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snowflower)의 연구실에는 전 세계 각지에서 온 술병들이 테이블 위에 진열되어 있습니다. 대부분 어디서도 보지 못한 신기한 것들입니다. 연구실 사람들이 현지 연구에서 돌아올 때 가지고 온 로컬 술들이 많기 때문이죠. 인류학자들의 연구실이거든요.
연구실 사람 중 누군가 현지 연구를 마치고 돌아오면 어떤 술을 사왔는지 먼저 확인한답니다. 그리고는 뭐겠어요. 바로 파티죠. 전 세계에서 온 듣도 보도 못한 술들을 다같이 마셔보는 거예요. 그녀는 도마뱀이 들어있는 술도 마셔봤대요. 위스키 같은 건 너무 평범해서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나요.
가끔 연구실에서 공부 중인 그녀와 영상통화를 할 때면 연구실 사람들이 마음을 모아 만든 그 바Bar를 비추어 달라고 하곤 합니다. 구경만 해도 재미있거든요.
그녀는 티베트 망명 사회를 연구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미래가 불확실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티베트 난민들의 삶을 통해서 보는 거래요. 그녀의 연구실 사람 중에는 솔로몬 제도의 여러 부족이 어떻게 평화를 구축하는지 연구하다가 어느 부족 추장의 사위가 될 뻔한 사람도 있고요. 네팔 쿰부 세르파들의 삶과 우간다 남수단 난민들의 삶을 연구하는 사람도 있어요. 페루의 아마존에서 환경과 인간의 관계를 연구하며 맨날 벌레 먹는 사람도 있고요. 모잠비크의 젠더 문제나 중국의 짝퉁 문화를 연구하는 사람도 있어요. 일본 로봇실험실 사람들에 대해 연구하는 사람은 실험실 사람들이 한마디도 하지 않아서 연구에 어려움을 겪었대요.
그녀를 통해 인류학자들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 것이 제게는 큰 즐거움입니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일본에 살았고,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한국에서 다닌 후, 일본으로 가서 인류학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그 계기가 된 것은 대학생 때 떠났던 티베트 여행이었고요.
초록색 일기장은 말 그대로 그녀의 일기장이고 동시에 현지연구 노트입니다. 이 초록색 노트는 코쿠요kokuyo라는 일본 유명 문방구 브랜드에서 만드는데요, 일본의 인류학 연구자들은 미도리노 휘이루도 노오또緑のフィールドノート라고 부른대요. 일본에서 연구하는 대부분의 인류학자들이 이 초록색 노트를 현지연구 노트로 사용한다고 해요. 빳빳한 커버와 적당한 크기 때문에 손에 들고 언제든 필기할 수 있고, 모눈이 있어서 그림을 그리기도 좋아서 현지연구 노트로 딱 적당하다나요? 게다가 알맞게 얇아서 한 권 한 권 다 쓰고 쌓아가는 맛이 있대요. 그녀와 함께 다람살라에서 지낼 때 매일 밤 깨알 같은 글씨로 하루에 일어난 모든 일을 적어 내려가던 그 모습을 기억하고 있어요. 가능한 한 ‘모든 것’을 적어야 한대요. 당장은 의미가 없을지라도 어느 순간 ‘큰 의미’가 되어 나타나는 것들이 있대요.
자신을 소개하는 글을 몇 줄 적으라고 했더니 이렇게 적었네요.
오사카에서 인류학을 공부하며 사람을 통해 세상을 읽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진심이 담긴 이야기에는 세상을 바꾸는 힘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녀의 초록색 일기장에 빼곡하게 적힌 이야기들은 세상을 바꾸는 힘을 갖고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