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상식] 자유롭게 담배 피울 권리를 허(許)하라?


#01 들어가며 


  오늘은 알아두면 혹시 쓸데 있을지도 모를 신선한 법률상식, 흡연권과 혐연권에 대해 다루어보겠습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흡연자들의 불만이 극에 달해있습니다. 흡연자들에 대한 사회 일반의 부정적 인식, 담뱃값 인상으로 인한 경제적 부담, 정부의 지속적인 금연정책으로 인해 흡연자들이 설 곳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특히 언제부터인가 금연 구역이 하나둘씩 늘어나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도심 속에서 흡연할 만한 공간을 찾기가 매우 어려워졌지요. 길거리 흡연에 관한 논쟁을 비롯한 흡연자와 비흡연자 간의 갈등도 심각한 상황입니다.  



  흡연자가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흡연을 하든 원칙적으로 그것은 흡연자의 자유에 속하는 영역입니다. 국가를 포함한 그 누구도 흡연자가 누리는 자유에 간섭할 수는 없습니다. 한편, 비흡연자가 원치 않는 담배 연기를 마시지 않는 것 또한 비흡연자의 자유입니다. 국가를 포함한 그 누구도 이러한 비흡연자의 자유를 침해할 수는 없습니다. 흡연자와 비흡연자의 자유가 서로 충돌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지요. 



  국민 모두의 자유를 최대한으로 존중해주어야 할 국가는 누구의 손을 들어주어야 할까요?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지만, 우리 헌법재판소는 2007년과 2014년에 이미 이에 대한 결론을 내린 바 있습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 우선 '기본권'과 '기본권의 충돌' 개념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글을 모두 읽고나면, 당신도 헌법능력자! 


# 02 기본권과 기본권의 충돌


  •  기본권이란? 


  기본권이란 헌법에서 제시하고 있는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말합니다. 기본권은 종종 '인권'과  비교되곤 합니다. 인권이란 인간이 인간으로 태어남으로써 당연히 누리는 천부적인 권리를 말합니다. 기본권은 인권에 해당하는 천부적인 권리뿐만 아니라 국가를 상대로 주장할 수 있는 다양한 정치적, 사회적 권리까지 포함하는 것이므로 인권보다는 좀 더 넓은 개념입니다. 신문기사에서조차 양 단어를 혼동하여 사용하는 경우가 있지만, 인권과 기본권은 구별되는 개념입니다. 


  •  흡연권과 혐연권은 도대체 어디에? 


  그런데 아무리 법전을 뒤져 보아도 '흡연권'과 '혐연권'이라는 말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기본권은 헌법이 제시한 국민의 권리라고 했는데, 헌법에 규정이 없으니 기본권이 아니지 않은가?'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흡연권과 혐연권 또한 엄연한 국민의 기본권입니다. 총 130개의 조문으로 구성된 헌법(실제로 헌법은 굉장히 얇은 책입니다)에서 국민이 가지는 자유와 권리를 모두 열거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우리 헌법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쓰여있습니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 (헌법 제37조 제1항) 

  

  참 멋진 문장입니다. 국민이 국가에 대해 어떤 자유를 주장할 때, 국가는 '그것이 헌법에 규정되어있지 않았다'라는 핑계를 댈 수가 없습니다. 헌법이 직접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자유뿐만 아니라, 헌법의 '해석상' 인정될 수 있는 자유 또한 기본권으로 인정하고 보호할 수 있다는 취지입니다.


  • 흡연권과 혐연권이 기본권이라는 근거는?


  그렇다면, 흡연권과 혐연권은 우리 헌법의 어느 부분을 근거로 인정되는 것일까? 헌법재판소에 따르면, 흡연권은 인간의 존엄과 행복추구권을 규정한 제10조, 사생활의 자유를 규정한 제17조를 근거로 합니다.  혐연권은 제10조와 제17조, 그리고 건강권과 생명권을 근거로 합니다.  결정문의 내용을 잠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생활의 자유란 사회공동체의 일반적인 생활규범의 범위 내에서 사생활을 자유롭게 형성해 나가고 그 설계 및 내용에 대해서 외부로부터의 간섭을 받지 아니할 권리를 말하는바, 흡연을 하는 행위는 이와 같은 사생활의 영역에 포함된다고 할 것이므로, 흡연권은 헌법 제17조에서 그 헌법적 근거를 찾을 수 있다. 
또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고 행복을 추구하기 위하여서는 누구나 자유로이 의사를 결정하고 그에 기하여 자율적인 생활을 형성할 수 있어야 하므로, 자유로운 흡연에의 결정 및 흡연행위를 포함하는 흡연권은 헌법 제10조에서도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혐연권은 흡연권과 마찬가지로 헌법 제17조, 헌법 제10조에서 그 헌법적 근거를 찾을 수 있다. 나아가 흡연이 흡연자는 물론 간접흡연에 노출되는 비흡연자들의 건강과 생명도 위협한다는 면에서 혐연권은 헌법이 보장하는 건강권과 생명권에 기하여서도 인정된다. " 


  • 기본권의 충돌이란?


  기본권의 충돌이란 2인 이상의 국민이 국가에 대하여 서로 대립하는 내용의 기본권을 주장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흡연자와 비흡연자가 국가에 대하여 서로 대립하는 내용의 흡연권과 혐연권을 주장하는 경우가 바로 '기본권의 충돌' 상황이지요. 


