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스톤의 횡설수설) 고영태의 가석방을 보면서, 그 때 왜 잡아 넣었을까?

20171031

Screenshot_20170625-233051.jpg

며칠전에 고영태가 가석방되었다. 1년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최순실 청문회의 스타였다. 고영태를 위시한 몇몇의 증언이 아니었다면 최순실 문제는 그냥 수면하게 잠겨있었을 것이고 그녀는 여전히 권세를 부리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만일 지금도 여전히 그녀가 건재하고 있다면 우리는 어떤 생각으로 살고 있을까? 생각만 해도 아득하다.

민주주의가 되면서 세상을 바꾸는 것은 엄청나게 잘난 사람들이 아닌 것 같다. 그저 이름없는 소시민들의 의지가 하나하나를 변화시키고 역사의 물골을 바꾸어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작년의 촛불혁명도 결국 작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만들어낸 커다란 역사의 물골이었다. 그 물골을 만드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이 고영태였다.

고영태는 박근혜의 탄핵이 결정되자마자 얼마 있지 않아 구속이 되었다. 관세청장 인사에 관여했다는 것이다. 고영태의 구속과정은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관세청장 인사에 개입하고 돈을 받았다는 것이다. 검찰이 고영태가 관세청장 인사에 개입해서 돈을 받았다는 것을 언제쯤 알았을까? 그리고 왜 구속을 시켰을까?

죄를 지었으며 조사를 해서 재판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고영태의 경우 그렇게 당연하게 여겨지는 법질서의 집행이 당연하게 여겨지지 않았던 것은 웬일일까?

고영태의 구속을 보면서 검찰의 일부에서 보복으로 구속한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최순실 게이트로 가장 크게 피해를 보았던 집단이 우병우를 위시한 검찰 수뇌부였다. 필자는 그들이 보복으로 고영태를 구속시킨 것이 아닌가 생각을 했었다.

고영태의 구속과정에 문제를 제기한 언론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고영태가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서 박근혜 탄핵이 끝나자 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구속을 시켰어야 했을까? 누구든지 절대선은 없다. 더 큰 악을 위해 작은 악을 이용하는 것이 통상적이다. 상식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검찰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적어도 박근혜와 최순실의 재판이 종료되는 상황까지는 증인 보호 차원에서 고영태를 보호해주어야 하는 것일 것이다.

검찰은 증인을 구치소에 잡아 넣고 보호해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희생에는 댓가가 따라야 한다. 고영태는 별의 별 소문이 다 돌았던 사람이다. 그런 이상한 소문 때문에 혐오스럽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을 돌이켜 보면 그녀를 중심으로 한 거악을 척결하는데 가장 앞장 섰던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보호해주지 않으면 앞으로 우리사회에는 그 누가 고영태처럼 나와서 정의를 부르짓을 수 있을까?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고영태를 위시한 몇몇의 헌신과 희생에 빚을 지고 있다. 아닌가?

고영태가 잡혀들어갈 때 우리 모두는 침묵했다. 돌이켜보니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전국민적으로 보호를 위한 시위라도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미국은 증언을 하면 죄를 사해주는 프로그램도 있다고 한다.

죄가 있으면 잡아가야 한다고?
무엇이 정의일까?

거악을 척결하기 위해 어느 정도는 넘어가는 것이 훨씬 정의롭지 않을까?
고영태를 그렇게 잡아넣은 것은 일종의 보복이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H2
H3
H4
3 columns
2 columns
1 column
18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