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시티 어쩌면 라스트] 라과장이 라총수 되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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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은 요?

 
이 글의 원제는 '라과장이 라총수 되던 날'이었다. 나는 된 줄 알았다. 그러나 직관은 아직..이라고 말하며 '되던'을 '되는'으로 고치라고 했다. 왜?.. 왜일까?

 

라라님 예산은 어쩔 겁니까?

 

네???

 
예의 그 공상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라라님은 되물었다. 날 보고 어쩌라고.. 하는 듯했다. 행사 일주일 전 금요일의 상황이다.

 

아니 그러니까, 라라님은 과장이 아니잖습니까? 총수잖아요.. 총수가 예산을 책임져야죠.

 
(헐.. 얘 지금 뭐래니?) 이런 표정으로 마법사를 빤히 쳐다보다 한열님을 돌아본다. (좀 도와주지) 뭐 그런 거였겠지..

 

총수는 최종 책임자라고 말씀드렸잖아요. 행사 최종 책임자가 예산을 챙겨야죠..

 
한 달 만에 행사를 치러내야 했다. 당연히 모든 행사의 핵심은 예산 확보이다. 물론 우리도 나름의 방안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모든 행사 예산이 그러하듯, 연기되고 불확실해졌다. 그러나 그것은 어쨌거나 상황일 뿐이다. 그런 모든 상황을 챙겨야 하는 게 총수이다. 그러므로 모든 결정권 또한 총수가 갖는 거다.

 

어떻게 하실래요? 행사를 드롭할까요? 돈 없이 할 수는 없어요. 아직 지불된 예산이 없으니, 그만두려면 여기서 그만두어야 합니다.

 

아.. 그건 안돼요. 무슨 일이 있어도, 미니 스트릿은 반드시 해야 돼요..

 
웬일.. 한치의 망설임도 없다. 도망가라고 한 말일 수도 있다. 훠이훠이~ 만만치 않다고.. 세상일이 뭐 하나라도 쉬운 일이 있겠니.. 빨리 도망 가렴.. 여기서 멈추면.. 괜찮아.. 이 정도면 욕 좀 먹겠지만.. 어쨌든 빚을 만들진 않을 수 있어..

 

계속하겠다구요? 정말이에요? 진심이에요? 괜찮아요. 여기서 드롭해도 돼요.

 

안돼요! 안된다구요!!

 
뭐야.. 이 단호함은.. 진작 그럴 일이지.. 행사 일주일 앞두고 이제사 정신이 드셨나.. 순간 라라님의 눈빛이 파파박 튀었다. 그리고 표정이 비장해지기 시작했다. (그래 원래 이런 사람이었을 거야.)

 
 
총수는 획득되어져야 한다

 
마법사는 총수를 추대하겠다 했다. 그리고 총수는 최종 책임자라고 했다. 사람들은 리더에게 많은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그만큼의 권한을 확보해 주지는 않는다. 그것은 리더가 획득해내야 할 몫이지. 사람들이 알아서 챙겨주는 선물이 아니다.

 
[스팀시티]의 총수는 추대되었을 뿐, 획득되지 않았다. 총수의 역할은 여기 암호화폐 시스템 속 도시를 건설하는 일이다. 배드민턴 동호회의 회식비 걷는 일이 아니다. 총수는 책임자이다. 그러므로 결정자이다. 결정권을 행사하려면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게 뭐겠는가? 돈이다. 예산이다. 그걸 할 수 없으면 총수가 될 수 없다.

 
총수 추대의 과정에서 누군가 물었다.

 

총수라는 사람이 뭔가 특권이 있다거나 하지는 않고, 말 그대로 함께 하는 위치인 것이죠? 간단하게, 비전을 함께 제시하고, 플래닝을 함께 하고, 매니징을 함께하는 그런 사람이라고 보면 될까요?

 
함께? 풉, 뭐가 함께 인가? 돈은 누가 대는 데? 독박..이라고 쓰고 함께..라고 읽는 게, 이제까지의 관습 아닌가? 누가 예산을 마련하는가? 돈 얘기하면 고개 숙이고 딴청만 피우다, 무언가 결정권을 행사하려면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분권과 평등, 민주를 외쳐대는 허위에 신물이 났다. 그러다 빵꾸 난 예산을 들이밀면, 쏜살같이 사라지는 인간들에게 저주의 불화살을 쏘아대는 게 마법사의 역할이다.

