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직업 중 하나는 해외 작은 한인 커뮤니티의 도서관장이랍니다.
우리 도서관엔 책이 천 권정도 있습니다. 99% 기증 받은 도서죠.
그래서 제가 주도해서 시작한 것이긴 했지만, 그냥저냥 관리자 역할을 하고 있으니.
사실은 관장이라기엔 말이 너무 거창하고, ‘사서’정도가 좋겠습니다.
그러니 사실 책을 많이 보진 않습니다. 사실 드라마를 더 많이 보죠.^^
역사에 관심있으신 분들, 어떻게 공부하십니까?
정치 따위는 관심을 갖는 것 자체가 진흙탕 싸움판에 끼어드는 것이고,
점잖은 인격을 가진 사람이 관심둘 만 한 것이 아니며,
정치하는 사람들은 다 나쁜 사람들이고, 좋은 사람은 그런 곳에 가지 않는다.
특히 근대의 역사도 현대정치의 짧은 과거로, 그렇게 마음쓸 수준의 것이 아니란 관념의 틀을 만들며 살았죠.
그렇게 배웠으니까요. 꼭 그렇게 누가 딱 잘라 가르친 건 아니지만,
그런 생각을 돌이켜보고 있노라면 내 생각이 왜 그렇게 되어 있는지 그 부분들이 하나씩 떠오릅니다.
“내가 어릴 때 누군가가 내게 하던 그 이야기는 바로 이 이야기구나 그리고 그 누군가는 내가 이렇게 생각하도록 만들었구나”
말하자면 그게 ‘한 가지 방식으로만 생각하기’,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세뇌인셈이죠.
하지만, 말하는 사람도, 듣는 제 자신도 그게 그것인 줄 몰랐던 겁니다.
그냥 이건 나쁜거야, 이건 좋은거야 라고 말하면 그대로 믿으면 되었던거죠.
‘왜’ 이건 나쁜건가요? 이건 좋은건가요? 라고 물어본다는 건
반항하기 좋아하고, 말안듣는 사람이 되는 걸 뜻했죠.
‘순종’이란 ‘겸손’과 ‘부드러움’, 그리고 나서지 않는 점잖음을 뜻하는
인격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역사에는 관심이 많지만 정치엔 관심이 없다”라고 말하는
제 자신의 대견함을 항상 스스로 멋지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그게 매우 어리석은 주장이었다는 것을 안 지는 이제 정말 얼마되지 않았습니다.
이제 역사란 좀 다른 각도에서 보게된 어쩌면 새로운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현실과 깊이 맞물려있는, 말이죠. 그 때 만난 책 중 하나입니다.
⟪조선상고사 朝鮮上古史⟫ 김종성 옮김, 역사의 아침
글쎄요. 제가 개인적으로 과문했던 걸까요. 여튼 역사에 관심이 많았고, 저자의 위인전도 읽어봤지만, 저는 그 책제목을 처음 들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신채호란, 호가 단재이며 일본에 고개숙이는게 싫어서 서서 세수를 하다 항상 옷을 다 적셨다는 이야기 정도에 지나지 않았죠.
고조선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들, 교과서에 안나오는 지명들, 한국말의 어원들.
이런 자료들을 어떻게 다 섭렵했고, 또 기억했을까 하면서 한 번 놀랐고,
나는 왜 이런 이야기들을 지나면서라도 한 번 들어보지 못했을까 하는 마음에
두 번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 원고는 감옥에서 썼기 때문에 참고문헌을 읽으면서 쓴 책이 아닙니다.
평소 읽었던 엄청난 자료들을 머릿속으로 더듬으며 기록한 글이죠.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쓰여진 당시로 돌아가면 대체불가능한 기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기억에만 의존하다보니 연대라든지 이름이 틀리는 부분들이 간간히 있다고 하지만,
그런 사소한 오류는 아무 의미도 없는, 미존감의 “한국사통사”입니다.
1931년부터 신문에 연재를 했습니다.수정본을 만들다가 결국 단재는 감옥에서 생애를 마감합니다.
사실상 미완성 유고인 셈입니다. “아와 비아의 투쟁”이란 명제로 유명하죠.
당시의 글을 그대로 읽기에 매우 어렵습니다. 단재(1880-1936)의 연대를 생각하면
몰연대로 보면 100년 남짓이지만 우리의 글과 말은 그 짧은 시간동안 상당히 바뀌었으니까요.
그래서 번역이 필요합니다.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하면 4-5개의 번역본들이 더 있는데요
비교해서 보진 않았지만, 이 판본을 추천합니다.
요즘 암살이란 영화 덕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약산 김원봉과 같은 사람이 익숙해 질 무렵,
아시겠지만 그가 이끌었던 [의열단의 선언문]으로 쓰여진 [조선혁명선언 朝鮮革命宣言]도 단재의 작품이죠.
"강도 일본이 우리의 국호를 없이 하며, 우리의 정권을 빼앗으며, 우리 생존적 필요조건을 다 박탈하였다. 경제의 생명인 산림·천택(川澤)·철도·광산·어장 내지 소공업 원료까지 다 빼앗아 일체의 생산기능을 칼로 베이며 도끼로 끊고, ... 혈액은 있는대로 다 빨아가고, … 대다수 민중 곧 일반 농민들은 피땀을 흘리어 토지를 갈아, 그 일년 내 소득으로 일신(一身)과 처자의 호구 거리도 남기지 못하고, 우리를 잡아 먹으려는 일본 강도에게 갖다 바치어 그 살을 찌워주는 영원한 우마(牛馬)가 될 뿐이오, 끝내 우마의 생활도 못하게 ... 우리 민족은 발 디딜 땅이 없어 산으로 물로, 서간도로 북간도로, 시베리아의 황야로 몰리어 가 배고픈 귀신이 아니면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는 귀신이 될 뿐이며…"
일제강점기와는 전혀 상관없이 살았지만, 글만 읽어도 가슴이 울컥하며,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고통이 느껴집니다.
‘친일파’ 그냥 당시에 생존하기 위해서 일본의 편에 설 수밖에 없었다고 하기에,
이해는 되지만 용서가 안된다는 말이 되려 이해가 가는것이죠.
이 책이 더 유의미한 이유는 최근 한사군이나, 독도, 간도, 임나일본부, 고대사 문제 등 다양한 역사적 주제가
이슈가 되고 있고, 특히 단절되었던 단재나 임정 역사가들의 책들에 대한 이야기가 우리들에게 너무 안알려져 있으며
또한 ⟪화랑세기⟫, ⟪한(환)단고기⟫등의 당연히 사료로서 검토되어야 하는 자료들이
마치 종교적인 위서로 읽으면 안되는 것으로 취급되는, 이른바 '환빠'란 이름으로 불리는 문제들과도 연관이 있죠.
마치 잘나가던 기득권들이 잘나가던 공화국 시절 금서처럼 내몰리는 현상등 말이죠.
'정설'이란 말은 역사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직 '다수설'과 '소수설'이 있을 뿐이죠.
제 감상을 시작하면서 꺼낸 내용과는 달리 근대사는 없고,
그야말로 삼국시대 이전의 상고사를 다룬 내용입니다.
하지만 분명 고대사는 그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세력들이 살았던 현대사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습니다.
간접적으로 영향관계에 있는 정도가 아닙니다.
당시의 역사에 관해서는 사전과도 같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두서없이 감상을 적다보니 첫 도서리뷰부터 너무 길어졌군요.
주절주절 늘어놓은 글 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수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