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小說 스팀시티 영웅전] 90. 사랑은 또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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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되겠어요



"피터를 떠올리면 그 말부터 생각납니다. '그게 되겠어요.' 그는 그 말을 참 많이 했어요. 물론 그 말머리에는 들릴 듯 말듯 '에이~' 하는 추임새가 붙어 있지요. '에이~ 그게 되겠어요.' 말머리는 그런데, 말미는 말이에요. 음.. 좀처럼 알 수가 없단 말이죠. 하겠다는 건지 말겠다는 건지, 별로라는 건지 좋다는 건지, 동의하는 건지 거부하는 건지, 그게 되겠냐고 힐난하는 건지, 그게 정말 되는 거냐고 묻는 건지.. 재차 물으면 바로 태도를 바꾸고 적극 동조하는 자세를 취하기는 하지만, 그의 제너럴 스탠스는 언제나 좀.. 그러했어요. 그런데 그게 좀 신기한 게 있단 말이에요. 그런 말버릇을 가진 사람들은 매사에 부정적이거나 비판적인 경우가 많은데, 아 뭐 피터도 그런 편이긴 하죠. 하하 그런데 그의 행동은 그렇지가 않단 말이에요. 그게 참 신기하단 말이죠. 말과 행동이 다르긴 한데, 그게 말은 부정적이어도 행동은 긍정적이다 못해 심지어 적극적이란 말이지. 그게 참.."



사람의 말과 행동이 다 다르기 마련입니다. 언행이 일치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건 대체로 그러지 못하기 때문이겠죠. 말은 뒤집을 수 있어도 행동은 뒤집을 수가 없으니, 생각이 왔다갔다 하고 말이 이리저리 튀는 건 변화하는 세상에서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겠죠. 그러나 행동은 선택을 전제로 하기에, 모 아니면 도, 이거 아니면 저거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행동에 신중합니다. 일단 동작을 취하고 나면 뒤집을 수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말은 긍정적으로,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하되, 행동은 신중하고 유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정치적인 인간이 되어가는 것이죠.



빠져나갈 구멍을 확보하고 여러 가능성을 살피면서, 일단 눈앞에 제시된 제안들은 붙들어 놓고 보는 것이죠. 그리고 선택은, 행동은, 그때그때 유리한 대로 바뀌는 생각과 판단을 따라, 이리저리 뒤집는 것이 흔한 인간의 패턴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속았다, 배신이다, 사기다 합니다. 그런데 피터는 그렇지가 않았나 봅니다. 말과 행동이 다른 건 분명한데 말이죠.



"말은 그게 되겠냐고 하면서 언제나 이미 행동에 돌입해 있더란 말이죠. 그게 참 어색했어요. 신기하기도 하고. 어? 안 할 줄 알았는데? 항상 하고 있단 말이에요.

한번은 밀라노에서 마사지 버스킹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었는데, 뭐 첫 반응이야 특유의 '그게 되겠어요'이길래, 하고 싶지 않은가보다 했죠. 그런데 막상 가서는 또 열심히 하더란 말이죠. 중년의 동양 남자가 밀라노 대성당 앞에서 마사지를 공짜로 해주겠다며 철퍼덕 앉아 있는 모습이 참 거시기하긴 했습니다. 지나가던 서양 여인들이 마사지라고 하니까 질색을 하면서 도망치기까지 했으니까요. 정서상 그럴 수 있는데, 오히려 그런 꼴을 보게 한 우리들이 좀 미안할 정도였어요. 그런데 그는, 아마도 그런 경우도 생각했을 텐데, 그래서 그게 되겠냐고 했을 텐데, 거부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더란 말이죠. 말과 다르게 말이죠. 행동은 언제나 즉각적이고 긍정적이란 말이지. 음.. 뭐랄까? 새로운 인간형을 보는 듯하다고 할까?"



글쓰기 유랑단은 밀라노에서 마사지 버스킹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피터를 꼬셨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탐탁지 않아 했지만, 어느새 버스킹을 구상하고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약손 요법을 연구하는 피터로서 마사지 버스킹은, 글쎄? 반응을 알 수 없는 무모한 도전일 수도 있었겠죠. 그런데 그는 일단 하기로 한 일에 매우 적극적이었습니다. 일행을 배려했을 수도 있고, 흐름을 깨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예상치 못한 호응을 상상했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뭐.. 반응은 신통치가 않았고, 심지어 약간 쪽팔릴 수도 있는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별거 아니라는 듯, 좋은 경험 했다는 듯 개의치 않아 했습니다. 인생이 뭐 다 그런 거긴 합니다만..