 
위의 질문에 마법사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특권 부분을 제외하고 다른 부분은 그보다 더 주체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임의 최종자로서 권한도 그만큼.. 그러나 위임은 본인의 선택..

 

특권 부분도 생길 수 있는 부분으로 봐야 하는 거지요?

 

그럼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운용의 철학일 뿐..

 
분권은 철학일 뿐이다. 최종 책임자의 마음이다. 그저 마음일 뿐이다. 그래서 마음 뿐인 중앙집권이 싫어 블록체인으로 모여든 거 아닌가? 그런데 여기가 그런 곳인가? 기술은 진정 탈중앙화를 해결했는가? 마법사는 그런 줄 알았다. 그래 가는 줄 알았다. 그래서 기대를 갖고 블록체인/암호화폐 시스템에 진입했다. 그런데 뭐냐 이건.. 헬조선 보다 더 중앙집권적이더라.. 네드도, 증인도, 고래도.. 권한은 이빠이인데 책임은 소수점 보팅만큼도 안 지더라.. 다운보팅 버튼 하나 만들어 놓고 '니들이 알아서 해' 이러고 있더라..

 
좋다. 그렇다면 여기는 탈중앙화의 플랫폼이 아닌, 무법천지 난장판의 선사시대이니.. 제대로 중앙화 한 번 해보자. 어차피 의지도, 노력도, 보이지 않으니.. 니들이 하고 있는 개판에 제대로 된 중앙제국을 건설해 보겠다 시작한 것이 [스팀시티]이다. 최소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는 주어진 셈이니..

 
비탈릭은 탈중앙화를 코드로 해결해 보겠다고, 매우 덩치 크고 느린 이더리움을 고집스러게 해 나가고 있다. 댄은 일단 효율적이고 봐야 한다며 증인제도를 도입해서 이오스를 만들어 가고 있다.

 
얘들아.. 코드 몇 개로 해결될 세상이 아니란다. 증인제도로 푼다고.. 그게 바깥세상의 의회제, 대의제랑 뭐가 다르니.. 결국 사람이 문제 아니니? 차라리 코드로 해결해 보겠다는 비탈릭이 순수해 보인다. 이오스, BP? 그건 뭔가.. 증인들은 천사인가? 대제사장인가?

 
그래.. 그렇다면 돈 밖에 모르는 것 같은 네드.. 차라리 네가 낫다. 암호화폐.. 다 돈 벌자고 하는 일 아닌가? 그래서 스팀잇, 이곳은 돈 놓고 돈 먹기의 규칙에만 충실하면 뭐든 허용되는 곳이 되어버렸다. 그러니 여기다 역중앙화의 공화국 [스팀시티]를 건설해 볼 수 있겠다. 그렇게 시작된 거다. (그러나 나도 100% 동의하는 건 아니다. 다만 여기 시스템의 방식이 그러니 이런 식의 접근이라도 해 보자는 것일 뿐) 그러면 필요한 것은 의장이 아니다. 반장이 아니다. 책임지는 자이다. 역중앙화의 깃발을 드는 자이다. 그리고 그는 예산을 책임지는 자이다.

 
 
총수의 자격

 
세상의 어떤 시스템도 정의와 평등의 문제를 완벽히 해결할 수 없다. 절대 선이 존재한다는 환원주의적 착각에 빠진 서양 것들은, 열심히 시스템을 바꿔보려 하지만.. 동양의 선조들은 일찌감치 그것은 인간의 문제, 품성의 문제라고 판단하고 인격수양론을 내세웠다.

 
그 리더의 인격은 무엇인가? 21C의 리더는 어떤 인격적 자질을 갖추어야 하는 가? 마법사는 단 세 문장으로 설명하고 싶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는 것.

 
이것이면 된다. 그가 누구든.. 거기가 어디든.. 서로가 서로에게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면.. 세상을 이롭게 할 수 있다.

 
그래서 총수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해야 한다. 라라님.. 그러셨습니까? 그 공상에 빠진 순간순간들.. 그 마음과 그 뜻과 그 정성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왜 '예산은 요?' 하는 질문이 뜻밖이어야 합니까? 총수 맞습니까?

 

그렇다면 월요일까지 답을 가져오세요. 월요일에 다시 결정합시다.

 
마법사는 라라님에게 3일의 시한을 제시했다. 그리고 3일이 흘렀다.

 

(다시) 예산은 요?

 

예???

 

(뭐야 이거..) 그럼 행사는 드롭하는 겁니다??

