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수피나이트 갈 거지?”
“수피나이트? 그게 뭔데?"
“가보면 알아. 갈 사람들은 이따 늦지 말고 숙소에 모여있어.”
리셉션맨은 더 이상의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 수피 나이트는 리갈 인터넷인의 정기 이벤트였다. 매주 목요일이면 리갈 인터넷인의 주인인 말릭 아저씨가 원하는 사람들을 모아 ‘수피나이트’가 열리는 곳으로 데려간다고 했다.
"파키스탄 무슬림들이 신과 만나는 방법이야. 조금 유별나긴 하지만."
개리가 땀이 송골송골 맺힌 콧등 위의 안경 매무새를 고치며 말했다.
"헤이. 지혜. 그들이 진짜 알라와 만나는지 아닌지는 모르겠고. 그건 그냥 파티야. 파키스타니 트랜스 파티."
파자마맨이 빙글거렸다.
누군가는 종교의식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트랜스 파티라고 하는 수피나이트. 신을 만나는 파티라... 개리와 파자마맨의 짧은 설명에 수피나이트에 대한 나의 호기심은 더욱 커졌다. 웬만하면 가방을 가져가지 않는 편이 좋다는 말에 카메라 하나만 달랑 들고 오토릭샤에 몸을 실었다. 브루나이 언니가 내 옆으로 육중한 엉덩이를 들이밀었다.
“뭐야, 화장했어?”
“응. 어쩐지 주말에 클럽 같은 곳에 놀러 가는 기분이 들어서. 호호호.”
그녀의 말대로 오래간만에 여럿이 함께 모여 밤에 외출을 하는 것은 꽤나 설레는 일이었다. 라호르의 치안을 생각했을 때 밤에 돌아다니는 것은 위험했기 때문에, 밤늦게 밖으로 나오는 일이 좀처럼 없었기 때문이다. 자동차와 릭샤, 자전거와 오토바이가 뒤엉킨 혼잡스러운 도로를 헤집으며 얼마간 달려 목적지에 도착했다. 우리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일행들을 기다리기 위해 한 노천카페에서 차를 주문했다. 식당과 상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거리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수피나이트를 위해 이곳을 찾은 사람들 같았다. 열기가 한풀 꺾인 밤공기를 들이마시며 반짝이는 조명들에 정신이 뺏기고 있으니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하는 것이 느껴졌다.
“꺅!”
카탈리나의 비명소리였다.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던 한 남자가 카탈리나의 엉덩이를 치고 지나간 것이다. 말릭 아저씨는 재빠르게 그의 뒷덜미를 낚아채더니 가차 없이 뺨을 후려갈겼다. 그는 손가락질을 하며 한바탕 욕을 쏟아붓고 나서는 말했다.
“이런 녀석에게는 매가 답이야. 다들 조심해. 이 안에 들어가면 현지인 여자는 단 한 명도 없어. 너희 빼고는 다 남자라고.”
온몸에 긴장이 스멀스멀 스며들었다. 어딘가 겁먹은듯한 표정을 보이고 싶지 않아 애써 가슴을 활짝 펴고 휘적휘적 걸었다. 그래도 어깨는 자꾸만 움츠러들었다.
낮은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 안에 대강 훑어보아도 백 명은 훨씬 넘어 보이는 사람들이 빼곡하게 들어앉아 있었다. 어둡고 복잡해서 원래 무엇을 위한 공간인지 정확하게 파악할 수가 없었다. 절대 '알라'를 만나는 장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리셉션맨이 우리를 인도했다. 별도의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외국인들은 따로 모여 앉는 것이 이곳의 룰인 듯했다. 아저씨 말대로 현지인 여자는 단 한 명도 찾아볼 수 없었다. 파키스탄 남자들의 새까만 눈동자가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우리들을 샅샅이 훑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일행 중에 남자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눈빛이 너무 날카로워서 한껏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불그스름한 조명 아래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는 뿌연 연기가 보였다. 사람들이 피워대는 하시시 연기였다. 아니나 다를까 리갈 아편굴 터줏대감들은 이미 한 자리를 차지하고는 한창 작업(?) 중이었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부터 사람들은 의미를 알 수 없는 구호 같은 것을 외쳐대며 흥분해 있었다.
커다란 북을 목에 둘러맨 세 명의 남자가 등장했다. 북의 무게를 충분히 지탱할 수 있을만한 커다란 덩치들이었다. 화려한 색깔의 의상이 먼저 눈을 사로잡았다. 제멋대로 자라난 검은 머리카락과 얼굴의 반을 뒤덮은 수염 때문에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대여섯 명의 남자가 연주자들 주변을 둘러싸고 섰다. 그들 역시 하나같이 현란한 차림새였는데, 게 중에는 갓 콧수염이 자라기 시작한 앳된 소년처럼 보이는 이도 있었다. 그들의 등장과 함께 공간의 온도가 순식간에 달아올랐지만, 나는 오히려 미묘한 한기를 느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낯선 무언가가 그 공간 안을 펄떡이며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인데도 그 분위기가 버거웠다. 나는 아마 조금 무서웠는지도 모른다.
