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김예니씨가 아파트 경비원 해고를 막기 위해 벌였던 서명운동을 정리한 글입니다.
안녕하세요, 민중의소리 스팀지기입니다. 오늘은 칼럼을 하나 소개해드리려고 해요. 어느날 갑자기 아파트 경비원들을 해고 한다는 통지를 엘리베이터에서 마주한 주부 김예니씨.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알아보니 최저임금 인상을 적용하면 가구당 5천원씩 관리비가 오른다고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경비를 절감하기 위해 인원을 감축하기로 했나봐요.
김씨는 놀랐죠. 그리고 이웃들에게 물어봤더니 다들 놀랐다고 합니다. 결국 팔 걷어붙이고 서명운동에 나섰나봐요. 그냥 5천원 더 내고 경비원 자르지 말자고! 김예니씨가 그 서명운동 과정을 생생하게 정리한 글을 보내왔습니다. 전문 그대로 소개해 드릴께요.
관리비 5천원 아끼려고 경비원 8명을 해고하다니
2017년 연말, 새해를 며칠 남겨두고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공지가 붙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경비용역 인건비가 상승할 예정이라 관리비 상승을 막기 위해 경비인력을 감축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새해가 된지 얼마 되지 않아 또 다른 공지가 붙었다. 기존 22인 체제에서 8명 감축한 14인 체제로 경비인력을 운영하면서 12시간 2교대 근무를 하게 되었으니 해당 초소경비원들의 휴게시간에는 옆 동 초소를 이용할 것을 권한다는 공지였다. 함께 엘리베이터를 탄 중학생은 그의 엄마에게 말했다. “이건 너무 한 거 아니야?” 동감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오르기에 이 대단지 아파트에서 이 난리인가. 그것도 입주자들에게 물어보는 절차도 없이.
하지만 단지는 조용했다. 간혹 만나게 되는 동네 아는 애엄마들에게 이 사안을 얘기하면 다들 경비인원감축을 반대하고 관리비 몇 푼 더 내는 게 문제가 아니라고 이야기하는데 동네의 분위기가 워낙 폐쇄적이고 보수적이라 그런지 아무도 나서는 이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아는 엄마들과 함께 변하는게 없더라도 그냥 가만히 있는 것보다 반대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자체도 의미 있겠다 싶어 전화라도 걸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것이 시작이었다. 항의전화 중 이제껏 우리가 얼마의 관리비를 냈고 앞으로 얼마나 오를 것을 예상했기에 경비인원 감축을 했는지 관련 자료가 있으면 보여 달라고 했고 대표자회의 결정사항이 번복되기 위해서는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도 확인하게 되었다.
관리사무소가 작년 22명으로 운영되었을 당시 경비용역에 집행한 금액은 년 6억7천만 원이었고 올해 최저임금을 적용, 임금인상 16%를 반영하면 금액은 년 7억7720만 원으로 인상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를 1828세대의 월단위 관리비로 계산하면 월 3만543원 정도 내던 것에서 월 3만5403원을 내는 꼴이 된다. 가구당 약 5000원 늘어난 것이다. 사실을 확인하고 나니 더욱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우린 단돈 5000원과 무엇을 바꾼 것인가.
당장 입주자들에게는 하루 7-8시간동안 방범의 공백이라는 피해가 생겼다. 경비아저씨가 쉬는 시간 동안에는 단지의 민원을 관리사무소가 메우고 있다고 했지만 이는 관리사무소에도 과중한 부담이고 실제 주민의 안전과 위기상황에 대한 대비가 느슨해지는 결과를 낳을 수 있었다. 그리고 관리사무소에 따르면 이미 눈 치우는 일이나 주민들의 분리수거를 관리하는 일, 주차문제에서 방문자 문제 등 알게 모르게 손이 미치지 못하는 부분들이 이미 발생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현재 일하고 있는 경비아저씨들의 변칙적인 근무형태도 문제다. 무급으로 3-4시간의 강제적인 휴게시간을 갖게 하는 것은 법으로 정해진 시간 외 추가 노동을 통해 임금을 낮추는 불법적인 행위이다. 이는 단순히 비겁한 꼼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최저임금 인상으로 보다 나은 노동조건,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을 만들려는 의도 자체를 무력화하는 시도이기에 더욱 해악적이다. 더군다나 이런 후퇴한 노동조건은 8명 경비아저씨의 급작스런 해고통보와 함께 이뤄졌다. 이런 결정은 누군가의 생계와 희생을 대가로 관리비 5000원을 아끼겠다는 갑질의 횡포가 아닐 수 없다.
