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어제는 오랜만에 옛 친구를 만났습니다. 오늘 술 한 잔이 땡기는 날이라고 불러내더군요. 말은 옛 친구라고는 하지만 지금도 근처에 살고 있고 연락이 끊긴 적도 없어서, 도트가 선명한 고전 게임 같은 느낌이 아니라 계속 업데이트되는 MS 오피스 같은 느낌의 친구입니다.
생각해 보면, 이 친구도 참 오래된 친구입니다. 중학교 때 학원에서 처음 만나 친해졌으니, 벌써 인생의 절반 이상을 같은 세상에서 살고 있는 셈입니다. 물론 초등학생일 때부터 친했던 친구들도 많지만, 지금까지 이렇게 연락이 닿고 서로의 관심사를 유지하는 친구는 손에 꼽습니다. 더욱이 이 친구의 스물 세번째 염색체 구성이 XX인 점을 고려하면, 정말 드문 경우입니다.
사람들은 ‘옛 친구’+‘남녀’의 조합에서 어떤 대화를 기대할는지 모르지만, 공대 출신인 우리의 술자리 대화는 이과 갬성이 충만했습니다. “인간이 왜 사냐는 문제는 과대평가된거야. 결국 인간의 지능이 메타 코그니션이 가능해지면서 어쩌구 저쩌구”(제가 한 말이 아닙니다). “동생이 연구하고 있는 분얀데, 언어적 능력이랑 음악적 능력이랑 둘 다 소리를 기억하고 재생하는 숏텀메모리의 기능이어서 어쩌구 저쩌구” (이것도 제가 한 말이 아닙니다). “외모에 자신감을 가져! 그래도 너 가우시안 오른쪽 1시그마 안에 있어!”(이건 제가 한 말입니다). 당연히 이런 대화는 전체 맥락에서 보조적인 역할로, 주제 자체는 서로의 근황, 동네 친구들 이야기였으나, 간간히 우리의 입에서 터져나오는 이과 갬성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때의 감수성
친구와 헤어지고 집에 오는 길, 옛날 생각이 났습니다. 우리가 고등학교 동창이기도 해서, 그 당시의 일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특히 오랜만에 충전된 이과 갬성에, 지금은 낯부끄러운 그때의 감수성이 상기되었습니다.
그 나이 즈음 학생이면 누구나 이성 문제에 마음을 쏟기 마련이고, 저 역시 예외가 아니었는데, 안타깝게도 당시의 여자친구와 잘 안되어서 나름 슬퍼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꽤 좋아했지만, 제가 너무 어설펐습니다. 그리고 곧 모든 노래 가사가 내 이야기 같고, 각종 사물에 감정을 이입하는 때가 찾아왔습니다. 고구려 유리왕도 “펄펄나는 저 꾀꼬리 암수 서로 정답구나. 외로울사 이 내몸은 뉘와 함께 돌아갈꼬”라 했으니, 고래(古來)로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조금 독특한 점이 있었습니다. 제가 이입한 대상이 이과생스럽게도 이상기체 분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상기체의 분자의 기본 가정 중에, ‘분자는 완전탄성충돌’을 한다는 대목에서 세상 사람들과 제 자신 같아 보였습니다. 자유롭게 운동하는 분자들끼리 서로 충돌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그래 그렇게 어렵게 서로 만났는데 결국은 완전탄성충돌로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날아가버리는구나. 우리도 그렇게 어렵게 만나서는 감정적으로 남보다 더 멀어져버린, 불편한 사이가 되어버렸구나. 함께 덩어리지는 완전비탄성충돌이 부럽네. 최소한 같은 방향을 갈 수 있는 비탄성충돌이라도 되었으면 좋았을텐데.
지금은 우스갯소리 같지만, 그 때는 진짜 진지했습니다. 그래서 또 지금 다시 생각하니 너무나 웃기는 일화입니다. 사실 실제로 저 글감으로 일기를 쓴 적도 있었는데, 나중에 보고 너무나 부끄러워서 찢어서 버리기도 했었답니다. “와~ 내가 이렇게 이과 냄새가 났었구나”하고요.
하등 쓸데 없는 이야기지만, 오랜만에 친구를 보니 옛 생각이 나서 끄적여 봤습니다. 오글거려도 어릴 때가 좋은 것 같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