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스톤의 살며 사랑하며) 세상 사는 법, 순간에 몰입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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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이 되었다. 시간은 정말 빠르다. 올해초 2017년이라는 숫자가 어색하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마지막을 향해 달리고 있다. 삶이란 그저 지나치는 섬광과 같다고 하던 말이 실감난다. 살면서 많은 고민을 하지만 그것 마저도 아주 짧은 순간에 불과하다. 그렇다. 삶은 순간이다. 우리는 순간을 살고 있을 뿐이다.

간혹 젊은 친구들에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상담 아닌 상담을 하게 된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그런 이야기를 하는 친구들이 없었는데 요즘에는 그런 경우가 종종 있다. 미래가 불안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젊을 때, 미래는 훤하게 보였다. 무엇을 하든 열심히만 하면 잘 될 수 있었다.

성실과 근면이라는 것은 성공을 위한 최대의 덕목이었다. 밤을 지새우고 별을 친구삼아서 일을 하면 뭔가 이루어지는 것. 우리가 살아온 것이 바로 그런 삶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조금 다른 듯 하다. 비교적 전문적인 영역에 들어가 있는 친구들 조차 자신의 진로에 고민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의외로 그런 친구들이 고민을 토로한다. 그정도 되면 그냥 열심히 하면 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은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라는 것이 문제다.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과 근심에 가득차 있는 듯하다. 그렇다. 과거와 달리 앞으로의 미래는 예측이 불가능하다. 그 누구도 자신있게 앞으로 세상은 이렇게 될 터이니 이렇게 살면된다고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우리가 장미빛 미래를 살아온 것과 달리 앞으로의 세대는 암울한 미래를 헤쳐나가야 하는 것 같이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우리의 예상과 달리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부의 집중을 초래했다. 생산력의 독점이 초래한 상황이 어떻게 되는가 하는 측면에서 마르크스의 통찰이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삶의 본질은 불확실과 혼돈이다. 누구도 삶을 계획하고 살수 없다. 삶이란 불연속적이고 비선형적이다. 지금의 젊은이들보다 훨씬 좋은 여건이라고 하더라도 우리가 살아온 삶도 마찬가지였다. 누구도 자신의 삶을 미리 계획하고 살수는 없는 법이다.

나만 해도 그랬던 것 같다. 하루하루 하다보니 오늘날의 모습이 되어 버렸다. 오늘을 살아가는 하루하루의 적분이 삶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하루하루를 자세히 들어다 보면 연속적이고 선형적이지 않은 것 같다. 삶은 하루하루의 삶이 모여서 이루어지지만 그 하루하루가 연속적으로 그리고 선형적으로 원인과 결과를 만들어 내지는 않는 것 같다.

살아온 삶을 되돌아 보면 내가 어떻게 하다 여기까지 오게되었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삶이라는 것은 순간의 선택이 적분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기서 순간이라는 것은 단순한 시간의 흐름이 아니다. 바로 결정의 순간을 의미한다. 삶이 불연속적이고 비선형적이라고 생각하게 된 이유다.

그래서 이야기 한다. 앞으로 미래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청사진 같은 것 그릴 필요가 없다고 말이다. 결정의 순간이 적분되어서 이루어지는 것이 삶인데 그 결정의 순간을 미리 계획할 수는 없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그냥 내 앞에 직면한 것에 최선을 다하는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내가 직면한 상황과 현실에 최선을 다해서 임하는 것. 거기에 몰입하는 것 이외에는 어떠한 해결책도 없다는 것이다. 그 몰입의 과정이 결국은 쌓이고 쌓이는 것이 삶이라는 총체적인 모습으로 만들어 지는 것이다.

삶은 시간의 적분이 아니다. 내가 집중한 몰입의 적분이다. 내가 몰입하지 않으면 적분된 삶의 양도 많지 않을 수 밖에 없다.

우리가 몰입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 바로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를 걱정하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앞에서 필자가 말한 불확실하고 어두운 미래도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확실한 것은 우리가 걱정한다고 해서 어두운 미래의 본질은 전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두운 미래가 바뀔 수 없는 것은 혁명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혁명은 현실의 모순을 고치기 위해서 발생한다. 미래의 모순을 고치기 위해서 현재를 혁명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냥 부딪치는 수 밖에 없다. 사실 우리는 이미 그런 삶은 살고 있고 살아왔다. 앞으로의 미래도 현실에 내가 얼마나 충실하느냐에 따라 방향이 바뀔 수 있을 뿐이다.

그러고 보니 불교에서 지금 이순간을 잘 살아라고 하는 가르침이 생각난다.
내가 아무리 고민했다고 하더라도 결국 부처님 손바닥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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