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teem 신무신론의 선두,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 비판 / gopax 이용기

[이기적 유전자].1976.의 저자 도킨스는 창조주의와 지적 설계론에 대한 가장 확고하고 단호한 비판가 중 한 사람입니다. 신 무신론의 선두주자죠. 당연히 기독교와 천주교의 비판에 시달립니다.

  • 신앙인들은 일단 불쾌할 수 있지만, 그의 책들은 상당히 논리적이고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창조론과, 종교 자체를 비판하는데 많은 지면을 할애합니다. 종교도 역사적으로 논리적으로 비판받을게 많죠....역사를 안다면 인정안 할 수

하지만 생명의 기원에 대한 주장을 보면
진화생물학도 너무 허술한 점이 많은데도 자신만이 논리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자만에 빠져있는것같아요.

  • 미리니름 10%정도 있어요

1. 일단 도킨스의 논리 탐구

이기적 유전자는 무언가 완벽한 존재가 작은 존재를 만들 수 밖에 없다는 상식을 뒤집는다.

너무 복잡하고 이해 불가= 신의 창조를 증명한다는 논리는
너무 복잡하고 이애 불가= 난 무지하다. 보다, 전혀 논리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생명 어떻게 여기에 있게 되었는가?]는 온갖 생물들의 복잡하고 장엄한 구조를 보여주며 환원불가능한 복잡성을 신의 창조 근거로 든다. 하지만 설계는 우연의 대안일 뿐이다. 설계도 출발부터 실패한 논리다.

답은 자연선택이 누적적인 과정이며, 그 과정이 비 개연성이라는 문제를 작은 조각들로 나눈다는 사실이다. 불가능한 산을 바라보며 창조론자는 단번에 뛰어오르는 일을 생각할 때 자연선택은 천천이 완만한 능선을 오른다.189
창조론은 항상 ‘대박 아니면 깡통’오류를 저지른다. 눈은 보든지 못 보든지 둘 중 하나고, 날개는 날든지 못 날든지 둘 중 하나라는 것이다. 중간 단계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틀렸다. [종의 기원]은 불완전한 날개, 반쪽짜리 눈, 반쪽짜리 날개를 찾아내어 눈이 점진적 진화 과정을 통해 발전했음을 보여준다. 편형동물은 우리의 반쪽짜리보다 못한 눈을 갖고 있다. 앵무조개는 그 중간에 해당하는 눈을 가지고 있다. 편형동물의 눈에는 빛과 그늘만을. 앵무조개의 눈에는 상이 맺힌다.
창조론자들은 현재의 지식이나 이해에 나 있는 틈새를 열심히 찾아다닌다. ...
종교가 진정으로 나쁜 효과 중 하나는 “몰이해에 만족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가르친다는 점이다.
...개구리 앞다리 관절이 너무 복잡해, 지질의 연대는 설명 불가능 해, 신경세포는 결코 이해 불가야. 이런 것들을 종교는 즐겁에 받아들이며 창조론이라는 대안을 제시한다.
무지에 ‘신’의 꼬리표를 다는 것은 발전에 도움이 안된다. 그것은 설명의 부재. 그냥 “난 몰라”다.

여기서 도킨스는 [생존기계]라는 개념을 창조해서 논란을 일으켰다.

생명의 기원은 ‘자기복제자’이며. 원시수프 속에 자기복제자의 수가 점점 많아지면서 구성 요소 분자는 점점 더 소진되어 결국 희소하고 귀중한 자원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자원을 차지하기 위하여 자기 복제의 여러 가지 변종들 내지는 계통들이 경쟁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자기 복제자는 단순히 존재하는 것만이 아니라 계속 존재하기 위해 자신을 담을 그릇, 즉, 운반자까지 만들기 시작했다. 살아남은 자기 복제자들이 자기가 들어앉아 생명을 유지할 수 있도록 스스로 축조해 낸 것이 생존기계인 것이다.
▶ 회충이 자기 생존기계로 인간을 축조해 낸 것이다. 논리성 대단해요ㅋㅋ

그는 20년 전에 펴낸 [눈먼시계공]에서는 생명체의 완벽해 보이는 복잡성이 신에 의해 설계된 것이라는 가설을 생물과학적 진화 현상과 사례, 이론을 동원하여 설계는 환각일 뿐임을 증명한다. 도킨스에 따르면 자연선택의 결과로 태어난 오늘날의 생명체들을 보면 마치 숙련된 시계공이 설계하고 수리한 결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눈먼 시계공이 나름대로 고쳐보려 애쓰는 과정에서 번번이 실패를 거듭하다 정말 가끔 요행으로 수리해 놓은 것 같은 현상이 많다는 것이다. 자코브(Francois Jacob)는
이 같은 자연선택의 모습을 ‘진화적 땜질(evolutionary tinkering)’이라고 표현했다. 그렇다면 자연선택이 이처럼 눈이 먼 시계공 처럼 행동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연선택이 생명체를 결코 완벽하게 만들 수 없는 까닭은 무엇인가? 유전자들이 모두 실제로는 대부분 제 멋대로 각자 생존하기 때문에 시계공이 그들과 함께 일관성 있는 작업을 도모하기란 거의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우연히 신화하는 것이다.

