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어체를 생략하겠습니다.
어떤 광범위한 지역을 누가 뭐라고 부르는가는 참 의미없는 일이기도, 대단히 중요하기도 하다. 서양 중심의 역사에서 아시아(Asia)와 동쪽(East)를 사실상 동의어로 사용했다고 보면 중동(Middle East)과 중앙아시아(Central Asia)는 같은 말 일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중동이란 우리에게 이집트나 사우디, 이란, 이라크와 같은 지역을 떠올리게 하고, 중앙아시아는 관심이 없다면 아마 어디를 말하는지 생각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서구가 자신들에서 가장 가까운 곳을 기준으로 근동, 중동, 극동을 나눴다면, 오늘날 거의 사라진 개념, 근동이 중동과 합쳐졌기 때문이다. 더구나 사실 근동이란 말은 그들의 동쪽일 뿐 아니라, 유럽 최서단 포르투갈보다 더 서쪽까지 뻗은 아프리카 최서단 모로코, 서사하라, 모리타니아까지도 문화적인 중동의 권역으로 규정된다. 물론 영토적인 위치는 동쪽 이란에서 출발하여 사우디 건너편 이집트까지가 중동일 수 있겠다. 같은 영역을 가리키는 명칭이 상당히 다른 영역까지 이르게 되는 것은 문화적 영향권과 영토는 상당히 차이가 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시아’란 개념도 사실상 인도를 기준으로 나눠지지만, 그 문화적인 영역은 터키까지 훨씬 더 늘어난다.
즉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아시아나 유럽이나 광역을 가리키는 말은 어떨 때는 문화적으로, 어떨 때는 지리적으로 완전히 다른 맥락에서 쓰여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독립적인 영역이었던 호주가 이제 아시아가 되었다는 의미를 생각해보게 한다.
이제와서 굳이 다른 말로 바꿔 부를 수고를 할 필요는 없으니 많은 사람들이 공통된 관념으로 쓰고 있는 지정학적인 명칭들을 그대로 쓰게 되겠지만 그 범위는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를 수 있다는 점과 어느 한쪽의 기준에서 일방적으로 명명되었다는 사실은 염두에 새겨둘 필요가 있겠다.
그렇다면 중앙아시아란, 이란과 카자흐스탄이 인접한 또 하나의 지중해인 카스피해를 왼쪽에 둔 -stan이란 지명이 붙은 국가들을 가리킨다. 스탄이란 국가란 페르시아고, 여기가 페르시아 대제국의 중심이었다고 보면, 사실상 중앙아시아란 옛날 페르시아의 영토를 가리키는 말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여기서 더 오른쪽으로 가면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서역이라고 부르던 국가들이 있던 곳이다.
타클라마칸 사막을 기준으로 한 중국의 국가들과 패권을 다투던 나라들은 이제 다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위구르와 티벳 정도만 중국의 자치구로 남아있고, 오늘날은 중국의 서남공정의 대상이 되었다. 이곳의 명칭이 중앙아시아가 아닌 것은 당연히 중국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은 분명 중앙아시아의 문화적인 영역이다.
이 곳을 중심으로 벌어진 19세기초부터 100년동안 최강대국 러시아와 영국은 아무도 모르게 전쟁을 벌였다. 러시아에선 ‘그림자 토너먼트’라고 불리지만, 일반적으로는 이른바 오늘 소개할 책 제목인 ‘그레이트 게임 Great Game’이라고 불리는 사건이다.
피터 홉커크, ⟪그레이트 게임⟫, 정영목 번역, 사계절
이 전쟁은 마치 지하실에서 돈을 걸고 밤에 몰래 벌어지는 파이터들의 이야기처럼 은밀하지만 100년이나 지속되었던 역사적인 사실이다. [더 타임즈The Times]의 아시아 전문 기자로 오래 있던 저자인 피터 홉커크는 중앙아시아 최고 전문가 중 한 사람이다. 언젠가 다음에 소개할 같은 작가의 ⟪실크로드의 악마들⟫은 불교를 중심으로 한 문화재들에 관한 한정된 이야기지만, 이 책 ⟪그레이트 게임⟫은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역사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먼저 소개한다.
힘빠진 과거의 대 제국의 영토, 정치, 문화 등의 헤게모니를 차지 하기 위해 현재의 두 제국이 벌이는 어느정도(?)는 탐욕스러워 보이는 소리없는 쟁탈전이 적나라하게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이 책은 사실을 다루면서도 마치 소설과 같이 전개하는 구성도 매력적이다.
(그래도 물론 조금 딱딱하기는 하다.)
아무튼 그 탐욕의 전쟁을 주인공들 개인의 디테일을 따라가며 경험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는 감정적으로 선악을 구별하지 않고 커다란 역사를 하나의 이야기로 차분하게 바라보게 하겠지만, 다만 이 훌륭한 저자가 영국사람이란 점, 팔이 안으로 굽을 수 있다는 점은 잊으면 안되겠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수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