 

아니요! 아니요!! 절대 안 됩니다. 미니 스트릿은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열려야 해요!!

 
설마 했나 보다. 정신이 빠짝 들었는지 모르겠다. 여기서 행사를 드롭하자는 마법사의 강력한 말에, 그녀의 눈빛에 다시 파파박 에너지가 불타오르고, 그녀의 입에서 '절대 안 됩니다. 미니 스트릿은 반드시 열려야 해요.'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사라져 가려던 우주는 일단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녀의 주먹 쥔 손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러면 다시 3일, 수요일까지 답을 찾아오세요.

 
그리고 수요일, 라라 총수님은 전체 예산의 절반쯤 되는.. 당장 지급해야 하는 예산액을 확보해 왔다.

 

어디서 났어요?

 

친구가요.. 친구가 빌려 줬어요.

 
친구? 그 친구는 누구인가? 그 친구는 뭐길래.. 수백만원의 돈을 친구에게 아무 조건 없이 빌려 준단 말인가? 라라님은 뭐길래.. 그런 친구를 두었단 말인가? 마법사는 가져보지 못한 친구를 라라님은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마법사는 총수가 될 수 없다. 그런 친구가 없기 때문이다. 라라님은 총수가 될 자격이 충분하다. 그런 친구를 두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라라님은 그동안 그 친구에게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했을 것이다. 그 친구 또한 라라님에게 그런 것이다. 그래서 수백만원의 돈을 선뜻 내어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라면.. 그런 친구를 가진 사람이라면.. [스팀시티]의 총수가 될 자격이 충분하다. 그렇게 또 다른 친구들을 만들어 가면 될 테니까.

 
그래서 [미니 스트릿]은 열렸다. 하루로 할지, 이틀로 할지 결정을 못하고, 행사 3일전까지 망설였지만.. 라라님은 이번에도 본질에 충실했다.

 

라라님? 1day? 2day?

 

이틀로 하고, 비가 너무 심하게 오면 당일 취소를 하는 걸 고려하고 있는데, 이따 꾸머 가서 좀 물어볼게요!

 

계약서 쓰고 돈도 내버려서 이제 빼박 이틀이에요. 여기 차양 같은 걸 좀 확 빼면 나름 공간이 나와서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폭우.. 가 아니길 이제 기도하는 수밖에!

 
브라보!! 행사는 이틀이어야 한다. 도중에 물러서는 일은 언제나 뒤에 큰 화를 불러오기 마련이다. 라라님은.. 마법사의 제안을 거절하기는커녕 망설인 적도 없다. 늘 선뜻이었고 흔쾌했다. 그러나 단 한 번 머뭇거렸다. 아니 거절했다. 3일의 시간을 주었던 월요일.. 마법사가 드롭하자고 하던 날이었다.

 
 
라라님의 노트북 그리고 첫 번째 거절

 

제 직관에는 100만원 정도의 액수가 떠올라요. 그런데 그건 분담이 아니라 차용이어야 한다고 직관이 말하고 있어요. 게다가 그 결정은 오늘 이 자리에서 되어야 한다구요.

 

어떻게요?

 

동전을 던져서 결정해야 된대요.

 

네???

 
나는 직관을 따라 현금 100만원을 봉투에 담아 왔다. 그것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봉투를 보자 라라님의 표정이 살짝 밝아졌다. 그러나 그냥 주지 말란다. 그것은 총수를 모독하는 행위가 될 수 있겠지. 동전을 던져 보라 했으니.. 그것으로 우주의 뜻을 물으면 된다.

 

자~ 던집니다. 휙~

 
동전이 머리만큼 떠올랐다 떨어진다. 나의 오른손에 붙들리고 다시 왼손 등에 얹혀졌다. 이것은 나의 일이 아니다. 라라님이 총수가 되는 일이다. 결정은 총수의 몫이다.

 

자, 선택하세요. 뒤집을까요? 그대로 열까요?

 

아.... 이런 선택을 나보고 하라구요... 뒤집어요!!

 
짠~ ............ 이런 제길.. 선택은 내가 한 게 아니다. 우주는 그녀에게 분담은커녕 차용도 허락하지 않았다. 표정이 금세 어두워진 라라님.. 어쩔까나.. 마법사는 직관이 알려준 두 번째 제안을 내민다.

 

라라님.. 이건 두 번째 제안입니다. 노트북을 팝시다. 라라님이 팔면 제 것도 같이 팔게요.

 

네????? 이건.. 안돼요..

