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만평(時代漫評) - 15. 갱시기

갱시기는 죽도 밥도 아닌 음식이다. 

갱시기 또는 갱죽이라고 불리우는데,  갱식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갱은 제사 지낼 때 무와 다시 등을 넣어서 끓인 국을 말하는데, 물이나 국에다 밥을 넣고 끓이는 죽이라 하여 갱죽이라 불리었다고 한다. 혹은 갱죽의 '갱'을 '다시 갱' 한자로 쓰기 때문에 한 번 밥이 된 것을 다시 끓인다 하여 갱죽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 이름의 유래야 어찌 되었든, 간간한 무청김치나 묵은 김치를 주재료로 하여 보리밥과 기타 부식재료 등을 넣어서 끓인 음식이니 그 의미는 거의 같은 것이다. 

갱시기 또는 갱죽은 경북 서북부지방에서 오래전부터 보릿고개를 넘기 위해 먹었던 음식이자, 한참 경제 개발을 부르짓던 60~70년대의 어려웠던 시절을 대표하는 서민들의 음식이다. 우리네 아버지가 먹었던 음식이고, 그 아버지의 어머니가 가족을 위해 끓였던 음식이니 기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만으로도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음식인 것을 알 수 있다. 

1970년대 이전에는 갱시기를 별식이 아닌 주식으로 더 많이 먹었다. 많은 가족들이 배를 곯지 않고 하루를 보내기에 갱시기가 제격이었기 때문이다. 먹을거리가 부족해서 음식의 양을 늘려 먹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죽을 선택했던 것이고, 또한 보릿고개를 넘기는 구황음식이기도 했다. 힘들었던 시절, 서민들이 만들어낸 지혜인 셈이다. 

갱시기 한그릇을 먹는 순간은 배가 부르지만, 금세 꺼져버린 배를 움켜쥐고 기나긴 밤을 보내야 했던 사람들에게는 추억의 음식이 아닌, 말 그대로 '징글징글'한 음식이었다. 갱시기로 보릿고개를 넘기지 않아도 된 것은 1970년대로 접어들면서이다. 80~90개의 낱알이 열리던 기존의 벼를 대신해 130~140개의 낱알이 열리는 통일벼가 보급된 것이다. 그 후 40%이상의 식량증대가 이뤄져서 서민들의 삶이 조금씩 나아졌다. 이후 갱시기는 주식에서 별식으로 바뀌게 되었고, 생활이 어려워서 먹는 음식이 아닌 웰빙 건강식, 과음 후 속풀이 해장식으로 변모했다. 불과 30년 전만 해도, 먹기 싫어도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했던 음식이었는데, 이제는 일부러 찾아가야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이 된 것이다. 

 

 

나 역시 70년대에 어린시절을 보내면서 갱시기를 자주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 당시 내가 살던 부산 근방의 변두리 지역은 대부분 가난한 빈민가들이었고, 개를 식용으로 사육하는 집들이 많아서 개에게 주는 밥을 주로 사람이 먹다 남긴 갱시기로 주던 것을 보았던 기억이 있다.  지금처럼 개사료라는 것이 있지도 않던 시절이었고, 사람도 먹고 살기 힘든 시절에 개에게 먹일 좋은 먹이가 따로 있던 시절도 아니었으니, 사람이 먹다 남긴 것을 재료로 해서 죽을 씌고 그것을 먹이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내 어린 시절에는 사람이 먹는 갱시기에까지도 험악하게 '개 죽' 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개 한테나 주는 죽이라는 의미로서 가난으로 인한 서글픔을 은유적으로 빗대어서 표현을 했었다.  

추운 겨울날, 이름 아침에 식구가 많은 가난한 집에서 연탄아궁이에 올려져 있는 솥단지 안에, 모든 식구가 먹기에도 턱 없이 부족한 얼어붙은 밥을 집어넣고는, 묵은지 김치와  콩나물을 쓸어넣고 나무 주걱으로 휘저어준다. 그러면 그 집의 연탄아궁이 위에서 피어오르는 묵은김치의  쓰디쓴 냄새는 동네전체로 퍼져 나가고, 이 집과 비슷하게 먹을거리를 걱정하던 다른 집들도 덩달아서 '개 죽'을 쓰기 시작한다. 그러면 곧 이어서  배고픈  철장 속 개들은, 온 동네를 휘감은 그들의 밥이 만들어지고 있음을 알리는 '개 죽'의 냄새를 맡고는, 빨리 밥 달라는 신호로 동시에 짖어대기 시작한다.  그래서 ' 개 죽'의 쓰디쓴 묵은 김치 익어가는 냄새는, 그 당시에 사람들이 개처럼 취급당하면서도 끈질긴 생존 욕구 때문에 굶지는 않으려고 고픈 배를 억지로 채워나가던 시절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요며칠 추운 겨울의 기운이  맴돌고 있는 동안,  우연하게  찾아진 인터넷 블로그 안에서 내 눈에 보여지는 갱시기 죽 한그릇, 이 갱시기 죽 한 그릇이 어린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바람에  갱시기에 대한 기억을 되새기면서 이 글을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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