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단장 . 스포가 있네요.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 '자기는 책을 읽을 때 어떻게 읽어?'
> '뭘?' '난 책 읽을 때 머릿속에서 글따라 내가 아는 장면과 상상으로 한 편의 영화를 그리며 읽어. 이미지가 글따라 세세하게 장면이 그려지지. 그래서 영화보는것 같은데?' 소설은...
> '자기는 안 그래요?'
> '아...그렇게 읽는구나!'
이런 대화를 나눈 이후에 이 책을 읽었다.
새벽까지 잠못들며 읽고 꿈까지 꾸면서 읽은 책은 하루키의 '기사단장 죽이기'였다.
하루키의 필력일까 글 문장 하나하나의 이미지가 너무 강했다. 비슷한 문장에서 어떻게 이런 힘이 나올까 궁금증을 갖고 읽을 수 밖에 없었고 결국 꿈속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책을 다 읽은 후, 지금 각각의 주인공이 어떤 말을 했는지 기억하는 문장은 없다. 하지만 주요한 몇 장면과 공간은 그림으로 그릴 수 있을 만큼 또렷하게 이미지가 남아있다. 주인공의 집에서 그 석실까지 가는 길과 멘시키의 집과 또 반대편의 집, 석실과 신사 그리고 석실에서 갖고 나온 방울과 그 방울을 매개로 나온 기사단장.
그 기사단장은 자신을 영혼은 아니고 '이데아'라고 소개한다.
열두시 넘어서 방울소리 들리는 부분을 읽을 땐 어릴적 티비에서 봤던 드라마와 오버랩됐다. 한 여인이 갑자기 방울 소리가 들려 집 앞 돌무더기를 헤집고 거기에서 무당이 쓰는 방울을 찾아 무녀가 되는 장면이 생각났다. 갑자기 무서워 방안에 불을 환히켜고 차를 마시며 새벽까지 읽었다. 이렇게 삼일에 걸쳐 얼굴이 붕 뜨도록 빠져 읽었다.
이 책을 읽은 후 어떻게 쓸까 오랫동안 고민했지만 모르겠다.
그냥 이렇게 뻘글 같이 적어본다.
스티미언중에도 @dmy님과 @edworld님이 한두달전에 포스팅 해주셨네요. 이미 읽으신 분도 많으실것 같습니다.
책의 주인공은 화가이며 지난 시간을 일인칭 '나'로 서술한다.
시작은 초상화 작가로서 삶을 살아가는 화가 앞에 '얼굴 없는 남자'가 나타나면서 시작한다. 시간을 내편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인공 '나'가 36살 당시에 겪은 아홉달 동안 일이 책 전반적인 내용이다.
흥미로울 만큼 적당히 통속적이고 적당히 판타지하며 갈등하는 인간의 다양한 면을 엿볼 수 있는 소설이다.
올 초에 석 달에 걸쳐 하루키의 '먼 북소리'를 읽지 않았다면 하루키의 이 통속적인 장면에서는 그저 '상실의 시대'를 떠올리고 말았을 것이다. 하루키가 부인을 아끼는 줄 알기에 그냥 넘어간다. 이 책에 나오는 하루키는 진솔하고 은근 멋있었다.
주인공 작가의 초상화 그리는 방식이 눈에 들어왔다.
> '내게 필요한 것은 눈앞의 본인보다 그 사람에 대한 선명한 기억이었다. 입체적 형상에 대한 기억. 그것을 고스란히 화폭에 옮기기만 하면 되었다.'
그리고 사건이 일어나는 시점에 별장에서 멘시키라는 사람의 초상화를 그리고 작가는 말한다.
> "걱정스러운 건 작품의 완성도보다 오히려 내가 그려버린 게 무엇인가 하는 점이에요. 저 자신을 우선한 나머지 그려서는 안 되는 무언가를 그려버렸는지도 모른다. 그 점을 염려하는 겁니다."
이런 작가의 현실 이면을 보는 눈은 책 마지막까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들게 만든다.
