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 없는 사람의 관심 | 나는 왜 스팀잇을 하는가

습관적이다. 스팀잇에서도 내 블로그만 둘러본 뒤 무심코 나간 적이 몇 번이나 있다. 페이스북을 할 때도 댓글에 대댓글을 남길 뿐 다른 사람들 방문은 하지 않았고, 블로그를 할 때도 혼자 보는 일기만 쓰면 끝이였다. 이건 싸이월드를 했을 때부터였다. 일촌이나 친구 신청을 먼저 하지도 않았고 원래 있던 친구 목록도 종종 정리했다. 같은 맥락인지는 모르겠는데 내 방이 생겼을 때도, 나는 책상과 침대 하나만 있었으면 했다. 다른 가구들로 내 방이 좁아지는 게 싫었다.

참 남들 일에 관심이 없다. 그래서 좋은 건, 조금은 더 내 방식대로 살 수 있는 점? 하지만 소통 바보가 되고 시대에 뒤쳐진다. 하긴, 핸드폰 없이 살고 있으니 말 다했다. 우리 아부지가 그렇다. 맨 혼자 산에 오르고 별을 보고. 그래도 전엔 바둑 두신다고 집에 친구 분들이 놀러오시곤 했는데 요즘엔 역사 공부에 빠져서 매일 책만 보신다. 어릴 땐 그런 아빠가 혼자만의 성에서 혼자만의 정원을 가꾸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 아빠도 여적 핸드폰을 사용하지 않으신다.

그런데 엄마가 문제다. 남들에게 관심이 너무나 많으셔서 걔는 뭐한다더라, 그 집은 어떻더라 매일 그런 소리다. 수능 끝나고가 피크였다. 친구들이 어느 대학에 들어갔냐고 하도 물어오셔서 전화해서 직접 물어보세요. 라며 졸업앨범을 드린 적도 있다. 나는 궁금하지도 않고, 그깟 대학교 어딜 들어가든 무슨 상관이냐 싶었다. 그런 엄마는 사교계의 여왕이었다. 늘 주변에 사람들이 많았다. 엄마가 모임에 나갈 수 없는 지금까지도, 사람들은 먼 우리집까지 찾아온다.

요즘 보팅바가 40,50% 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무 글에나 보팅을 남발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리워드가 있을 법한 글에 보팅을 골라 했느냐? 그건 더욱 아니다. 스팀잇에 자꾸 관심이 가는 사람들이 생기고 마음이 가는 글이 보이는 바람에 그렇게 되었다. 보팅바를 80%대까지 회복하기 전에는 스팀잇을 좀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눈에 밟히면 자꾸 보팅을 하게 되어서. 그런데 내 글에 달린 리플을 내버려 둘 수가 없어 또 들어왔다. 댓글을 달고 바로 나가려다가

‘내가 왜 스팀잇을 하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 스팀잇에서 소통하고 있는 것을 지인들이 알면 엄청 서운해할 노릇이다. 카톡 메세지 확인을 하지 않는다고 안그래도 원성이 자자한데. 습관처럼 내 블로그만 둘러보고 휙 나갔다가도 ‘아니지’ 하는 생각에 다시 들어와 딴 사람들의 글을 보러 간다. 심지어 먼저 팔로우를 하기도 한다. 내가 변한건가? 보팅때문에 인맥관리를 하나? 외롭나?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남들한테 관심이 있었다고?

나도 관심을 받았으니까. 나도 관심이 필요했었으니까. 나도 보상을 받았으니까. 나도 보상이 필요했었으니까. 스팀잇에 글 쓰는 사람들, 우리 다 같은 마음 아닐까 하는 동질감이 나를 붙든다. 차라리 모두가 고래고 나만 플랑크톤이면 전처럼 무심하기라도 하겠는데, 플랑크톤끼리도 이리 온정을 주고 받으니 보팅조차 못하는 마음이 편치가 않은 것이다. 얽매이게 되면 못쓰는데. 게다가 이 곳은 나 혼자만 잘 살면 의미가 없는 곳이다. 그럴 수 있다고 믿는 것조차 교만 아닐까. 무관심이 관심으로, 불통이 소통으로, 교만이 헤아림으로 바뀌는 곳이 스팀잇이 아닌가 싶다. 최소한 나에게, 아직까지는 그렇다.

그래도 오늘만큼은 보팅파워 회복을 기다릴겸, 스팀잇을 몰랐던 때의 일상으로 잠시 복귀하려고 한다. 밀린 설거지도 하고, 세탁기도 돌리고, 어느새 텅 빈 냉장고도 채워야겠다. 한달 간 쳐다보지도 않은 스페인어(내가 남미에 있다는 것도 잊을 지경이다)와 일본어 공부도 좀 하고, 요즘 너무 혼자 둔 룸메이트와도 놀아줘야지. 밀린 카톡 답장도 좀 하고... 그동안 무심했던 것들에 관심을 좀 주어야지 안되겠다. 방문해주신 분들 답방은 수일 내 꼭 할 것이다. 사교계의 여왕이 멀지 않았다.

IMG_8006.JPG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springfield

H2
H3
H4
3 columns
2 columns
1 column
61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