입주자대표회의의 회칙에 따르면 입주자 20명의 동의를 받아 안건을 재심의할 것을 요구하면 결정된 사안도 다시 상정되어 재논의가 된다고 했다. 걱정되는 것은 회의 결과 주민투표를 하게 되는 것이었다. 주민투표의 특성상 동대표가 대충 대표자회의 입장에서 찬성을 요구하면 다들 대표가 요구하는 쪽으로 투표하는 경향이 강한지라 이런 상황에서 투표가 능사는 아닌 듯 했다. 좀 더 이 문제를 알리고 문제의 심각성을 단지가 공유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위의 내용을 담은 서명용지를 만들었고 관리사무소에서 대표자회의와 반대되는 내용을 엘리베이터에 부착하는 것은 어렵겠다 하여 동네 아는 엄마들에게 서명용지를 돌렸다. 같은 반 학부모들이 모여 있는 단체카톡방에 파일을 올리고 각 종 엄마들 모임에 서명용지를 들고 나갔다. 쑥스러웠지만 안면이 별로 없는 학교운영위원들에게도 돌리고 지인들에게도 주변에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같은 반 학부모 엄마들은 자신이 아는 사람들에게 서명을 받아다 주겠다며 서명용지를 가져가기도 했고 우리 집 우체통에 서명을 받은 용지를 넣어두고는 나서주셔서 고맙다는 메시지도 여럿 받았다. 또, 모르는 한 분이 지인을 통해 통화를 하고 싶다 해서 알게 되었는데 그 분도 이 문제에 대응하고자 인터넷 카페를 만들었다고 했다. 섬처럼 떨어져있었던 경비인력 감축을 반대하는 마음이, 최저임금 인상을 무력화하는 시도에 맞서고자 하는 마음이 조금씩 모이고 있었다.
아파트 경비원과 입주민이 더불어 사는 것, 어려운 일일까요?
서명운동을 마감하고 관리사무소에 그 동안 받은 서명용지를 전달할 예정이다. 그리고 일주일 후, 이 문제를 안건으로 상정한 대표자회의가 열릴 예정이다. 현재까지 226세대가 서명에 참여했다. 좀 더 조직적으로 좀 더 시간을 들여 서명운동 했으면 좋았겠지만 대표자회의 일주일 전에는 안건을 접수해야 하기에 이 정도에서 마무리하는 것이 아쉽다. 하지만 마음은 한결 가볍다. 불만을 가진 채 누군가 나서주길 기다렸을 때보다 작은 일이나마 하게 되어 마음의 무거운 짐을 조금은 덜 수 있었다.
더불어 모두의 마음에는 더불어 살고자 하는 작은 불씨가 있었다는 것도 확인했다. 마음은 있지만 튀고 싶지 않아서, 번거로워서, 두려워서 드러내지 못했을 뿐 기회가 되고 계기가 생기면 이렇게 함께 모여 준다는 것도 알았다. 물론 그 결과가 다 해피엔딩이라는 보장은 없지만 2017년 초 그 겨울처럼 작은 불씨들이 모여 작은 변화를 만들어 줄 것이라 믿는다. 우리가 경비인력 감축에 반대하며 약자의 희생을 대가로 얻게 되는 내 이익을 불편해하고, 이 문제를 남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문제로 생각하며 함께 고민하고 대안을 모색하고자 힘을 모았다는 이 사실이 지금은 무척 소중하다.
- 글쓴이 : 김예니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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