  기본권이 서로 충돌하는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에 대해서 그동안 헌법학자들은 여러 가지 해결방안을 제시해왔습니다. 그중에서도 우리 헌법재판소가 인정하고 있는 해결방안은 '이익형량에 의한 방법'과 '규범조화적 해석에 의한 방법'입니다. '이익형량에 의한 방법'은 대립하는 기본권 중 '더 중요한, 더 가치있는' 기본권을 우선적으로 보호하고 '덜 중요한' 기본권을 희생시키는 방식입니다. '규범조화적 해석에 의한 방법'은 대립하는 기본권 모두가 최대한 보호받을 수 있도록 제3의 대안을 찾는 방식입니다. 


  헌법재판소는 기본권의 성격에 따라 "그때마다 적절한 해결방법을 선택, 종합하여" 기본권 충돌의 문제를 해결해왔는데, 흡연권과 혐연권 문제에서는 '이익형량에 의한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기본권 충돌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찾았으니, 이제 흡연권과 혐연권 중 어느 기본권이 '더 중요하고도 가치 있는' 기본권인지를 실질적으로 판단하는 문제만이 남았습니다.        


# 03 헌법재판소의 최종 판단


"흡연자가 비흡연자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방법으로 흡연을 하는 경우에는 기본권의 충돌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흡연자와 비흡연자가 함께 생활하는 공간에서의 흡연행위는 필연적으로 흡연자의 기본권과 비흡연자의 기본권이 충돌하는 상황이 초래된다. 
그런데 흡연권은 위와 같이 사생활의 자유를 실질적 핵으로 하는 것이고 혐연권은 사생활의 자유뿐만 아니라 생명권에까지 연결되는 것이므로 혐연권이 흡연권보다 상위의 기본권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상하의 위계질서가 있는 기본권끼리 충돌하는 경우에는 상위기본권우선의 원칙에 따라 하위기본권이 제한될 수 있으므로, 결국 흡연권은 혐연권을 침해하지 않는 한에서 인정되어야 한다." 


  헌법재판소는 이익형량에 의한 방법을 통해 혐연권이 흡연권보다 우선한다고 판단하며, 비흡연자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흡연자의 권리는 사생활의 자유만을 근거로 하는 반면, 비흡연자의 권리는 사생활의 자유뿐만 아니라 자신의 건강과 생명을 근거로 하는 것이므로 더욱 더 중요하고도 가치 있다는 판단입니다. 


  한편, 비흡연자의 권리가 우선한다는 논거 외에 또 다른 논거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습니다. 흡연은 공익을 해하는 행위이므로 국가가 법률로써 이를 규제할 수 있다는 취지의 내용입니다. 

"흡연은 비흡연자들 개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흡연자 자신을 포함한 국민의 건강을 해치고 공기를 오염시켜 환경을 해친다는 점에서 개개인의 사익을 넘어서는 국민 공동의 공공복리에 관계된다. 따라서 공공복리를 위하여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할 수 있도록 한 헌법 제37조 제2항에 따라 흡연행위를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 나아가 국민은 헌법 제36조 제3항이 규정한 보건권에 기하여 국가로 하여금 흡연을 규제하도록 요구할 권리가 있으므로, 흡연에 대한 제한은 국가의 의무라고까지 할 수 있다." 


  지정된 금연구역에서의 흡연을 전면 금지한 국민건강증진법이 합헌이라는 결정이 내려지면서 흡연자들은 담배 한 대를 피우기 위해 눈에 띄지 않는 곳을 어슬렁거려야 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됩니다.    


# 04 오랜 사유에서 찾은 해답



 200여 년 전의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1806~1873)은 이미 기본권 충돌 상황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기본권 충돌에 관한 헌법재판소의 판단은 사실 존 스튜어트 밀의 사상을 구체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국가 안에서 나의 자유가  어디까지 인정될 수 있는지에 대한 그의 생각을 한번 엿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떤 행동이 다른 개인이나 공공에게 명백하게 해를 끼치거나 아니면 해를 가할 위험성이 분명할 때, 그 행동은 자유의 영역에서 벗어나 도덕이나 법률의 적용대상이 된다."
"첫째, 각 개인은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의 이해관계에 해를 주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만 영향을 미칠 때 사회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다. (중략) 둘째, 다른 사람의 이익을 침해하는 행동에 대해서는 당사자가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한다. 또 사회가 사회 전체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할 것 같으면, 그런 행동에 대해 사회적 또는 법적 처벌을 가할 수 있다."(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중) 


  자유를 울부짖었던 그가 스스로 인정한 자유의 예외 2가지가 바로 '타인의 이익'과 '공공의 이익'입니다. 이로써 흡연권의 한계는 명확해집니다. 비흡연자의 건강에 해를 끼치지 않는 범위에서 피워라! 결국, 이러한 자유의 원리에 의해 공공장소 및 금연구역에서 흡연을 전면 금지한 법률은 정당성을 갖게 됩니다. 


#05 나가며


  흡연권과 혐연권의 대립으로 대표되는 기본권의 충돌 상황은 우리의 일상생활 어디에서든 발생할 수 있습니다. 어느 날 문득, 국가의 법률이 누군가의 자유를 보호함으로 인해 당신의 자유가 부당하게 제한되었다고 느껴진다면, 이 포스팅을 떠올려주기를 바랍니다. 어려운 문제 상황을 인식하고 해결하는 데 소소한 도움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담배는 되도록 끊어야겠습니다.



참조 (http://search.ccourt.go.kr/)
헌재 2014. 9. 25. 2013헌마411  
헌재 2004. 8. 26. 2003헌마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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