도킨스는 다윈 진화론을 토대로 철저하게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종합한다. 유전자에서 자연선택으로, 이번에는 그 대상이 종교다. 그리고 도구는 논리전개이다. [만들어진 신]에서 도킨스는 과학적 사실이나 이론 보다는 러셀,팔스칼, 흄, 아퀴나스, 제퍼슨, 부시 등 과학자,철학자, 신학자, 정치가들의 말과 논리를 이용한다. 종교의 모순된 논리와 그 지배력으로 만들어낸 인류역사상 최대의 비참한 사건들과 거대한 똥들을 고발한다. 그의 대안은 종교라는 부르카를 벗어던지고 아이들이 자유롭고 논리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다. 즉 무신론이다.

mug_obj_144576184710791781.jpg|ISBN 9788934926184

2. 내용 엿보기^^ 성경이 신의 기록일수 있나?

도킨스는 이 책의 많은 부분을 종교를 특히 기독교의 비 논리성을 공격하는 데 사용한다. 7장. '선한' 책과 변화하는 시대 정신에서는 성경자체의 ‘정신’을 문제 삼는다.

즉 성경이 시대를 뛰어넘는 절대 신에 의한 경전이라기보다는 그 옛날 잡다한 부족들의 신화들을 모아놓은 것이라는 증거를 찾는다.

그는 오히려 신이나 종교가 없어야 우리가 더 선하게 살 수 있다는 주장을 한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도덕적 시대정신은 변하고 있는데, 이러한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는종교적 교리와 경전은 이 시대의 도덕관념으로 보았을 때 더 이상 선한 책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신이 기록한 게 아니라 시대를 초월하지 못한 한 인간의 기록이라는 뜻

성경의 상당 부분은 그저 기이할 뿐이다. 수 많은 익명의 저자, 편집자, 필사자 등이 9세기에 걸쳐 지리멸렬한 문서들을 혼란스럽게 엮고 수정하고 번역하고 왜곡하고 개정한 선집이다. 성경을 곧이곧대로 도덕의 근간으로 삼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그 책을 읽지 않았거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사사기> 11장에 등장하는 입다는 신과 거래를 했다. 암몬군을 이기게 해주면 집으로 돌아 갈 때에 누가 맨 처음 문을 열고 마중을 나오든 그를 제물로 삼겠다는 약속을 한 것이다. 다는 정말 암몬군을 물리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의 외동 딸이 춤을 추면서 그를 맞이하러 나왔고 그는 신에게 약속을 지킨다. 입다는 딸을 불태웠다. 신은 이삭 때는 장난이었고 이번에는 장난이 아니었다. 이런 원시적 인신공양이 만연한 것이 성경이다.

<민수기>에는 신이 모세를 시켜 미디안 인들을 공격하도록 한 이야기가 나온다. 모세의 군대는 순식간에 모든 남자들을 살해했지만 여자와 아이들은 죽이지 않았다. 분개한 모세는 남자들과 처녀가 아닌 여자들을 모두 죽이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남자를 알지 못한 여자 아이들은 너희를 위해 살려 두어라”. 십계명을 가져왔다는 모세는 현대의 도덕주의자를 위한 역할 모델이 아니다.

야훼는 매우 폭력적이고 잔인하며 여자와 아이를 인간으로 존중하지 않고 사람들을 피로서 응징하며 절대복종하라고 겁준다. 작은 부족신화의 특징이다.
바빌로니아 우트나피시팀 신화에서 유래한 노아홍수의 도덕은 끔찍하다. 신은 자신의 창조물인 인간을 탐탁치 않게 여겼으므로 (한가족만 빼고)아이들까지 모조리 익사시키고 덤으로 (아마도 죄 없었을) 동물들까지 익사시켰다.

시내산 아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었을 때 신은 모세를 내세워 레위인들에게 칼을 들고 되는대로 아무나 동족을 죽이라고 명한다. 이날 살해된 자는 3000에 달했다. 남은 사람들에게도 전염병을 보내겠다고 말한다.