"그런 일이 여러번 있었어요. 말과 행동이 다른 일들 말이죠. 골방을 나와 아직 현실 세계에 적응 중인 피터에게는 많은 것들이 낯설고 어색했겠죠. 그의 사회 시계는 10년쯤 멈춰 있었으니까요.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고 보는 그의 스탠스는 그의 진의를 자주 헛갈리게 만들곤 했죠. 그게 성향이거나, 천성이거나 그런 것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의 글을 읽어나가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아, 이것은 전투의 습관일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그러니까 연인을 빼앗아간 신과의 전투, 그 전쟁의 습관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피터는, 그를 골방으로, 동굴로 들어가게 만든 그 사건으로부터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신에게 연인을 빼앗기는 상황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무력감. 그리고 어떠한 논리와 설득으로도 연인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그를 신과의 전쟁을 시작하게 만든 것입니다.



"그는 골방에서 신들과 논리전쟁을 벌인 듯해요. 영성을 탐구하여 정신을 수련한 게 아니라, 신들의 논리와 종교의 교리를 샅샅이 벗겨 보겠다며 덤벼든 것이죠. 이해합니다. 그리고 대단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사랑하는 이를 빼앗아 간 연적이 신이라면, 게다가 광신적 도그마로 무장한 신흥 종교라면, 우리는 누구나 포기하고 다른 사랑을 찾아 나설 거예요. 그러나 그는 그것으로부터 도망치지 않았어요. 그게 오기였을지, 분노였을지, 복수심이었을지 모르지만.. 아마도 그것은 사랑이었을 거예요. 연인을 포기할 수 없는 마음. 비록 신에게 연인을 빼앗겼지만, 그 신과의 전투에서는 끝까지 물러서지 않겠다는 처절한 용맹함.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요? 골방에서 그는 자신의 사랑을 잃지 않기 위해 세상의 모든 신들과 논리전쟁을 벌인 것이 분명해요."



동굴에서 일어나는 일



동굴 속 그들은 신의 은총 속에서 평안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모두 신과의 처절한 전투에 직면하게 됩니다. 내면에서 올라오는 모든 욕망과 번뇌는 결국 신의 창조물이기 때문입니다. 근원을 따라 올라가는 모든 영성가들은 결국 신과 만나게 됩니다. 자신의 결핍과 약점, 번뇌와 고통을 창조한 그 신과 조우하게 되고 분노하게 됩니다. 그리고 피가 땀이 되어 흐르도록 처절한 혈투를 벌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의 예수처럼..



"피터는 사랑을 잃지 않기 위해서, 그 종교의 신자가 되어보려고 열심히 노력했다고 했어요. 집회에도, 모임에도 참석하고 교육도 열심히 받아보았지만,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더군요. 그때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사랑하는 연인을 두고 신과 대척점에 서야 하는 이의 마음. 심지어 자신의 연인이 있는 신의 커뮤니티에 포함되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무력감. 누가 내친 것도 밀쳐 낸 것도 아니죠. 다만 스스로 받아들일 수 없는 데서 오는 절망감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감정일 거예요."



사랑 앞에서 우리는 모두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려고 노력합니다. 사랑한다는 그 말. 그 말 앞에서 우리는 모두 어떻게든 그 말에 합당한 행동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또한 우리의 사랑은 그 말과 행동으로 지켜집니다. 말을 할 수 있었을 겁니다. 피터는, 나도 당신의 신을 따르고 싶다고 말을 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피터는 그녀를 따라나설 수 없었습니다. 말과 달랐던 행동. 결국은 행동에 말을 일치시켜야 했던 겁니다. 그리고 그는 사랑을 잃었습니다.



