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에게 철학 교육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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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변명> 플라톤, BC399 이후





    히틀러는 매우 뛰어난 연설가였다. 성적이 좋지 못해 실업계중등학교의 졸업장을 받지 못했고, 두 차례 응시한 빈의 미술학교2차대전의 주범에도 모두 낙방한 사회부적응자였던 히틀러가 전국민의 지지를 받는 독재자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이다. 미리 써 놓은 원고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정치가들의 지엽적인 상호비방과 흑색선전, 막말, 우기기 따위나 들어온 우리로써는 뛰어난 연설이 대체 무엇인지 선뜻 떠올리기 쉽지 않지만, 그의 연설을 듣고 벅찬 감동을 주체 못해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하니 어느 정도로 뛰어났는지는 대략 짐작할 수 있겠다. (잡스와 코난, 윈프리의 연설 정도면 될까)

    히틀러는 주제별로 기본적인 문제점을 정리해 가려운 부분을 긁어줬을 뿐 아니라 대중이 지닌 고귀한 감정에도 호소했다. 청중들은 그의 연설을 듣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꿈틀거리는 무언가를 느끼곤 했다. 독일 국민들은 호소력 넘치는 그의 연설에 열광한 나머지 그의 권력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말았다. 히틀러가 그것을 단지 말로만 이루어냈다곤 할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그의 언변이, 필요한 것을 얻어낼 수 있는 무기였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의 말은 그저 그런 일상의 평범한 말이 아닌, 논리적이거나 감동적이거나 혹은 양쪽 모두를 갖추어 듣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즉 호소력을 가진 말이었다.

    그것은 예부터 일종의 기술로 다루어졌다.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들은 이런 논술 기법을 익히고 가르치는데 많은 공을 들였다. 히틀러 역시 보수적인 국방사상을 일반사병에게 가르칠 교육자 양성 강습회에서 토론과 연설 훈련을 받았다. 이때 상관에게 탁월한 연설재능을 인정 받아 정치·경제·역사 등 다방면의 강의를 들음으로써 지식을 넓힐 수 있었다. 히틀러는 그야말로 소피스트 교육의 수석 수료자였던 것이다.

    사실 소피스트들이 가르친 논술은 특정한 목적, 이를테면 법정에서 자신을 효과적으로 변호하고 소송에서 이기기 위한 수단이자 도구였다. 여기에 무슨 문제가 있을까? 논술을 ‘자율적 판단의 주체가 주어진 텍스트에 관하여 자신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반영하는 견해를 논리적으로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일’로 정의할 때 이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가 된다.

    독일 국민들은 히틀러가 자결할 때까지 그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매우 가혹한 점령 정책을 펴서 반 나치 운동이 전유럽에 걸쳐 전개될 때도 독일 내에서 히틀러에 대한 비난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독일의 주요 지배계급은 전쟁 말기까지 히틀러의 전쟁에 적극 협력했다. 히틀러는 그의 뛰어난 논술력을 그릇된 세계관과 가치관을 전파하는데 이용했고 독일 국민들은 그런 그의 논술을 아무런 비판없이 받아들였다. 한마디로 설득력 있는 개소리를 찰떡같이 믿은 것이다. 이 모두는 철학, 즉 비판적 사고의 부재에서 비롯된 일이다. 거듭된 패전과 그로 인해 실추된 패권을 만회하기 위해 극단적인 무언가를 말하고 받아들일 자세가 무의식 속에 만들어졌다 하더라도 그들이 비판적 사고를 유지했다면 자기 자신을 광기에 파는 일은 없었으리라.

    히틀러에게는 사색의 시간이 충분히 주어졌었다. 1923년 11월 11일 '비어 홀 폭동’의 주동자로 체포된 히틀러는 9개월의 수감 동안 자유롭게 지냈다. 방문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동지들과 식사도 했으며, 독서도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그런 그가 옥중에 한 일은 자서전 겸 나치 사상의 해설서인 나의 투쟁을 쓴 것이다. 이 책은 1943년까지 984만 부가 판매되었다. 폭력적인 세계관과 가치관을 담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읽히고 받아들여질 때 그 결과는 얼마나 끔찍한가. 철학의 부재는 한 인간을 폭력주의에 물든 극단적인 민족주의자로 만들었고, 한 민족을 그릇된 신념을 따르는 광신도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최소 4,000만 명의 사망자를 낸 세계대전을 만들어냈다. 철학 없는 삶, 철학이 없는 논술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만들어내는지 역사는 증명한다.

    이런 문제는 지금도 여전하다. 당장 우리나라의 논술 교육은 철학이 아닌 소피스트의 방식에 더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이런 교육을 받고 세상에 나온 이들은 거침없이 자신의 견해를 쏟아내고 상대방의 오류를 집어내서 공격한다. 자신들이 꽤 우수한 두뇌를 가지고 있고, 얼마든지 논리적으로 상대를 압도할 수 있다고 자부한다. 이런 이들은 주변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최근에 꽤 자주 보인 건 기분 탓일까

    자신의 견해를 말하기 이전에 세계관과 가치관에 대한 깊은 성찰이 선행돼야 한다. 철학이 지금껏 다루어온 일이다. (점을 보거나 뜬구름 잡는 소리 하는 학문이 아니다...) 철학은 남들에게 가르치려고만 드는 학문이 아니다. 사람들에게 자신을 먼저 돌아보라고 말하는 것처럼 철학 또한 자기 자신을 비판적으로 검토했다. ‘만학의 여왕’으로 정점에 오른 시절이 있었는가 하면 철학자들 자신의 손에 의해 버려지다시피 한 시절도 있었다. 철학의 이런 비판적 태도와 고뇌는 결코 사람들을 피곤하고 무거운 삶으로 이끌기 위한 것이 아니다. 소크라테스가 말한 음미되는 삶을 위해, 우리를 내적으로 보다 가치 있게 만들기 위한 것이다.

    누군가 이렇게 반문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철학자들은 늘 합리적이고 객관적이며 공명정대하게 사느냐고. 물론 그렇지 않다. 하지만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거나 적어도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것은, 아무런 생각없이 그저 자기 꼴리는 대로 사는 것보단 나은 결과를 만들 것이다.

    이런 철학적 고찰은 아이러니하게도 소피스트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생각이 머릿속에서 중구난방으로 존재한다면 그것을 밖으로 꺼내는 일은 매우 힘들다. 꺼낸다 하더라도 자칫하면 상대에게 폭력이 될 수 있다. 내 견해가 반영된 말을 할 때 설득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상대는 세계관·가치관 충돌에서 오는 불쾌감이나 충격을 느낄 수 있다. 설령 도저히 공통분모를 찾을 수 없는 경우라 할지라도 상대가 받을 불쾌감과 충격을 최소한으로 줄이려고 노력해야 한다. 따라서 자신의 생각을 성찰한 후 그것을 가다듬고 정리해서 밖으로 꺼내는 일련의 행위에는 세련된 기술이 필요한 게 사실이다.

    다시 히틀러로 돌아가 보자. 그의 연설은 독일의 모든 권력을 장악할 수 있을 정도였지만 오늘날에는 읽히지 않는다. 반면 광장을 거지처럼 누비고 다녔던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지금까지 읽히고 있다. 모든 권력을 거머쥐게 한 연설과 재판장에서 자기 변호에 실패해 결국 죽음을 맞이한 변명. 두 말의 운명이 엇갈린 지점에 무엇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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