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이 든다는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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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기가 요동을 친다. 병과 중인 팀원에게 전화까지 걸어서 일을 시키고 싶은 마음은 왜 그런 걸까? 그것도 병과 끝낸 뒤 출근해서 해도 되는 전혀 급하지 않은 일을... 어차피 출근하면 하게 될 거 그냥 후딱 해 버리고 전화기를 꺼버릴까? 하다가 의사가 했던 말이 머리를 스친다. 병과 중인 사람에게 일을 시키면 불법이라는 불편한 사실을 매니저에게 알려주고 전화를 끊는다.

리사는 병과 기간이 끝나면 회사로 돌아가지는 않을 거라고 말을 한다. 그녀의 병과는 몇 달이지만 나는 겨우 며칠. 회사에 정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나는 그냥 퇴사를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또 내 현실이 눈에 보인다. 예전 같았으면 벌써 사직서 내고 나왔을 텐데... 이제는 갈등이라는 것을 하는 것을 보니 현실이 괜히 현실이 아닌 걸까? 하지만 나는 나를 너무 잘 알고 있다. 이미 결론에 도착한 내 마음을 그 결론에서 떼어 내기는 힘들 다는 것을... 그러면 지금 하는 갈등이란 것은 그저 결론에 도착한 내 마음에 대한 예의인 걸까? 아니면 현실적이지 못한 내 생각과 마음에 대한 반성인 걸까? 아니면 혹시 좋게 변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미련일까? 그것도 아니면 언제나 이렇게 도망치며 무책임해지는 것에 대한 변명일까? 잘 모르겠다.

사직서를 보내자마자 대표에게 메일이 왔다. 의논도 없이 이러는 것이 아니라나 모라나... 내가 그만둔다는데 왜 내가 믿지도 않는 너랑 의논 해야 할까? 친구들에게 사직서를 냈다는 말을 전하며 내가 다시 잡 마켓에 나왔음을 알린다. 소식을 듣고 친구들이 모두 한마디씩 한다.

"너 언제 철들래? 아직도 이러냐? 나이를 생각해! 도대체 네 밥그릇도 못 챙기면서 네가 누굴 챙기냐! 네가 왜 나오냐! 언제까지 이럴래! 도대체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도 이렇게 현실 파악이 안 되냐! 왜 네 발로 걸어 나오냐구! 그래서 넌 어디 남들처럼 성공이란 걸 해 보기는 하겠냐! 정신 좀 차려라 제발! 친구들 입에서는 똑같은 말들이 귀가 따갑게 계속 쏟아져 나온다. 모두 내가 답답해서 하는 말인 것을 나도 안다. 친구들 보기도 이젠 미안해진다.

대표와의 미팅. 리사를 통해 인사부에서 들은 이야기를 하며 나에게 확인사살을 한다. 리사가 너무 많은 이야기를 했다. (예를 들면, 외주 나가는 일에 대한 매니저의 부정부패와 그로 인한 팀의 비효율성 작업 순환구조로 인한 손실 등...) 그리고 본사에서 새로 시작되는 프로젝트 이야기와 나에게 건네는 새로운 제안. 토사구팽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회사에서는 거의 2년 동안 J를 해고하고 싶었으나 그 누구도 J를 해고할 수 있는 그물을 치지 못하던 상황에서, 결국 6개월 넘게 그물을 치고 J를 해고한 매니저. 계속 목소리가 커가는 매니저를 견제할 수 있는 사람은 그나마 다른 팀에 있던 브랜든 이었는데 예상하지 못한 사건으로 브랜든까지 해고했다. 그리고 이제 나까지 나가고 리사도 회사에 없다. 더 이상 전체 프러덕 팀에서 "아니오"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게 된다. 내가 알기로는 나와 리사 말고 제시카라는 직원도 나간다고 하니 프러덕 팀의 위기라고 할 수도 있겠다.

나는 그 자리에서 대표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한다.
내가 물면 상대도 아프지만 내가 더 아프다. 아무리 대표의 후광을 입는다 해도 아픈 건 나지 대표가 아니다. 그리고 일단 나는 대표도, 회사도 더이상 믿지 않는다. 신뢰가 없는 곳에서 서로 물어뜯고, 아파하며 그 슬픔을 견딜 자신이 없다. 굳이 이런 일이 아니어도 내 삶은 충분히 아팠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삶보다 행복한 삶이 더 좋다. 둘 다 가질 수 없다면 당연히 행복을 택하지 성공을 택하지는 않는다. 행복하기에도 너무 짧은 인생이다.

이제 곧 있으면 백수가 될 나를 보고 친구들은 다시 한마디씩 한다. "네가 아직 배가 덜 고팠구나! 네가 지금 누굴 생각해주는 거냐! 철 좀 들자! 너 이제 그러면 안 돼. 물론 너를 아니까 이해는 하는데, 다음부터는 제발 네가 먼저 나오지는 마."

내가 누굴 생각해줘서가 아니고, 나는 그냥 내 행복을 선택한 것뿐인데... 철이 안 들어서 그런 건가? 아니면 이기적인 건가? 그것도 아니면 겁쟁이인가?


어떻게 감사의 말씀 드려야 할지 몰라 뭔가 다른 것을 쓰고 싶었는데... 마음만 있고... 손가락은 삐꾸가 되어... 그냥 또 제 일상 글 올립니다. 죄송합니다. ^^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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