소돔과 고모라 롯의 이야기는 <사사기> 19장에서 섬뜩하게 반복된다. 한 사제가 첩과 함께 기브아로 여행하다가 한 노인의 집에서 후한 접대를 받으며 묵었다. 그 때 남자들이 몰려 와서 노인에게 남자 손님을 내어 놓으라고 요구했다. 알아보겠다, 즉 비역질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노인은 롯과 똑 같은 말을 했다. 여기 처녀인 내 딸과 그의 첩이 있소. 그들을 내어 줄 테니 욕보이든 마음대로 하시오. 결국 사제는 그의 첩을 내어주었고, 폭도들은 밤새도록 그녀를 집단 강간하였다. 동이 틀 무렵 그녀는 남편이 머무는 집 앞에 와서 쓰러졌고 아침에 이를 발견한 사제는 “일어나라. 가자”고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죽어 있었다. 사제는 칼을 들어 첩을 뼈째로 열두 조각으로 잘라서 이스라엘의 열두지파로 보냈다.

-이는 이 경전의 출처가 잡다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아브라함의 이야기에서는 아들을 희생제물로 드린다 (이슬람 경전에도 같은 이야기가 나오는데 주인공은 아브라함의 다른 아들인 이스마엘이다). 아브라함은 제단을 만들고 장작을 쌓은 뒤 칼을 손에 쥐었을 때에 극적으로 천사가 개입하여 그의 믿음을 시험했음을 알린다. 하지만 현대의 도덕주의자는 그런 심리적 외상을 아이가 어떻게 극복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것은 아동학대이며 권력에 의한 핍박이다.

여호수아는 남녀노소, 소와 양, 나귀 등 도시의 모든 것을 칼로 철저히 몰살시킬 때까지 쉬지 않았다<여호수아서 6장 21절>

야훼의 스케일은 결코 창조신이 아니다. 도킨스 책에는 누락되었지만 성경에는 그런 이야기가 매우 많다. 우주를 창조한 신이 야곱의 후손인 한 친척 족속과 “대대로 싸우리라”고 맹세한다 설교자는 아말렉족을 ‘육체’라고 해석한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시기를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 곧 애굽에서 나올 때에 길에서 대적한 일로 내가 그들을 벌하노니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 (사무엘상 15장) 이 잔인한 명령을 철저히 지키지 못한 사울왕은 폐위된다.

여호수아가 예리코를 파괴한 이야기를 비롯하여 약속의 땅을 침략하는 과정을 담은 성경의 이야기는 히틀러의 폴란드 침략, 후세인의 쿠르드 족과 습지 아랍인의 대량학살과 도덕적으로 구분할 수 없다. 성경은 아이들에게 도덕을 함양하라고 권해 줄만한 책은 아니다.

종교는 잔인하다. 착한 사람에게 잔인한 행동을 하게하는 것이 종교다. 부모를 비방하는 것과, 수간, 안식일에 일하는 것은 사형이다. <레위기20장> 안식일에 한 남자가 장작을 모으다 잡혔을 때 신은 모세에게 그를 처형하라고 말했다. 그들은 그를 돌로 쳐 죽였다. <민수기15> 우리가 십계명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다른 신의 숭배와 우상 제작이 가장 큰 죄가 된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우상숭배는 원칙적으로 참수형에 처하도록 되어 있다.

우리가 성경에서 도덕을 이끌어냈다면 우리는 안식일을 엄격하게 지킬 것이고 지키지 않는 사람은 누구라도 처형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말을 잘 듣지 않는 아이들을 처형할 것이다. 신랑이 신부에게 만족하지 못했다고 선언한다면 자신이 처녀임을 증명할 수 없는 신부를 돌로 쳐 죽일 것이다. 376

3. 도킨스, 진화생물학의 초라한 억지

도킨스는 과학자의 시선으로 신의 존재에 대한 문제를 하나의 가설이라고 단언한다.

그리고 상상을 초월하는 미립세계와 천체세계에 존재하는 엄격한 규칙성에 대한 의문에 대하여 세 가지 답을 논리적으로 비교한다.

우연, 디자이너 즉 신, 세포의 자기복제 즉 진화. 그 셋 중 증거를 제시할 수 있는 유일한 가설은 진화론이하는 것이다. 때문에 도킨스는 확고하게 무신론, 즉 진화론의 손을 들어준다.

도킨스의 논리는 언듯 논리적으로는 별 문제가 없다. 하지만 유전자의 자기복제 증거와 최종 인간 종 사이까지의 틈은 너무나 넓어 둘 사이의 상관관계를 추정하기 어렵다. 즉, 미생물의 자기 복제현상은 아인슈타인이 경외감을 느낀 일몰장면과 별반 차이가 없는 자연현상일수도 있다.