주인공은 우여곡절 끝에 친구의 아버지이자 저명한 일본화의 대가인 지금은 비어있는 '아마다 도모히코' 작업실에 머물며 그림을 그리게 된다. 그렇게 대가의 집에서 대가가 남겨둔 음악을 들으며 대가의 화실에서 그림을 그린다. 그러다 그 집 천장에 살고있던 부엉이의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천장에서 발견한 그림 제목이 '기사단장 죽이기'다. .
우리는 작은 물건 하나도 누가 쓰던 거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느낀다. 대가가 쓰던 물건은 힘이 있다. 대가가 쓰던 연필로 글을 쓰면 글이 더 잘 써진다는 이야기도 있고, 연예인이 쓰던 물건에 환호하며, 살인자가 입던 옷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이 꺼림칙하게 여긴다. 자신이 존경하는 분의 물건 하나를 물려받는 것은 삶의 큰 힘이 된다. 이렇듯 주인공은 대가가 남겨놓은 아우라에 어떤 영향을 받는다.
한밤중에 문득 잠에서 깨어 본 적이 있는가
세상은 온통 고요하고 난 너무도 멀쩡한 정신으로 깨어있을때,
개미도 잠든 밤 당신은 어쩌면 딸랑딸랑 방울소리를 듣게 될지도 모른다. 주인공처럼.
주인공이 한밤중 방울소리를 들으면서부터 일본 신사와 영적인 세계관이 현실과 섞인다.
책에는 석실과 신사 이야기가 나온다.
나는 이부분이 유난히 좋았다.
어렸을 적 마을앞 돌무덤이 어떻게 생겼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어린아이가 죽으면 항아리에 넣어서 동물들이 먹지 못하게 돌을 쌓아놓은 거라고 했었다.(물론이건아니다.) 공동묘지 앞 큰 바위아래 돌 비석이 세워 있는 전각 앞을 지나갈 때면 누가 있는 것 같아 머리가 쭈뼛했다. 이 밤도 지붕에 떨어지는 나뭇가지에 놀란다.
2권에서는 '아키카와 마리에'라는 소녀의 초상화를 그리면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담았다. 소녀를 구하기 위해서 주인공은 기사단장을 죽이고 저승?을 통과하며 '메타포'라는 장애를 극복해야 했다. 이때 주인공은 병원에서 사라져 앞의 석실로 나온다. 이런 장면은 전작 '1Q84' 에서 보이던 장면과 비슷한 하다. 두 세계의 연결.
그리고 한때 논란이 있었던 '난징학살' 이야기가 잠시 나온다.
전쟁의 참혹함은 개인의 삶도 파괴하고 사회도 파괴한다고.
주인공은 삶을 되찾고 그 별장은 지진으로 인한 화재로 소멸한다.
주위 몇 사람한테 뜬금없이 물었다.
'책 읽을 때 어떻게 읽어?'
>난 눈으로 읽어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리며 읽죠. 그래서 영화보다 책 읽으라고 하지 않나
>눈이 안좋아 책 안 읽은지 몇년 됐어요.
>생각하며 읽죠
그랬다. 소설은 장면 장면을 화면처럼 그리며 읽고, 논문이나 철학서적은 생각하면서 읽어야 했다. 앞장의 내용을 이해하고 넘어가야 하는 책도 있을 테고....난 이런 책은 못읽는다. 우쨌든 이미지로 책을 읽다 보니 한권 읽은 후에 남는 것은 이미지와 느낌만 남았다.
이럴때 단점은 책에 관하여 이야기 할 게 별로 없다는 점이다.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 어떤 관계인지를 잘 설명하지 못했다. 그래도 주인공의 감정이나 상황은 비교적 남는 편이다. 이 책 기사단장은 어떤 강한 이미지가 남았다. 하루키의 내공이 아낌없이 드러난 책같다.
책 중에 멘시키라는 사람이 나오는데 마치 비트코인 투자해서 벼락부자 된 사람같이 나온다 ㅎㅎㅎ. 이 사람처럼 돈 많이 벌어서 돈 걱정 없이 살고 싶다는 생각이 책읽는 동안 들었다. 근데 인간미 없는 의문의 사나이다.
주인공은 어쩌면 우리 주위의 영적인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니가 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