 
그때였다. 라라님은 처음으로 마법사의 제안을 거절했다. 왜 안된다 했을까? 나는 지금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라라님은 자신의 노트북이 연식도 오래되고, 사양도 낮아서, 팔아봐야 얼마 받지도 못할 거라며 안된다 했다. 아니다 그건 아니다. 그런 논리라면 미니 스트릿은 왜 하는가? 스팀시티는 왜 하는가? 이건 뭐 경제논리를 갖추었는가? 총수는 또 뭔가????

 
직관은 내게 말하지 말라고 하며 다음 스텝을 가르쳐 주었었다. 라라님이 노트북을 팔겠다 하면 그것은 내가 사야 하는 것이었다. 그 100만원은 노트북을 사야 할 돈이었다. 물론 실제 노트북 수령기한은 라라님이 정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것으로 당분간 계속 작업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의 노트북은 누군가에게 팔려갔겠지. 스팀잇에서 경매를 했다면.. 누군가에게 새로운 마법의 시작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이제 나루님에게 건너간 마법사의 카메라가 대서양 횡단의 기회를 다시 맞게 된 것처럼 말이다. 그것을 시작으로 그다음의 우주는 어떤 과정을 준비하고 있었는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처음으로 라라님은 거절했다. (라라님은 아직 모르는 이야기이다.)

 
그랬다. [미니 스트릿]은 라라님의 용기로 열렸지만.. 여전히 예산은 그대로 남아있다. 노트북을 경매에 부쳤다면 누군가 예산만큼의 돈을 지불하고 샀을까? 모두들 말도 안 된다 하지만.. 총수 할 사람 손들어 했을 뿐인데 이미 총수들은 추대되어 일을 하고 있다. 이게 더 말이 안 된다. (아마 그 노트북은 마법사가 샀을지도 모를 일이다. 자신의 노트북을 경매에 내놓고 자신의 돈으로 사는 일.. 그것은 마법의 세계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우주는 언제나 우리의 마음을 시험하니까..)

 
 
누가 총수인가?

 
행사가 끝나고 많은 말들이 들려온다. 라라님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말들도 있었다. 라라님은 충격에 총수를 그만두려 했다. 그렇게 그만둘 거면 빨랑 그만두는 게 좋다. 이제 시작일 뿐이고 그런 소리는 어디를 가나 들려온다. 한열님은 논쟁.. 논쟁이라는 말에 휘말려 뒤로 물러나려고 했다. 마법사는 앞으로 나가서 책임을 지라고 뒷덜미를 붙들었다. 총수는 물러나면 안 된다. 깃발이 내려지면.. 끝난 거다.

 
행사가 끝이 났으니 정산을 해야 한다. 역시 분담해 보려고 이렇게 저렇게 방법을 마련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고팍스 스달, 스팀 입출금이 오류가 났다. 여직 안되고 있다. 직관은 말하고 있다. '니가 총수니?'

 

라라님 미안합니다. 이번에도 분담은 안된다네요.

 
이제 [미니 스트릿]의 예산은 고스란히 총수의 몫이 되었다. 이 이야기는 포스팅을 통해 라라님에게 전하는 바이다. 이것을 해내야 한다. 노트북을 팔아서라도.. 고래를 쫓아가 무릎을 꿇고서라도.. '제발 돈 좀 주세요..' 할 수 있어야 한다. 총수는 그런 자리이다. 그리고 그런 총수에게 [스팀시티]는 역중앙화의 결정권을 모두 몰아 줄 것이다.

 
책임지는 총수는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어설픈 호스트 역할을 하느라 뻘쭘하게 행사장을 배회하지 않아도 되고,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방식을 그저 사람들의 이목과 예산 때문에 억지로 하지 않아도 된다. 총수가 원하는 그것 그대로 그림을 그려가면 된다.

 

'만들어간다'는 말의 의미를 명확히 해야 할 것 같아요. 제가 이해하는 방식으로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만들어간다'는 것이 [스팀시티]의 컨셉을 정하거나, 어떤 프로젝트의 밑그림을 그리는 것이라면 그것은 저와 한열님이 하고 있는 일입니다. 밑그림을 먼저 그리고(그것이 아주 어설픈 수준이라 할지라도) 사람들에게 보여줍니다. 그리고 함께 그림을 완성해보자고 제안을 합니다. 좋아하는 사람들은 함께 하겠죠. 이 그림이 밉다고 생각하면 같이 색칠할 마음이 들지 않을 거고요.
 
