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에 대한 잡담 2

퇴갤 시간... 아니 MANA 에서 집으로 향할 시간이 다가온다.

공용 사무실 같은 까페인 이곳에서 커피한잔 + 하루 종일 요금은 120바트, 원화로 4000원이다.
아침에 스팀에다가 여기 얘길 썼더니 추천이 $35 까지 쌓였던데, 성원에 못이기는 척 오늘 한탕 더 해먹으려 하나를 더 쓴다.

만약 2013년 당시에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고 있었다면 나는 비트코인에 대해 알아볼 생각을 안했을 것이 분명하다.
'일하고 와서 피곤한데 내가 지금 이렇게 어려운걸 읽어야겠어?' 하는 생각을 했을것이다.

당시에 나는 뒤늦게 미드 브레이킹 배드를 몰아보고 있었다.
미스터 화이트가 위험한 방법으로 현금, 오로지 현금 뭉치를 주체할 수 없이 많이 모으는 장면을 보면서
돈이 부족해 허덕이던 나는 대리만족이 되면서
콧속에서 돈냄새가 나는 것 같은 느낌이 나곤 했다.

예전부터 제로헤지를 읽으며 귀금속만이 달러 위기의 안전한 도피처라는 결론을 내어 놓고
비트코인 얘기가 간간히 나올때는 어려워서 스킵 했는데
마음잡고 한번 읽어본 비트코인 백서는 충격이었다.
어려워서...

어려워서 충격이기도 했지만
금을 흉내내기 위한 소프트웨어 설계를
암호학과 P2P 방식을 조합해서 이렇게 기발하게 해결할 수가 있다는 것을 알게되는 순간
브레이킹 배드를 틀지 않아도 콧속에서 돈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Andreas Antonopoulos 와 Bobby Lee 의 유튜브 동영상에서 많이 배웠다.
코인계 좌충우돌 이야기는 여기선 아껴두고...

결국 돈이 떨어진 나는 치앙마이 현지에서 치앙마이 현지 물가에 맞는 월급을 주는 그런 일자리를 찾아야만 하게 되었다.
할줄 아는건 영어와 코딩.
치앙마이에는 영어권 서양인들이 은퇴하고 살러 오기도 하고
젊고 유능한 디지털 노마드들이 풍부한 인맥과 거래처를 가져와서 이곳에서 일을 하며 지내기도 한다.
나는 캐나다에서 온 비슷한 나이대의 프로그래머들 셋이서 하는 스타트업 회사의 구인광고를 보고 지원해서
치앙마이 시세의 월급보다 조금 많이 받으며 일을 하게 되었다.
어차피 나는 코인 바닥에서 진짜 대박은 다 내려고 계획해두었으니
이런 하찮은 월급 가지고 실랑이 하지 말아야겠다는 이상한 사상으로
잠시 생계를 위해 스쳐간다고 생각하며 주는대로 그대로 오케이를 했다.
한달에 100만원도 안되는 액수였다.
덮밥이나 볶음밥이나 국수같은 것으로 점심한끼 사먹으면 천원정도라서 부담없지만
가끔 근처의 수제 햄버거집이나 일본 레스토랑 같은데를 가려면 4000원~5000원 씩이나 지출해야 하므로 부담이 되는 그런 정도의 월급이다.
케네디언들은 님만해민 중심가에 3층짜리 집을 렌트해서 1층을 사무실로, 윗층을 숙소 및 남는 방 여행자 민박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여친이 있는 조단은 근처 원룸에서 동거하고
여친이 없는 라이안과 세스는 2층에 방 하나씩 살았다.
일주일에 2번 청소하는 사람이 와서 아침부터 오후 서너시까지 그 큰 집을 청소하고 300바트, 만원정도를 받는 모습을 보았다. 그것이 이곳의 인부 시세다.

일은 재밌었고 관계도 좋았다.
나 외에도 두명쯤 더 고용해서
리버럴한 스타트업 근무환경 속에서
월급만 짜고 나머진 다좋다 하는 생각을 하며 7개월쯤 일하다가
어느 월급날 더이상 프로젝트가 없다며 한달치 월급을 더 얹어받고 다음날부터 안나가게 되었다.
힌트라도 주지... 서양인들 스타일이란...
갑작스런 통보에 순간 아쉽기도 했지만
속으로는 눈앞의 돈봉투를 보며 무슨 코인 들어가야되나 이미 궁리를 하고 있었다.
그때가 아직 스팀이 나오기 전, 2015년 여름의 코인 암흑기였다.
아끼고 아껴 조금씩 들어가있던 코인이 오래도록 죽을 쑤던 힘든 시기였다.
만약 그 푼돈을 비트코인에 얌전히 묵혀두고 안꺼냈다면 훨씬 나았겠지만
그런 깨달음은 늦게 왔다.
오르기 전엔 모르다가
오르고 나야 깨닫게 되는 것이 비트코인의 위대함이다.
채굴 해쉬에는 끊임없이 인플레이션이 일어나고
핵심 개발자들의 지식과 경험치도 계속해서 상향평준화 된다.
여전히 코인 총량은 불변하므로 앞으로 올라갈 길이 멀다.
올랐으면 또 내리기도 하고, 파동을 계속 만들어내면서 고점에 물린 뉴비를 시험에 들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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