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태국, 코따오>
해가 뜨는 것보다 지는 것을 좋아한다.
새벽부터 일어나 부산스럽게 준비해서 봐야 하는 일출보다는 길 가다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선물처럼 나타나는 일몰의 의외성이 좋다. 하루의 시작을 알리며 빼꼼 나타나 희망과 역동을 이야기하는 일출보다, 붉은 흔적을 아쉬움처럼 잔뜩 머금다 사라지는 일몰이 더 마음이 가고 신경이 쓰인다.
그러다 보니 여행을 하며 지는 해를 쫓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작년, 목적 없이 홀로 떠돌던 태국 여행의 마무리는 바다였다. 코팡안에 가기로 하고 블로그에서 코팡안에 관한 글을 하나 읽었는데, 일몰이 아름다운 바에 대한 이야기였다. 감탄과 극찬으로 일관되어 있었다. 블로거들의 과장에는 이골이 난 상태였는데도 진심 어린 감탄이 배어 나와 어쩐지 마음이 끌렸다. 오토바이를 못 타 이동수단이 없는 나는 바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숙소를 잡았다. 오로지 그 바를 가기 위해. 20분 정도면 도착한다 했지만 25분쯤 걸었을 때 내 눈앞에는 계단과 표지판이 나타났다. ‘암스테르담바 가는 길’ 뻘뻘 흘리는 땀을 쉴새 없이 닦아가며 지옥 같은 계단을 가까스로 올라가니 하늘 한가운데 탁 트인 풍경이 펼쳐진 바가 있었다. 천공에 바가 있다면 이런 모습일 것이다.
<2017년, 태국, 코팡안>
가장 먼저 큰 한 덩어리의 구름에 압도되었다. 이렇게까지 큰 구름을 살면서 본적이 없다. 거대하고 웅장한 구름 뒤로 점점 붉은 빛으로 젖어 드는 모습은 이 세상의 모습이 아닌 것만 같다. 석양에 정신이 팔려 하늘을 놓쳐서도 안 된다. 하늘이 곧 금세라도 열릴 것 같지 않은가! 심장을 자극하는 트랜스 음악과 어디선가 풍겨오는 하쉬쉬 냄새, 롱티 한잔. 복합적인 취기에 몽롱해지는 정신을 풀어지게 둔 뒤 가만히 일몰을 바라보았다.
지는 해는 사라진 것, 사라질 것들, 더 이상 붙잡을 수 없는 것들을 떠올리게 한다.
이제는 힘들어진 조금 더 높은 온도의 웃음이라든지, 생각하면 가슴이 뭉글뭉글해지는 이름이라든지, 반짝임이 사라진 과거의 기억이라든지. 그러다 보면 가슴이 아릿아릿해지며 감당할 수 없게 슬퍼진다. 혼자 여행을 하니 필연적으로 장착되는 이 빌어먹을 감성에서 도저히 달아날 수가 없다. 그래서 지난 태국 여행에서는 지는 해를 보며 감정의 밑바닥까지 치닫곤 했다.
아니, 단순히 혼자여서 때문이 아니었다. 연이어 상처받는 일로 극도로 무너져 있어서 그랬다. 석양을 좇으며 내가 다시는 떠오르지 않을 석양이고 싶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글을 쓰는 것도 싫었고, 쓰면 쓸수록 내 글이 미웠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살면서 느껴본 적 없는 무기력한 나날이 이어졌다. 무언가 애써 하고 싶지 않았고, 애를 쓸 에너지가 전혀 없었다. 그저 가라앉는 나를 가만히 지켜보며 이따금 숨을 쉬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그때 늘 나를 격려하던 건 너였다. 움직이게 해준 것도 너였다. 글을 다시 열심히 써야지 마음먹게 해준 것도 너였다. 나는 이제 숨도 아주 잘 쉬고, 밥도 잘 먹고, 지는 해를 보며 그렇게까지 많이 아프진 않다. 아직 내 글이 예쁘게 느껴지지는 않지만, 많이 쓰는 게 중요하니까. 네가 소개해준 스팀잇에서, 스팀문학전집에서 열심히 많이 글을 써보려 한다.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의외로 생의 초반에 나타났다. 어느 시점이 되니 어린 시절에는 비교적 쉽게 진입할 수 있었던 관계의 첫 장조차도 제대로 넘기지 못했다.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이 생의 한 시점에서 마음의 빗장을 닫아걸었다.
최은영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내 생의 초반에 만난 가장 중요한 사람 @roundyround 에게 늘 고맙다.
그리고 이곳에서 새로운 관계의 첫 장도 열 수 있다면, 그건 그거대로 의미가 클 것 같다.
스팀잇. 이제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