사랑은 사랑으로 잊혀지고 떠나간 사랑은 붙잡지 않는 법인데, 그러나 그녀는 떠나보낼지언정, 그녀를 빼앗아 간 그 신만큼은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그 신만큼은 인정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골방으로, 동굴로 찾아갑니다. 연인을 자신의 삶에서 앗아간 그 신을 찾아 뚜벅뚜벅 동굴로 걸어들어 간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신과 혈투를 벌입니다. 입만 산 그 신의 허위, 논리적 맹점을 찾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집니다.


그것은 틀렸습니다!
그것은 유일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어느 종교에나 있습니다!
그것은 당신 만의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내 연인을 내어놓으십시오!
그러니 그녀를 돌려놓으라고!!!



마법의 성에 갇힌 연인을 찾기 위해, 피터는 영성의 검을 갈고 닦았습니다. 동서양의 모든 교리를 섭렵하고, 먼저 전투를 치루었던 스승들의 가르침을 온몸으로 습득하여, 저 허위의 신을 박살 내려 동굴 속으로, 어둠 속으로, 깊숙이 깊숙이 나아간 것입니다.



"거기 그곳, 동굴 가장 깊은 곳에 그 신이 있었던 겁니다. 자신自神, 번뇌로 가득한 자신 말입니다. 피터로부터 연인을 빼앗아 간 그 신은 바로 자신自神이었던 겁니다. 모든 영성가들이 결국 언젠가 어느 때에는 반드시 넘어서야 했던 그 신. 자신自神. 그 신과의 대결을 피터 역시 피할 수 없었던 겁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원문은 ‘知則爲眞愛 愛則爲眞看 看則畜之而非徒畜也’인데, 직역하면 ‘알면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참으로 보게 되고, 보게 되면 모으게 되니 그냥 모으는 것은 아니다’라는 뜻이다. 사랑은 적극적으로 생각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 일으킴이 애착이 되어 잔잔하게 마음에 남기도 하고 집착이 되어 괴로움을 쌓기도 한다. 몸과 마음에 달라붙어 제 몸인 것처럼 되어 버린다.

_ 피터 <배낭영성>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게 됩니다. 인간의 시작은 사랑의 결과이고 사랑은 번뇌의 원인입니다. 사랑하면 알고 싶고, 알게 되면 보게 되고, 보게 되니 번뇌가 쌓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함으로 번뇌를 끌어안게 되는 것입니다. 피터도 그러했습니다. 그는 그녀를 전심으로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신에 대해 알고 싶었고, 알게 되니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번뇌가 쌓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번뇌 속에서도 피터는 뜨거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랑한다는 그의 말을 지키려, 연인을 따라나서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국 그녀를 따라나서지 못했습니다. 말과 행동이 달랐던 것입니다.



"그는 말을 지켜내지 못했어요. 연인도 지켜내지 못했죠. 행동으로 말을 뒤집음으로 연인을 상실해야 했죠. 그것은 상처였을 테고 트라우마가 되었겠죠. 그리고 신과 전투를 벌이면서는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려고 무던히 노력했을 거예요. 신을 꺾으려면, 그보다 우월하려면.. 그러나 신과 직면한 인간은 결국 깨닫게 됩니다.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말 대신 행동으로 증명하는 일임을."


신앙이란 실체를 모르는 절대자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이 아니고, 계속되는 철학적 사유와 그것을 몸소 확인하는 체험을 통해 자연스럽고 확고하게 형성되는 마음의 실천 행위 자체일 뿐이다. 그 ‘믿음’이란 신앙보다는 믿는 마음, 즉 신심信心에 가깝다. 흔히 수도자 혹은 수행자라고 표현되는 사람은 바로 이 신심을 얻었거나 얻으려고 끊임없이 행동하는 실천적 인간이다.

_ 피터 <배낭영성>



실천적 인간 피터는 진정한 영성인이 되었습니다.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은 자신의 유익을 따라 행동을 바꿉니다. 또한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은 그 일치해야 하는 말과 행동 때문에 경직되고 도그마에 빠지기 쉽습니다. 완고한 신앙인일수록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려는 강박에 빠져들기 쉬운 것입니다. 그것은 영성이 아닙니다. 참된 영성은 변화하는 우주와 사람의 상호작용에 따라 함께 리듬을 타고 교류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들 어떠하겠습니까? 저런들 어떠하겠습니까? 어제의 말이 이러했다고 해서 그 말에 묶여 오늘의 행동 역시 고집스럽게 우겨댄다면, 집착에서 놓여나지 못하고 원칙에만 매달리면, 그 또한 아집의 다른 형태일 뿐인 것입니다.



