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terchung님을 시작으로 바가바드기타 [천가지감]을 감사평 릴레이를 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nabinabi 님의 지목을 받아서 작성하게 되었네요. 그래서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써보려고 합니다. 이전에는 그냥 써지는 대로 흐르듯 글을 썼는데요. 오늘의 글은 구성도 생각해보고, 객관성을 가지고 설명을 하며 쓸 생각입니다. 이전 글들은 허공을 날아다닙니다. "무슨 소리를 하지는거야" 라는 생각도 하셨을 것 같습니다.
7장 2절
내 이제 참 자아를 아는 지혜와
참 자아를 체험적으로 경험하는 깨달음에 대해
그대에게 말해 주리라.
이것을 알면
이 세상에서 더 이상 알아야 할 것이 없다.
어마무시하죠? 크리슈나는 참자아의 깨달음에 대해서 설명해준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알면은 세상에서 알아야 할 것들이없다고 하네요. 모든 알아야함 중에 근원이라고 할까요? 이곳에서 모든 의문들이 풀린다는 뜻이겠죠? 여기서 말하는 참자아 는 무엇일까요?
참자아 = 참나 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요. 사전검색을 해보니 이렇게 해석됩니다.
- 참나 : 본래 모습의 나. (순우리말)
참나의 표현은 여러 곳에서 쓰입니다. 종교, 영성, 심리학 등 다양하게 쓰이죠. 이와 연결 되는 표현으로는 에고[Ego]가 있습니다. 나(자아)를 에고라고 표현하고, 넘어서의 진짜의나(참나)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먹고, 듣고, 보고, 숨쉬고, 움직이고, 생각하고, 활동합니다. 다 내가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누군가가 나에게 가짜라고 합니다. 진짜 너가 아니라고 합니다. 나는 이렇게 살아서 있는데, 내가 가짜라고? 그러면 뭐가 진짜야?
고등학교 때 쯤 부터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서 깊은 고민을 했던 것 같습니다. 많이 질문하고 다녔습니다. 나에게 물었고, 현명한 사람들이게 물었고, 책과 영상을 찾았습니다. 그때마다 나를 정의 해보았지만, 나라고 정의 했던 생각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했습니다. "세상은 늘 변하고 변화는게 나인가보다 "생각하면서 살았습니다. 알려고 해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고전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종교의 경전들이었습니다. 성인들의 책이었습니다. 몇천년을 살아서 지금까지 전해지는 말이었습니다. 몇천년 전의 성인의 말이 지금까지 남아 있었습니다. 세상은 끝임 없이 변했는데, 고전에 남아 있는 이치들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신기했던 것이 다르지 않았습니다. 같았습니다. 말하는 표현과 방식은 달랐는데, 한 방향을 가르켰습니다.
도덕경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 도(道)를 도(道)라고 하면 도(道)가 아니고 이름을 지으면 이름이 아니다. 뜻을 풀어보자면, 무엇에 대한 개념을 정하는 순간 그것은 달라지는 것입니다.이름을 정하는 순간 그것은 변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나무라는 이름은 누가 처음 이름을 붙였을까요?? 만약에, 나무의 이름을 처음 정한 사람이 나무라고 하지 않고, 나무를 "상자"라고 이름을 정했으면, 우리는 지금 나무를 상자라고 말하면서 살 것 입니다. 그렇습니다. 사실 모든 것에는 이름이 없습니다. 이름 없는 것에 우리가 표현하기 위해서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나무라고 이름 지엇기에 나무가 된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이름 안에 있는 것입니다. 나무는 기둥이 있고 잎이 있고 땅에 박혀있는 어떠한 생명이지요. 나무라고 표현하면 한계가 생깁니다. 무언가 달라집니다.
노자가 말합니다. 무언가에 이름을 붙이면 그것을 그것이라고 할 수 없다. 그래도 표현해야 하기에 이름을 붙인다. 노자가 말합니다. 진리가 있다. 그렇지만 진리는 말과 언어로 표현될 수 없다. 그래도 표현하자면 그것은 도(道)이다
다시 돌아와서 종교와 성인들의 참나에 대한 표현도 이러했습니다.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야 했습니다. 그래도 표현 했기에 신(神),아트만, 불성, 하나님, 도(道), 브라만, 영혼 등 (구체적으로 뜯어 보면 차이가 있지만 뭉뚱 그려서)으로 표현 했던 것 같습니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성인들의 말씀의 방향성은 살아 있는 나(Ego)를 영원히 바라보는 참나(하나님)이 있다. 로 귀결 되었습니다. 나를 움직이는 큰 힘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변하는 내가 아니라, 영원한 나였습니다.
7장 10-11
아르주나여,
나는 모든 존재의 씨이다.
나는 분별력 있는 사람의 분별력이고,
뛰어난 사람의 뛰어남이며, 힘있는 사람의 힘이다.
나에게는 욕망이나 집착이 없지만,
모든 존재가 가지고 있는
본능적인 욕망도
존재의 법칙에 따라 나타나는 나의 힘이다.
7장 24-26
어떤 형상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나라고 여기며 섬기는 것은
무지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의 진정한 모습이
눈에 보이지 않으며,
태어남과 죽음을 넘어서 있다는 것을 모른다.
나의 창조력이 빚어낸,
환영에 지나지 않는 외적인 현상에 미혹되어 있는 동안에는
내가 태어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으며
영원히 변하지도 않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아르주나여,
나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것을 알고있다.
그러나 참으로 나를 온전히 아는 사람은 없다.
마지막은 크리슈나의 말로 끝은 맺겠습니다. 영원한 것은 참으로 모릅니다. 글과 말로는 온전히 알지 못합니다. 온전히 아는 방법은 바가바드기타에서 앞으로 이야기 해줄 것입니다.
글을 마침
생각을 풀어서 쓰려고 했는데, 잘 풀려있지 않는 느낌입니다. 걸림이 있네요. 부족하고 몰라서 입니다. 언제가는 명료하게 풀어서 전할 수 있는 날이 있겠지요.. @nabinabi님의 지목을 받았고 다음 릴레이는 님을 지목 하겠습니다 ~ 천가지감도 7장까지 왔고 앞으로 11장이 남았네요. 마지막 18장까지 잘 이어나가길 마음 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