Lahore, Pakistan, 2007
세 남자는 일제히 북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북의 양쪽은 서로 다른 소리를 내며 꽤나 빠른 장단을 만들어냈다. 의외의 날카로운 북소리는 한조각도 공중으로 흩어지지 않은 채 고스란히 전해져 내 고막을 두드렸다. 연주자를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은 장단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제자리에서 빙빙 돌기도 하고, 펄쩍 뛰기도 하고, 어깨를 덩실거리기도 했다. 제각기 다른 움직임이었지만 그들의 춤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얼마 전 옥상에서 개리가 선보였던 '도리도리 댄스'가 그것이었다. 역시나 옆에 앉아있던 개리는 흥에 겨운 듯 서서히 고개를 젓기 시작했다.
“개리. 네가 전에 옥상에서 췄던 춤이 이거였구나?”
그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고는 다시 도리도리 댄스에 열중했다. 공연을 지켜보던 사람들도 자신만의 박자로, 자신만의 움직임으로 북의 장단에 몸을 싣고 있었다. 북의 장단이 빨라짐에 따라 댄서들의 도리도리 속도 역시 점점 빨라졌다. 그 속도가 어느 정도냐 하면 동영상을 3배속쯤으로 재생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일 정도였다. 바라보고 있으면 멀미가 나는 것은 물론이고 두개골 안에서 뇌가 출렁거리고 있는 것 같았다. 멈춰있는 채로 보고만 있으면 현기증이 났기 때문에 차라리 함께 돌리는 편이 나았다. 내 몸이 견딜 수 있는 속도로 도리도리를 하다 보면 신기하게도 오히려 어지러움이 사그라들었다. 두려움도 함께 사라졌다.
저들이 정말 알라와 만나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지만 분명한 것은 확실한 트랜스 상태에 접어들었다는 것이었다. 맨 정신의 육체는 절대로 견뎌낼 수 없는 움직임이었기 때문이다. 마치 접신 상태의 무속인들이 작두 위에 맨발로 올라간다거나, 서늘 퍼런 칼날을 혀에 갖다 대거나 하는 행위처럼 말이다.
사람들은 여기저기서 각자의 스타일대로 하시시를 말아 옆 사람들과 나누어 피우고 있었다. 매캐한 연기 때문에 연신 손부채를 부쳐대는 내게 파자마맨이 하시시를 건네며 특유의 과장된 눈빛을 보냈다. 나는 그것을 받아 오른쪽에 앉아있던 개리에게 건넸다. 개리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집어 물더니 연기를 한 모금 빨아들였다. 하시시는커녕 담배도 피우지 않던 그는 눈물까지 찔끔 흘리며 켁켁거렸다. 나의 염려에도 불구하고 보란 듯이 더 깊게 연기를 빨아들이고는 다시 내뿜었다. 그렇게 개리는 종이가 타들어가 거의 남아있지 않을 때까지 손에서 놓지 않고 모두 피워버렸다.
“헤이. 개리! 그걸 혼자 다 피운 거야? 하시시는 나눔이고, 나눔은 사랑이라고!”
개리의 폭주를 지켜보던 파자마맨이 빽 소리를 질렀다. 개리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눈을 감은 채 도리도리에 열중했다. 개리 역시 무의식 속에서 무언가와 만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의 공연은 두 시간 넘게 계속되었다. 가장 커다란 체구의 연주자가 북을 치며 제자리에서 빙빙 돌기 시작했다. 그의 연주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원심력 때문에 북은 그의 어깨 높이만큼 떠올랐다. 이대로 하늘로 날아가 버리는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북장단은 더욱 잘게 쪼개지고 쪼개졌다. 분위기는 점점 고조되었다. 사람들은 짐승의 울음소리를 내며 환호했다. 그의 연주가 클라이맥스에 다다르면서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이 느껴졌다. 꼬리뼈부터 정수리까지 전류가 흐르고 있는 것 같았다. 당분간은 라호르를 떠날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공연이 끝나고 좁은 출구 앞으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렸다. 애초에 질서 정연한 모습을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미처 트랜스 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한 사람들은 더 엉망진창이었다. 여전히 풀려있는 눈을 껌뻑이며 엉거주춤하게 서있는 개리의 팔을 잡아끌어 인파 속을 헤집고 들어갔다. 출구의 계단 양쪽으로 남자들이 줄지어 서있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레드 카펫을 밟는 탑스타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계단을 내려가는 이들을 바라보고 서있었다. 그리 넓지 않은 계단을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험한 상황이었는데, 버젓이 공간을 차지하고 서있는 그들 때문에 계단 쪽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저 사람들 뭐야? 왜 저러고 서있는 거야?”
“자, 지금부터는 다가오는 손들을 이렇게 내리치며 걸어야 해. 준비됐지?”
리셉션맨이 두 팔을 허우적거리며 걷는 시늉을 해 보였다.
“아니, 그러니까, 네 말은…”
“자, 가자!”
