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소환
3년 전 오늘 추억을 소환해 봅니다.
그날은 전국의 다문화이주여성들의 위한 활동을 전개하는 나름 열성 무지개 당원?들의 뜨거운 미팅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말레이시아 대학생들을 만난 기억으로 두가지 추억을 소환해 봅니다.
하나, 다문화이주여성들을 위한 무지개당? 당원들
(우리끼리 붙여준 특별한 당이름 입니다)
당원들은 여전히 곳 곳에서 맹렬하게 활동 하십니다. 지난해 여섯 차례에 걸쳐 다문화이주여성들을 위한 프로젝트로 ‘대전’에서 수행했던 활동을 포스팅 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일을 만들기까지 이미 아주 오래전에 그분들과의 인연을 쌓았고, 그 중 몇 팀은 전국 각지에서 많은 활동을 이어가며 다문화결혼 이주여성들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기록에 등장하는 모든 분들은 상급도 없는데,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오래오래 한눈 한번 팔지 않고 묵묵히 열심히 활동을 이어갈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두울, 말레이시아 학생들과 낙하산 원단 무역
정신없이 해외에서 국내로 출장 오는 파트너 마중을 위해 공항으로 달려가던 중, 전철역으로 이동하는 중에 만난 말레이시아 27명의 학생들과 인솔한 교수님의 일행은 한국에서 갖은 해외연수 프로그램을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가는 길 여기저기서 받은 선물과 눈에 꽂히는 많은 선물들을 산 학생들의 가방 이동을 돕는 일로 시작해 공항까지의 길에서 유쾌한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한산한 시간이었던 터라 열차 한 칸을 단독으로 세를 낸 듯 웃고 떠들고 그리고 한국의 인상, 말레이시아 학교 얘기까지 많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3년 전 그날 보다 훨씬 오래전 ‘낙하산 원부자재’를 deal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학생들과 더욱 반가운 만남이 이루어졌었는가 봅니다. 한국에서 생산하는 낙하산용 원단(textile)과 실(yarn), 로프(rope)를 말레이시아로 중계 무역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한창 말레이시아를 오가며 수출하던 어느 날, 당시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기관을 통해 저희가 한국에서 수출하고 있던 해당 낙하산 원부재가 말레이시아의 생산 공장에 도착되어, 실물인 낙하산 제조에 사용되고 그 낙하산이 혹시라도 그 당시 우리나라의 적성국가?로 판매되는지를 두 차례에 걸쳐 확인하는 과정도 겪었습니다. 물론 당연히 그런 일이 없었던터라 그 이후 한동안 무사히 계속해서 중계무역을 영위 했었습니다.
(사진 출처: https://blog.naver.com/kurunirk2/60073046363)
다만, 언젠가 한번 언급한 당시 나름 속상했던 일로 지금도 기억에 남는 일은, 낙하산에 사용되는 많은 부자재중 금속 파트도 한국에서도 생산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새로운 제품보다 미국에서 판매하는 중고제품을 선호하던 바이어에게 한국 금속제품을 선보이며 거래처로부터 보증 받은 대로 열심을 내어 sales를 했던 기억이 있었으나, 결국 생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금속제품 품질은 인정받지 못한 체 원단(이후 낙하산 원단은 세계 명품 가방 등에 많이 쓰였습니다)과 부자재에 한정될 수 없었던 오래전의 무역업 종사자들이 흔히 가슴앓이 했던 그 때의 안타깝던 기억을 소환해 봤습니다.
말레지시아의 추억을 소환해 준 몇 장의 사진과 당시 공항까지의 조금 길었던 길에서 유난히 유쾌한 학생들의 학교를 찾아 웹을 통해 그날의 즐거움을 기억해 보며, 당시 만났던 학생들을 소환해 봅니다. (https://www.usim.edu.my)
생각난 김에 당시 알려 주었던 학교 패북을 다시 방문해 보고, 말레이시아 스팀잇 활동도 더듬어 보려합니다.
특히 학교 소개 사이트에서 챙겨 얻었습니다.
‘Do not go where the path may lead, go instead where there is no path and leave a trail. - Ralph Waldo Emerson (1803-1882) - ‘길이 당신을 이끄는 대로 따라가는 대신 길이 없는 곳으로 가서 오솔길을 남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