말씀하신 '만들어간다'는 것이 제가 그린 밑그림에 함께 색칠하고 그림을 완성하는 것이라면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 맞습니다. 제가 그리는 밑그림이 못생겼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같이 색칠하고 싶지 않겠죠. 저는 제가 그린 밑그림이 마음에 들어서 함께 완성해보자고 붓을 든 사람들이 이런 색깔이 이쁘겠다, 여기에 이거 그리면 더 이쁘겠다 말하면 낼름 그렇게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하지만 애초에 제가 그린 밑그림이 밉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그런 말을 한다면 그걸 받아들이기 힘들 거고요. 저는 [미니 스트릿]에 와주신 모든 분들이 제가 그린 그림이 도대체 뭘 그리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매력적'으로 보여서 와주셨다고 생각해요.
 
워낙 급하게 대충 그린 그림이라 가까이서 보니 생각한 것보다 덜 예쁘네 하신 분들 많겠죠.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에 제가 그릴 그림이 여전히 궁금하고, 또 뚝딱 대충 그려서 밑그림을 보여줬는데 또 그게 예뻐 보이면 와서 같이 색칠하는 겁니다. 지금 보니 이 그림은 내 스타일 아니네, 하면 같이 못 그리는 거구요

 
 
그래 이렇게 하면 된다. 자신의 방식대로 하면 된다. 그러나 그러려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예산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권한만큼의 책임', '책임만큼의 권한'을 행사하는 총수의 역할이다.

 
인류는 오랜 세월 진보해 왔다. 그 끝에 공화정을 탄생시키고 민주주의를 확립했다. 그런데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은 권한만큼의 책임, 책임만큼의 권한.. 우리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며 슬쩍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것처럼 속여왔으나.. 실은 강력하게 '기브 앤 테이크'인 우주의 운용 방식을 철저하게 지켜오지 못해 온 탓이다.

 
우주는 에너지 보존의 법칙에 의해, 철저하게 '기브 앤 테이크'로 작동한다. 그것이 카르마이고 업(業)이다. 누구도 여기서 자유롭지 못한다. 신조차 자신이 창조한 작동 방식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못 박혀 죽어야 했다. 댓가를 치러야 했다.

 
[미니 스트릿]의 예산이 고스란히 빚으로 남았다. 그것은 라과장의 몫인가? 라총수의 몫인가? 그것을 감당하는 날.. 라라님은 드디어 추대되어진 총수의 자리를 획득할 것이고.. 자신이 원하는 밑그림을 마음대로 그려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검정치마를 입었어야 했어

 
이번 행사의 유니폼은 검정치마였다. 검정 앞치마.. 우리는 그것을 입었어야 했다. 일주일을 연기했으면 그것을 입었을까? 라라님의 단 한 번의 거절.. 노트북을 팔았다면 우리는 그 검정치마를 입을 수 있었을까? 뮤직비디오 속 그녀는 날 잡아보라며 사라져 버렸다.

 
가을날처럼 화창한 [미니 스트릿]이 끝난 일주일 뒤 토요일.. 마법사는 검정치마의 'everything'을 무한반복으로 듣다가, 우리는 아직 라라님의 'everything'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슬퍼졌다. 그녀의 친구에게 라라님은 'everything'이었을 거다. 하지만 아직 [스팀시티]는 라라님의 'everything'이 아니다. 수백만원의 빚을 지고는 오도가도 못하고 있는 [스팀시티]를.. 우리는 그냥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정신병자.. 이상한 사람들.. 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말이다.

 
라과장이 라총수 되는 날.. [스팀시티]의 방학은 끝이 난다. 그 날 우리는 자동차에서 뛰쳐 나와, 저 뮤직비디오 속 그녀의 손목을 낚아채고서는, 하늘 높이 날아 오를 것이다. 검정치마를 입고.. 주인없던 의자에 빼곡히 앉아.. 환희의 찬가를 부를 것이다.

 
You are my everything
You are my everything
My everything..
 
 
 

 
추신..


 
라라님.. 한열님.. 즐거웠습니다.
소통은 일단 여기까지입니다.
우리가 약속한 금액이 있습니다.
그것이 확보되거든..
다시 소통을 이어나갈 수 있습니다.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everything'이라면 말이죠.

 
그러나 'nothing'이라면..
그래서 그럴 수 없다면..
이번 생은 여기까지입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결과는 포스팅으로 알려 주세요.

 
그날까지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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