계단에 진입하자마자 서있던 사람들은 이곳저곳에서 손을 뻗어오기 시작했다. 반가운 마음에 환호하며 손을 흔들어대는 것은 당연히 아니었고, 연예인 옷자락이라도 한번 만져보겠다는 그런 간절한 마음 비슷한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아주 노골적으로 지나가는 외국인 여자의 몸을 ‘만지기 위해’ 손을 뻗쳐대고 있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 손이 누구의 손인지 파악할 수조차 없었다. 계단을 내려오는 그 십여 초 정도의 시간 동안 이곳저곳에서 뻗쳐오는 그들의 손을 막느라 몸부림을 쳐대며, 있는 욕 없는 욕을 사정없이 허공에 외쳐대며, 겨우겨우 지옥의 계단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씩씩거리고 있는 나를 달래며 리셉션맨이 말했다.
“이곳에 오면 외국인 여자들을 볼 수 있다는 걸 알고 온 거야. 정말 유감이야. 내가 대신 사과할게.”
놀란 마음을 진정시킬 새도 없이 공연이 끝나고 빠져나온 사람들, 먹거리를 가득 실은 리어카들, 대기하고 있던 오토릭샤들로 길거리는 난장판이었다. 우리들이 잠시 정신을 놓은 채로 그 장면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사이 개리가 후다닥 뛰어가더니 대기하고 있던 오토릭샤를 잡아타고 홀랑 떠나버렸다.
“뭐야, 저 녀석? 아까부터 화장실 가고 싶다고 하더니 그렇게 급했나?”
“아까 그걸 혼자 다 피웠으니 아마 제정신이 아닐 거야.”
나머지 일행들과 그의 뒤를 따라 바로 오토릭샤를 잡아 탔다. 아직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우리들은 한참 동안이나 침을 튀겨가며 각자의 감상을 늘어놓기에 바빴다. 수피즘이 신과의 직접적인 만남을 추구하는 이슬람의 신비주의 사상이라는데, 방금 전의 그 장면이 과연 ‘알라가 보시기에 기쁜’ 장면인지는 여전히 의문이었다. 신이 인간에게 공연 관람 질서를 요구하지는 않겠지만, 성추행을 그러려니 여길 리는 없으니까.
동네에 도착하고, 숙소 앞 단골 케밥 집에서 치킨 케밥을 하나씩 사 먹었다. 거의 네 시간 가까이 아무것도 먹지 못했던 우리들은 허겁지겁 케밥을 먹어치우고는 그제야 부른 배를 두드리며 숙소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숙소 건물의 입구에 나있는 좁은 계단을 오르려는 순간 위에서 내려오고 있는 개리와 마주쳤다. 그의 손에는 검정 비닐봉지가 들려있었다.
“이 시간에 어디 가?”
“어? 어... 그게... 요 앞에 잠깐 나가. 먼저 올라가!”
그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리고 그는 후다닥 계단을 뛰어 내려가 사라졌다. 개리의 알 수 없는 행동에 당황한 우리는 몇 초간 서로의 얼굴을 멀뚱멀뚱 바라보기만 했다.
“근데... 이 냄새... 설마...”
“에이... 설마...”
화장실 양동이에 개리의 바지가 담겨 있었다는 증언이 추가되며, 그날 밤 개리에게 일어난 일을 대강 추리할 수 있었다. 우리는 ‘마음속으로’만 개리를 위로할 뿐이었다.
아... 개리! 네가 진짜 그 끝에 도달하긴 했었나 보구나. 그래... 그 상태에 도달하면 온몸의 근육이 이완되고... 그리고... 그리고... 그냥 널 이해할게. 너의 잘못이 아니야.
그 날의 사건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개리는 뉴욕으로 돌아간다며 라호르를 떠났다. 나와 친구는 그 이후로 세 차례나 더 수피 나이트를 찾은 후에야 겨우 훈자로 떠났고, 훈자에서 몇 주간 신선놀음을 하다 다시 라호르로 돌아왔을 때, 리셉션맨의 여자친구는 일본 여자로 바뀌어 있었다. 그 일본 여자가 리갈 인터넷인에 체크인하자마자 둘은 눈이 맞았고, 이를 보다 못한 카탈리나는 분노와 절망 속에 유유히 라호르를 떠났다는 슬픈 후일담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수피댄스’를 다시 보게 된 것은 2년이 지난 후였다. 나는 터키를 여행 중이었는데 이스탄불에서 관광객들을 위한 수피댄스 공연이 열리고 있는 장소를 우연히 지나게 되었던 것이다. 댄서들은 하얀 드레스에 하얀 모자를 쓰고, 양손의 손바닥이 하늘을 바라보도록 팔을 뻗고는 아주 천천히, 그리고 우아하게 제자리에서 돌고 있었다. 그들이 제자리에서 뱅뱅 돌며 하룻밤, 아니 이틀 밤을 지새워도 라호르 수피나이트의 주인공들이 그랬던 것만큼 신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Lahore, Pakistan, 2007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개리'였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