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mewhere over the rainbow」
노래가 너무 유명하고 누구나 동화로도 접해봤을, 오즈의 마법사는 1900년 Lyman Frank Baum의 원작 소설 이래 인기가 엄청난데요. 작가 본인도 결국 14권까지 썼고, 뒤를 이어 다른 작가들이 만든 버전도 40권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1939년 뮤지컬 형식으로 만들어진 영화 버전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동화속 메시지로도, 현실경제속 메시지로도 아주 탁월한 소설이지만, 독립 이후 미국만의 동화가 부족했던 상황에서 그 특출함으로 더 부각되고 있기도 합니다.
동화속 오즈의 마법사
간단히 줄거리만 볼께요.
캔자스의 넓은 평원 외딴집에 사는 도로시는 갑작스런 회오리바람에 집이 오즈의 나라로 날아가고, 동쪽마녀는 마침 날아온 그 집에 깔려 죽고 맙니다.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에메랄드 성에 사는 위대한 마법사 오즈를 찾아가는 도중에, 허수아비, 양철나무꾼, 겁쟁이 사자를 만나 함께 갑니다. 오즈는 사악한 서쪽 마녀를 죽이면 모두의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합니다. 늑대/벌의 습격도 있었지만, 일행은 결국 서쪽 마녀를 물리치고 에메랄드 성으로 돌아옵니다. 오즈는 허수아비에게 두뇌를, 양철 나무꾼에게 심장을,사자에게 용기를 각각 선물합니다. 도로시에게는 신던 은색 구두가 마법의 구두라고 알려주자, 도로시는 굽을 세번 맞부딪쳐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됩니다.
언뜻 참 건전한 메시지를 담아 누구에게나 좋은 교훈과 재미를 줍니다.
경제현실속 OZ.의 마법사
OZ를 보고 아시아나항공 및 그 별칭인 법사네를 떠올렸다면 당신은 여행매니아
그러나 이 아름다운 동화는 당시 경제현실 속 정치적 풍자 메시지를 담은 것으로도 유명한데요. 세부적인 해석에는 이견이 있을 수 있으나, 풍자소설이라는 것은 정설로 인정받는 수준입니다. 1900년 쓰여진 소설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원작자의 시각에서 경제현실적으로(조금은 정치적으로) 쉽게 해석해 보겠습니다.
1870~1896년까지는 영국에서 소위 대불황(Great Depression)이라 불릴 정도로 경기가 안 좋았고, 이 여파 등으로 미국도 남부 중심으로 못지 않은 장기 대불황이 옵니다. 일반적으로 불황을 타계하는 해결책은 돈을 찍어내서 푸는 것이죠. 그런데 문제가 당시에는 금본위제도가 실시되던 때였습니다.
중앙은행이 추가로 돈을 찍어내려면 그만큼의 금을 추가로 구해 보유해야 하는 것이죠. 그런데 이미 수많은 금을 캤기에 마땅치가 않은 상황이었고, 금본위제에 변화를 주는 것에 조심하면서 결국 돈을 풀지 못해 큰 디플레이션이 옵니다. 물가가 하락하는 것이죠.
언뜻 생각하면 물가하락이 좋게 느껴질수도 있으나, 당시 허수아비로 상징되는 농업지역의 농민, 그리고 양철나무꾼으로 상징되는 노동자들에게는 그리 반가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생산되는 농산물, 공산품의 가격이 형편없어져서 소득이 더 줄고 일자리도 감소했기 때문이지요. 심지어 그로 인해 농민/노동자들의 부채가치는 상승하여 최악이 되고, 현금이 많은 부유한 사람들에게만 그나마 좋은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도로시는 그 불황 속에 캔자스에 사는 평범한(혹은 중산층의) 미국시민입니다. 좀 더 엄밀히보면, 캔자스라는 지역에서 보듯 미 남부에 초기 정착하여 미국의 전통적 가치를 지닌 사람을 의미합니다. 당시까지 미국의 남부 백인들은 현재와 달리 민주당을 지지하는 정서가 강했습니다. (노예제도를 폐지시킨 곳이 공화당이었다는 점 생각해보시면 좀 쉽겠네요.)
도로시가 살던 집은 회오비바람에 날아가서 오즈의 나라에 도착합니다. 오즈란 금을 세는 단위로 온스의 약칭 OZ를 뜻합니다. 오즈의 나라란 금본위제도를 기치로 하는 곳인 셈이죠.
도로시는 계속 황금색 길을 따라 에메랄드 성까지 가게 되는데요. 그 황금색 길은 금을 의미하는 것이고, 에메랄드 성은 달러를 상징합니다.
