이 기댄 소나무에서 진이 나오는가 싶더니, 송진이 공중에 떠서 죽은 사슴의 목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송진이 얽히며 사슴 목에 난 화살 구멍을 막았습니다. 송진은 구멍을 막으며 구멍을 통해 사슴의 몸속으로 흘러들어갔습니다.

“이제 루디는 너희 사슴들의 일원이 아니다. 루디는 이 아이와 묶일 것이다. 루디는 너희를 살릴 운명을 타고 난 사슴이었다. 하지만, 너희는 그 기회를 놓아버렸다. 너희는 작은 위험에도 생존을 걱정하게 될 것이다. 너희 대신 루디의 죽음을 슬퍼한 이 소년은 나의 마법을 갖게 될 것이다. 이 소년은 숲의 파괴자와 싸울 것이다. 대를 이어서 말이다.”

 작은 사슴 루디의 온 몸에 빛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니콜의 얼굴에도 빛이 났습니다. 어둠으로 가득하던 주변은 환해졌습니다. 눈이 부실 정도였습니다. 루디는 숨을 쉬고 눈을 떴습니다. 니콜도 몸 안으로 뜨거운 기운이 흘러들어온다는 걸 느꼈습니다. 니콜은 자기 안에 늘 비어있던 무언가가 채워지는 걸 느꼈습니다. 더 이상 외롭고 슬프지 않았습니다. 니콜은 루디와도 단단한 결합이 생겨난 걸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앞으로 오랫동안 함께 일 것입니다.

“가거라, 소년이여. 너의 첫 번째 싸움이 기다리고 있다.”

 니콜과 루디는 일어섰습니다. 온 몸이 피로 물들었지만, 몸엔 활력이 넘쳤습니다. 니콜은 해야 할 일을 알았습니다. 루디의 몸이 아까보다 커졌습니다. 루디는 니콜을 등에 태우고 아까 왔던 길을 돌아갔습니다. 저 멀리 언뜻 횃불이 보였습니다. 니콜은 풀 숲 사이에서 횃불과 다른 빛을 언뜻 보았습니다. 이마에서 나오는 빛을 말입니다. 베르누이 아저씨가 풀을 헤치고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아저씨는 두 손으로 활시위를 당기고 있었습니다. 이마의 빛이 더 밝아졌습니다. 니콜은 손이 흔들리는 걸 느꼈습니다. 손이 뭔가를 하려고 했습니다. 니콜은 순응했습니다. 두 손을 들고 베르누이 아저씨를 겨누었습니다. 아저씨에게 강한 바람이 휘몰아쳤습니다. 아저씨가 당기고 있던 활을 놓쳤습니다. 니콜! 넌 날 막지 못해. 숲의 파괴자의 눈이 붉게 충혈 되고 입술 사이에서 긴 혀가 날름거렸습니다. 손에서 불덩이를 만들어내어 사방으로 던졌습니다. 니콜이 불덩이를 향해 손을 뻗는 족족 불덩이는 작은 불씨가 되어 스러졌습니다. 그만해요, 아저씨. 아저씨의 정체를 알아요. 그때 더 이상 작은 사슴이 아닌 루디가 길게 뻗은 뿔로 숲의 파괴자를 들이받았습니다. 숲의 파괴자는 그 일격을 받고 뒤로 넘어졌습니다. 숲의 파괴자는 넘어지면서 왼손을 허공에서 비틀었습니다. 루디의 한쪽 뿔이 뒤틀리더니 이내 뚝 소리를 내며 부러졌습니다. 니콜은 더 이상 지체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양손을 들어 숲의 파괴자를 향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만해! 니콜의 몸에서 엄청난 파장이 만들어져 주변을 울렸습니다. 숲의 파괴자의 오른팔의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났습니다. 숲의 파괴자는 그곳을 떠나면서 말을 남겼습니다.

“니콜, 후회하게 될 거다. 나 같은 존재가 인간을 줄여줘야 이런 숲이 더 많이 살아남는다. 넌 자라면서 그 역설을 깨닫게 될 것이다. 넌 나와 또 만나게 될 거다.”

 니콜은 그 말을 듣고 몇 걸음 가다가 의식을 잃고 루디 위에 쓰러졌습니다. 날이 밝았습니다. 니콜이 깰 때까지 루디는 그곳에 있었습니다. 니콜이 깨어나자 루디가 말했습니다.

“니콜, 이제 갈 시간이야.”
“루디. 우리 함께 가는 거 아니야?”
“아니, 지금은 아니야. 나중에 내가 널 찾아갈게. 어디서든 널 느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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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콜이 아버지 일행을 발견한 건, 한 시간 거리의 협곡에서였습니다. 아버지는 니콜을 발견하곤, 말 위로 끌어올려 꽉 안아주었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숲을 빠져나왔을 때, 니콜은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저 멀리 루디가 이쪽을 보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루디가 몸을 가린 나무에서 한 발짝 나와서 니콜을 바라보았습니다. 루디의 코는 더 이상 빛이 나지 않았습니다. 대신 붉게 변해 있었습니다. 니콜의 코도 마찬가지로 더 이상 빛이 나지 않았습니다.

 훗날, 루돌프는 성인이 된 니콜라우스를 찾아왔습니다. 그렇게 니콜라우스의 가문은 대를 이어 루돌프와 함께 숲의 파괴자에게 맞섰습니다. 또 그들은 예전, 그들이 어렸을 때 따돌림 당하고 외로웠던 일을 잊지 않고, 성탄절에 외로울만한 아이들을 찾아다니며 선물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이 부업이 본업보다 더 많이 알려졌지요.

 니콜라우스 4세에 이르러, 숲의 파괴자는 최후를 맞았습니다. 질긴 가문의 사명이 끝을 맺었습니다. 숲의 파괴자와 함께 루돌프도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물론 나이가 들어서 편안하게 말입니다. 가문의 사명이 없어진 산타는 원래 살던 집을 떠나, 숲으로 들어가 동물들을 돌보고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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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고 안 믿고는 여러분들의 자유입니다. 다만, 더 이상 산타를 괴롭히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는 비로소 우리의 이웃으로 돌아왔습니다. 새로운 파괴자가 나타나지 않는 한, 그는 평범하게 살아갈 것입니다.


따뜻한 그림으로 영감을 주신 @dabok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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