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잇 악몽 & 남이 차려준 밥상

9시에 느즈막히 일어났다.
밤 9시에.

2시쯤에 잤나보다.
한국 시간으로는 새벽 2시, 여기선 오후 2시.

스팀잇을 하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온종일 글을 써놓고 한국 꼭두새벽에 올리니 아무도 읽지를 않아
한국에서 읽기 좋은 시간대에 글을 올린다고.

이 곳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여행기 쓴다고 사진을 찾고 올리는 데만 2~3시간이 든다.
내가 컴맹인 탓도 있고
스팀잇에 적응하지 못한 탓도 있다.

물론 내가 좋아 하는 거고
이번 주는 지원을 받으니 기운도 나지만
계속 이렇게 지극정성을 들여야할 지..
부담없이 쓰기엔 블록체인이란 것이 부담스럽고..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기 전에
정신을 차려야지..

꿈에 못본 지 10년도 넘은 대학동기가 나왔다.
그녀가 스팀잇에 내 신상정보를 다 깠다.
내 사진 및 과거, 사생활, 가족정보와 문자기록까지.

발을 동동 굴리며 수선을 피우자
지우면 되는 걸 가지고 왜 그러냐고 한다.
아무도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깨어보니 밤 9시다.
또 무얼 해먹나 밥할 힘도 없다.
요즘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서 글 쓴다고
잠도 못자고 굶었더니 악순환이다.

룸메이트는 요리가 젬병이라 내가 늘 해먹였다.
물론 가끔 밥하기가 너무 싫으면 외식을 한다.
하지만 이곳 식당 수준이 내가 한 만 못하고 값은 비싸니
늘 손해보는 느낌이다.

내 행색이 말이 아니었는지
모닝(?)커피를 마시는 동안
룸메이트가 묵묵히 분주하게 무엇인가 만들고 있다.

토마토, 삶은 달걀, 아보카도를 넣고
그 위에 올리브유와 소금을 쳐 샐러드를 만들어
테이블 위에 놓아준다.

나 먹으라고?

물론 그도 공복이다.
내가 자느라 저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가 배고파서 만든 것인지도 모르는데
임금님 진수성찬이라도 받은 듯 감동이 밀려 온다.

남이 해준 집밥을 먹은 지가 오래 되었다.
혼자 살았을 때도, 가족과 살았을 때도
요리는 늘 나의 몫이었다.

투박한 샐러드 모양에 부끄러워하는 룸메이트에게
진심을 담아 고마움을 전했다.

남이 해준 밥을 먹으려면 식당엘 가야했는데
거기선 느낄 수 없는 것들이 이 접시에 담겨있다고.

정성과 사랑을 담아 요리를 하려면
나도 그런 음식을 먹어 봐야 했는데.
그 기쁨과 감동을 기억했어야 했는데.
그게 너무 오래 전 일이라서.

요리하는 것에 흥미를 잃게 된 것엔
아마 그런 이유도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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