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전차군단 멈춰세운 태극전사들 1면 보기

어젯밤 소리를 하도 질러서 목소리가 갈라진다. 월드컵 본선에서 앞선 두 게임을 내리 지고, 온갖 악플과 비판에 시달리던 한국 대표팀은 16강 진출 좌절이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피파 랭킹 1위이자 지난대회 우승국인 독일에 맞서 무려 2대0으로 이겼다. 잘 뛰었다, 1면 가자.
스포츠기사가 1면에 가는 날이야말로 편집쟁이들의 진검승부가 벌어지는 날이다. 평소 스포츠면을 짜며 기량을 갈고닦던 후배와 1면을 짜는 선배가 합을 맞추는 때이기도 하다. 그래서 다음날 아침 제목을 각사가 어떻게들 뽑았을지 기대되는 때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번엔 시간이 너무 없었다. 종이신문은 배송을 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렇게 밤늦게 결론이 나면 신문사 제작인원들은 난감하다. 더구나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경기결과라, 편집자들이 미리 생각해두지도 못한 것 같다. 제목이 다 고만고만...
그러나 시간이 촉박할 때 제목질 잘하는 게 진짜 고수. 위기 속에 실력자가 누군지 찾아보기로 한다.

오늘은 나름 베스트와 워스트를 뽑아 봤다. 순전히 내맘대로니 토 달지 말자.


조선일보_기사 제목을 입력하세요_2018-06-28.jpg

조선일보

오늘 제목 단연 1등이다. 파격적이면서 공감되는 제목이다. 아침에 일어나 신문을 펼치는 대부분의 한국인은 경기결과를 이미 알고 있다. 사실상 경기결과를 제목에 담아봐야, 독자 입장에선 구문. 적절하고 짧고 독자 입장에서 단 훌륭한 제목이라고 생각한다. 사진은 또 어떻고. 수천장의 사진 속에서 사람 얼굴 하나 제대로 안 나온 걸 골랐지만 대표팀의 기쁨이 여기까지 전달된다. 저 뒤에 인상 긁고 앉아있는 건 독일 측이겠지.

세계일보_오늘의 월드컵_2018-06-28.jpg

세계일보

최악은 어쩔수 없이 세계일보다. 왜냐면 밤이 늦어 지면에 경기내용을 담지 못했으니까. 안타깝다. 얼마나 늦게까지 기다렸다가 마감을 할 수 있는가는 전적으로 매체력에 달렸다. 먼저 얼마나 좋은 기계와 제작 시스템을 가진 회사는 제작시간이 짧기 때문에 마감을 늦출 수 있다. 또 전국 곳곳에 해당 신문을 보는 독자가 많고 각 보급소의 밥을 먹여주는 신문은 아주 늦게까지 신문을 만들어도 찍어내 배송할 수 있다. 그렇게 좋은 판매망을 갖지 못한 신문사는 남의 신문 배송할 때 묻어가야 하는데 그러려면 먼저 빨리 만들어서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 늦으면 놓고 가버릴 거다. 세계일보가 새벽 한시 넘어 끝난 경기결과를 담기를 포기한 것도 이런 것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공장도 그닥 판매망이 좋지 못하다. 우리는 종이신문으로는 서울 중심부에만 간신히 돌린 듯하다. 집에 온 신문엔 상황이 반영되지 못했다. 아이서퍼나 스크랩마스터 같은 신문지면 PDF서비스에는 경기 결과가 들어갔다. 종이신문을 더 이상 못 찍는 시간에도 PDF는 상당히 늦게까지 가능하다. 그런데 세계는 왜 못했을까...


아래는 딱히 순위를 매길 수 없을 만큼 비슷한 수준의 편집들.

경향신문_16강은 못 갔지만… 세계 1위를 꺾었다_2018-06-28.jpg

경향신문

담백하게 있는 그대로 썼다. 독일이니 한국이니 그런 거 다 생략하고 '세계 1위를 꺾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무난한 제목. 사진은 갠적으로 조선이 나은 듯. 사람들이 너무 뭉쳐 있어서 좀 복잡스럽다.