번뇌 그놈


'應無所住 마땅히 머무는 바가 없어야 합니다. <금강경>'

서른 즈음에 <금강경>의 이 구절을 읽고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결혼을 약속했던 사람과의 인연이 어긋나면서 걱정과 미련으로 마음을 소모하고 있던 때였다. 마땅히 머무는 바가 없어야 함은 어느 것에도 집착함이 없어야 한다는 뜻이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말처럼 쉽지 않다. 과연 이러한 마음이 가능할까? 존재하는 ‘나’의 주인이라고 여겨지는 마음이라는 물건은 유난히 과거와 미래를 향해 일어난다. 순간순간 직면하는 현재의 삶은 놓아 버리고 사라져 버린 과거의 기억에 대한 회한이나 분노 혹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희망과 걱정 등으로 마음을 소모하고 있을 뿐이다.

_ 피터 <배낭영성>



"번뇌는 그 붙듬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변화하는 우주의 섭리를 따라, 행동을 유연하게 움직여가는 것이 번뇌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참 영성의 길이겠죠. 그러나 사랑은, 그럴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붙듬이고 붙들림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모든 번뇌의 시작입니다. 신의 사랑이 번뇌 덩어리 인간을 창조했으니, 사랑하는 모든 인간들은 그 번뇌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번뇌를 벗어나 먼지처럼 자유로워진들, 그 공허함은 또 어떻게 할까요? 공허란 채워지지 않은 상태를 말하며, 채워지지 않았다는 것은 채워짐을 전제로 하는 것이니, 우리는 모두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사명인 것입니다."



사랑 그놈 때문에 피터는 번뇌의 바다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번뇌로 고통스러워하며 골방을 데굴데굴 굴러다녔습니다. 그러다 못해 그 번뇌의 창조자, 신을 향해 영성의 검을 들고 달려갔습니다. 그의 목을 베고 내 사랑을 찾겠다고, 그는 어둠의 동굴 속을 달렸습니다. 아, 멀리 그녀가 보입니다. 자, 이제 손을 뻗으면, 그녀가 손을 마주 잡으면, 우리의 몸은 떠오르는 것입니다. 자유롭게 저 하늘을 날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민 손을 붙든 것은 번뇌로 가득 찬 자기 자신自神이었습니다. 동굴의 끝에서, 어둠의 한복판에서, 목을 베어낸 것은 집착에 매인 자기 자신自神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동굴 속을, 골방을, 제 발로 걸어 나왔습니다. 길을 잃지 말라고 어머니가 남겨놓고 떠난 아리아드네의 그 스마트폰을 비추며..



"행동을 자유롭게 변화시킬 수 있는 그는, 진정 영성의 높은 경지에 이른 수행자들만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것 같군요. 말은 이렇게 해도 행동은 저렇게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말은 뭐라고 했어도 행동을 우주의 흐름과 일치시킬 줄 아는 그는, 진정 이 시대의 참 영성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삐딱하고 부정적인 그의 말버릇은 골방 전투의 흔적이겠죠. 도그마에 빠지지 않고, 진짜가 무엇인지 계속 의심하고 비판하고 분석해온 그의 삶의 태도가 그런 말버릇을 가지게 했을 거예요. 그래서인지 그의 글은 놀라운 균형감을 보여줘요. 동서양의 영성을 넘나들면서도 어디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맹목적인 숭상이나 숭배가 없는 날카로운 균형감을 잃지 않고 있죠. 그건 다 다른 가르침에도 있는 얘기라며, 너만 옳다는 얘기 따윈 집어치우라며.. 그래서 그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강요하는 것이 없으니까요. 그리고 또 하나. 모든 것을 잃어 본 이에게서 나오는 초연함이랄까? 결국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 우주와 함께 변화하는 것뿐 더 무엇이 있겠느냐는 그의 말은, 자칫 영성이 주는 무거운 의무감에 짓눌릴 것 같은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죠. 그러나 그 모든 것이 그의 상실의 결과라고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사랑을 떠나보내고 비워진 마음에 찾아드는 것. 그것이 영성의 시작일 겁니다. 사랑만큼 마음을 벅차오르게 채우는 것이 없을 테니 말이죠. 그렇게 빵빵해질 대로 빵빵해진 가슴이 비워지고 나면, 우리는 진정한 무無, 공허의 상태를 경험하게 됩니다. 거기서 진짜 영성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가슴이 뻥 뚫려 버린 채로..