즉 ‘우연’에 크게 의지하는 것은 전적으로 진화생물학이다.

즉 ‘미생물의 자기복제’와 생물의 진화사이의 개연성은 아직 전무 한데도 미생물의 독특한 변화증거 하나로 모든 주장의 논리성을 인증받으려 한다.

이목구비는 커녕 생물이지 조차 확인이 어려운 미생물의 구군분투 ‘현상’이 개구리가 포유류로, 나아가 인간이 된 증거라고 보는 것은 ‘신앙’에 가깝다.

창조론의 결론은 ‘도저히 알 수 없고, 앞으로도 결코 알아낼 수 없을 것이다.’이고
진화론의 결론은 ‘미생물이 스스로 복제했으니 모든 생물이 그 복제능력의 연장일 것이다’

도킨스가 신앙의 맹점은 잘 지적했지만 진화론의 맹점에는 눈을 감은 듯하다. 생물진화론이 그의 주장대로 논리적 설득력을 가지려면 적어도 다음 세 가지 중 하나에 대한 답을 더 찾아야 한다.

첫째, 종과 종 사이를 건너가는 진화의 증거이다.

반쪽짜리 날개와 잘 못 보는 눈을 자연에서 찾아낸 논리는 훌륭하지만, 그 날개와 눈이 어차피 다른 종의 것이므로 상관관계가 있는 진화과정이라는 믿음은 일종의 상상이고 또 다른 신앙일 뿐이다. 진화생물학의 강력한 증거인 땜질세포는 말 그대로 자연의 돌연변이과정의 하나로 치부해버리면 그만이다.

둘째, 원시스프에서 최초의 생물을 발생시키는 실험이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하지만 여전히 아무런 진전이 없다.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시간이라는 투입불가능 한 실험조건이 있기는 하지만, 생명의 경이로움에 대한 설명의 권리를 신앙이나 우연에게서 뺏어오려면 증거가 있어야 마땅하다. 결과물을 만들기 전까지는 진화생물학도 단지 학문적 희망일 뿐이다.

마지막은 절대지성의 부재에 대한 논리이다.

신앙인도 하늘에 계신 수염 난 할아버지의 존재를 믿는 것은 아니다. 신앙인의 인격신은 어떤 알 수 없는 초월적 절대지성과 같은 것이다. 당연히 물리적인 존재가 아닌 다른 차원의 존재인 것이다. 이 초월적 존재를 “세상을 만든 신을 만든 존재는 또 어디에 있는가?”라는 쉬운 순환논리로 반박하는 것은 완전하지 못하다. 신앙인들의 논리는 무에서 유가 창조되는 논리 밖에 존재하는, 즉 온 우주적 현상을 내부에 품은 존재를 상정한 것이다. 창조신은 당연히 만들어진 존재가 아닌 모든 것의 원인이므로 본래부터 있어온 그 무엇이다.

인간의 탐구는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그 생명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전히 무지하다.
도킨스의 논리에서 신앙을 가진 유신론자가 쉽게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은 아인슈타인의 이원론적 신 까지다. 자연의 모든 사물들이 가지고 있는 엄청난 에너지와 규칙성은 알아갈수록 놀라움과 경이감을 자아낸다. 우리는 그 원리와 발생에 대하여 알지 못한다. 아인슈타인의 신은 이러한 불가지론이라 할 수 있다. 많은 유신론자들이 말하는 신앙도 그와 비슷할 것이다. 예수가 신일 수 없다는 논리는 신앙과 종교의 모순을 찾기보다는 1세기 존재했던 예수의 흔적과 종교의 변천과정을 세세하게 밝히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아인슈타인처럼 본 것 까지만 믿고, 칼 세이건처럼 증거가 나올 때까지 판단을 유보하는 것이 지혜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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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축]제가 드디어 처음으로 스팀을 사서 파업하는 법을 터득했음을 ㅋㅋ

인터넷뱅킹도 못하는 저이기에 실로 지난 한과정이었긴 합니다.
친구계좌빌려 코인이란걸 첨 구입해서 에베레스트 정상에 불시착하면서 저의
스팀잇 생활이 시작된지 어언 6개월
업비트 가입하려다 통장개설에서 좌절
고팍스 계좌개설, 통장개설, 인증, KRW송금,steem구매, 스팀계좌로 송금. 파업
하나 하나 한번에 통과한 적이 없다보니.. 이제야 ㅎㅎㅎㅎㅎ3개월 소요
아무튼 ...고팍스가 더 쉬워요!!!!!!
제가 실수를 통해 얻은 팁: 자동화기기로 송금하면 다시 증명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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