보시다시피 미국의 상징인 1달러는 녹색(에메랄드색)이며, 초대 대통령 워싱턴이 새겨져 있습니다. 도로시는 워싱턴으로 간 것입니다.(최소한 부유한 동부 뉴욕 등을 지칭)
황금 길을 걸으며 허수아비, 양철나무꾼, 비겁한 사자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합세하는데요. 뇌가 없는 허수아비는 어려운(혹은 파산한) 농민을 상징하며, 심장이 없는 양철나무꾼은 힘든 여건에서 일하는 저임금노동자를 상징하고, 비겁한 사자는 당시 경기불황과 금본위제도의 문제점을 부각시켰던 1896년 민주당 대선 후보인 윌리엄 브라이언을 뜻합니다. 그는 본래 당시 제3당인 인민당 소속의 대중민주주의자이자 은본위제 운동을 주도하고 은행/철도 기업을 비판하던 사람인데 민주당으로 옮겼으나, 주장하던 정책을 거의 관철하지 못했고, 1896 / 1900 / 1908년 대선에 3번이나 출마하여 모두 고배를 마십니다.
도로시는 에메랄드 성에 올 때 이미 그의 집이 날아오면서 자신도 모르게 동쪽 마녀를 깔아뭉개서 처치하게 되는데요. 동쪽마녀란 당시 거대 트러스트(trust)가 되어가던 철도, 금융기업 등을 의미합니다.(동부 클리블랜드 지역으로 보기도 함) 우연히 처치했지만, 오즈의 나라 사람들에게 칭찬받게 됩니다^^ 당시 거대트러스트 문제는 일정부분 미국 전체의 문제이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오즈의 마법사(당시 맥킨리 대통령을 지칭)는 서쪽 마녀를 물리치고 오라 합니다. 늑대와 벌과 맞서며 서쪽마녀를 물리치고 온 도로시 일행들에게 마법사는 허수아비에게는 뇌를, 양철나무꾼에는 심장을, 비겁한사자에게는 용기라는 선물을 줍니다. 뇌/심장/용기가 무엇을 지칭하는지는 대강 감이 오시겠죠. 남부 지역의 파산지경 농민과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소득 향상과 근로여건개선이라는 것을 준 것이죠. 이는 작가가 당시 대통령에게 바랬던 것이겠네요. 대선에서 패했던 민주당에게 작가가 용기를 주고싶다는 의미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당시의 미국 민주당은 현재와 달리 미 남부정서를 좀 더 대변하는 당이었다는 점을 아신다면 더 이해가 쉽겠습니다. (서쪽마녀가 당시 공화당 출신 맥킨리 대통령이고, 마법사는 그의 친한 친구였던 국회의장 마크 한나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도로시 일행은 마법사에게 돌아가 고향으로 보내달라 하지만, 마법사는 도로시에게 니가 신고있던 은구두가 마법의 구두라고 사실을 알려줄 뿐,결국 스스로 마법을 쓰지 못합니다. 당시 대통령을 무기력하게 비추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어느 정권이든 뭔가 경기와 국민들의 삶을 살리는 마법이 있을 걸로 포장하지만 사실 보통은 쉽지 않죠. 그런 의미로 보시면 될 것 같네요.
결국 도로시는 그 사실을 듣고 자신의 은구두를 직접 세번 맞닿게 하는 주문을 걸어 고향인 캔자스로 돌아오며 원작동화는 끝이 납니다. 세번 두드린 것은 의사봉을 세 번 두드려야 정책이 가결되듯이 은구두을 세번 두드려서 금+은본위제도를 실시하는 대전환을 하자는 것을 의미합니다. 금은 부족하여 달러를 추가발행할 수 없지만, 은은 충분하니 일정량의 달러를 더 발행하여 경기불황과 디플레이션을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이 담겨 있습니다. 이는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인, 여기서는 비겁한 사자로 지칭되는 윌리엄 브라이언의 대표적 주장이기도 했습니다. 도로시가 스스로 은구두를 두드렸다는 것은, 그러한 화폐정책 대전환은 시민들의 힘으로 이루어내야한다는 의미 혹은 강한 여론형성을 해내야 한다는 것을 촉구하는 의미로도 볼 수 있어 보이네요.
체크포인트
세부적 해석은 이견이 있을 수 있으니, 많이 궁금하시면 원작 등을 직접 살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또 다른 소설로 돌아올께요. 두 소설의 이야기는 현 시점 암호화폐 흐름과 전망에 대해 추가적 포스팅을 하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체크할 점은,
OZ의 마법사는 당시 시대상을 풍자한 소설로서, 대불황과 디플레이션 속에서 금본위제를 고수하자는 쪽(당시 맥킨리 대통령)과 은본위제를 추가하자는 쪽(당시 브라이언 민주당 후보)의 대립이 있었고 그 정책효과에 대해 의견도 분분했으나, 소설 속에서는 고수하는 쪽은 다소 무능력한, 사기꾼스러운 혹은 악한 것에 가깝게 묘사되어 있다는 점 정도입니다.
1939년 만들어져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오즈의 마법사 영화속 「Somewhere over the rainbow」 위에서 안들으신 분은 꼭 들어보세요^^ 참고로 이 영화의 감독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도 만든 사람이니 영화를 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1939년 작품인데도 VOD로 TV에서 볼 수 있습니다. 최근 나오고 있는 애니메이션 버전들도 원작의 세계관을 아신다면, 다양하게 해석해 볼 수도 있고, 심지어 소설을 쓸 수도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