국민일보_기사 제목을 입력하세요_2018-06-28.jpg

국민일보

안좋은 상황에서 좀 나은 제목을 달았다고 생각. 16강만큼 큰 선물이란다. 갠적으로 동의되는 내용. 사진은 영권이가 골을 넣는 순간을 선택했다. 나쁘지 않다.

동아일보_기사 제목을 입력하세요_2018-06-28.jpg

동아일보

조선처럼 가고 싶었을 텐데... 일단 제목 보는 순간 '어따 대고 반말이냐'라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자랑스러운 것은 맞는데 너무 하대하는 느낌은 나뿐인가. 이분들이 약간 국민을 대표한다는 생각이 강하신 듯. 사진은 조선, 경향과 비슷한 순간에 찍은 걸 왕창 땡겨서 썼다. 흥민이 얼굴이랑 선민이랑 현수 표정이 잘 드러난다. 현수는 이로써 무사히 입국이 가능해졌다.

문화일보_기사 제목을 입력하세요_2018-06-28.jpg

문화일보

석간인만큼 시간이 많았다. 열심히 오래 생각한 것 같긴 하다. 축구에 목숨걸지 않는 입장에서는 16강 못 든 게 절망의 끝이나 되는지 모르겠다. 앞선 경기들 수준으로 리그 마치고 입국하면 국대 입장에선 절망적인 상황이 공항에서 펼쳐지긴 했을 듯. 사진은 동아와 비슷한 전략.

서울신문_세계 최강 독일 침몰시켰다_2018-06-28.jpg

서울신문

우리공장 시간이 매우 없었다는 걸 알기에, PDF에라도 우겨넣은 것만으로 고생했다. 제목은 평범하기 이를 데 없다. 사진은 나름 재치를 발휘한 듯. 운동장이 아닌 벤치를 비췄다. 아마도 경질될 신태용(이날 교체카드 쓴 방식은 이해할 수가 없다. 도움 좀..) 얼굴을 넣기 위해서 이걸 선택한 건가.

중앙일보_한국축구 기적, 세계 1위 독일 깼다_2018-06-28.jpg

중앙일보

머리를 썼다. 1면에 사진 한장 들어갈 자리만 만들어 놓고 경기 끝나자마자 사진 위에 제목만 얹어서 호로록 마감한 것 같다. 덕분에 제목은 무난하고, 사진도 경기 중 사진을 넣었다.

한겨레신문_투혼의 한국, 독일전차를 멈춰세우다_2018-06-28.jpg

한겨레신문

한겨레도 중앙과 똑같은 전략을 썼다. 제목은 고딕체. 경기 전 재미삼아 생각했던 제목(포스팅 제목)과 가장 비슷한 제목이라 반갑다. 독일전차 캐터필러에 끈끈이폭탄을 철썩철썩 붙여서 작살내던 영화 '라이언일병구하기'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사진은 영권이. 이번 대회 제일 잘한 두명 중 하나.

한국일보_기사 제목을 입력하세요_2018-06-28.jpg

한국일보

한겨레랑 제목으로 하고 싶은 말은 비슷한 것 같은데 '코리아'라고 굳이 왜 영어를 썼는지 이해 불가. 사진도 누구 하나 제대로 나온 사람 없이 어정쩡.


이번 대회 베스트는 조현우라고 생각. 쓰레기 같은 키보드 벌레들의 인격모독 테러를 아내와 아이까지 당했는데 평정심을 유지하고 초인적인 슈퍼 세이브를 보여줬다. 잘 하는 것만이 그들에게 본때를 보여주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고 또 실현했다고 생각한다. 한 참 어린 친구지만 너무나 어른스럽고 멋진 스포츠맨이다. 무엇보다
먼저 남자로서, 가장으로서 존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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