동굴은 타자와의 관계 속에 일어나는 복잡한 번뇌를 다스리려는 수행자에게 충분한 고립의 장소가 되어준다. 동굴에는 빛이 침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외부로부터의 빛이 닿지 않는 곳에 들어가는 행위는 번뇌를 일으키는 요소를 한꺼번에 그리고 능동적으로 차단하려는 굳센 다짐이기도 하다. 빛이 없는 곳에서는 몰입과 사색의 힘이 강해지고 그에 따라 내면의 빛도 함께 밝아진다. 빛을 지혜 혹은 통찰에 비유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어둠이 짙어지면 빛에 대한 그리움도 짙어진다. 그래서 고립은 위험한 것이기도 하다. 번뇌를 다스리기 위해 고립을 택하지만, 오히려 번뇌가 불길처럼 일어난다. 고립을 통해 번뇌를 끊으려는 노력은 단식하는 것과도 같다. 단식이 오래되면 배고픔이 심하게 몰려오는 것처럼 오욕의 번뇌를 끊으려다 오히려 번뇌의 불이 활활 타오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피하지 못할 괴로움이다. 무의식에서 잠자고 있는 번뇌의 씨앗은 여름 장마의 잡초처럼 캐고 또 캐도 끝이 없다. 이것을 모두 토해내고 나서야 비로소 내면의 빛이 깨끗하고 밝아진다고 한다. 번뇌의 종자가 발아하여 다 사그라질 때야 비로소 그 마음이 더 일어나지 않는다. 이를 ‘완전히 비어서 맑고 깨끗한 상태’라고 표현한다.

_ 피터 <배낭영성>



우리는 피터에게 빚을 지고 말았습니다. 그 처절한 사랑과 쓰라린 상실의 열매를 책 한 권, 글 몇 편으로 쉽게 얻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그 골방 전투의 결과물을 말이죠.



"상실의 시간동안 한없이 시달렸을 피터의 그 번뇌, 번뇌 그놈의 정체는 사랑이었을 거예요. 그것 말고 다른 것으로는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없죠. 그 마음고생을 무엇으로 다 말할 수 있겠어요. 세상을 모두 잃어버린 듯한 그 마음을.. 얘기하고 보니 그 노래가 생각나는군요. 사랑 그놈, 번뇌 그놈.. 할 수만 있다면 그와 어깨동무를 하고 코인 노래방에서 이 노래를 불러주고 싶네요."


늘 혼자 사랑하고 혼자 이별하고
늘 혼자 추억하고 혼자 무너지고
사랑이란 놈 그놈 앞에서
언제나 난 늘 빈털터릴 뿐

늘 혼자 외면하고 혼자 후회하고
늘 휘청거리면서 아닌 척을 하고
사랑이란 놈 그놈 앞에서
언제나 난 늘 웃음거릴 뿐

사랑해 널 사랑해

불러도 대답 없는 멜로디
가슴이 멍들고 맘의 문은 멀어도
다시 또 발길은 그 자리로

사랑해 또 사랑해

제멋대로 왔다가
자기 마음대로 떠나간다
왔을 때처럼
아무 말도 없이 떠나간다

늘 기억 때문에 살고 추억에 울어도
늘 너를 잊었다고 거짓말을 해도
숨을 삼키듯 나를 삼키고
그저 웃으며 손을 흔든다

사랑해 또 사랑해

목이 메어 불러도
너는 듣지 못할 그 한마디
고개 떨구며
사랑 앞에 난 또 서 있다

사랑해 널 사랑해

제멋대로 왔다가
자기 마음대로 떠나가고
왔을 때처럼
아무 말도 없이 떠나가도

모른 척해도
날 잊는대도

사랑은 다시 또 온다
사랑은 다시 또 온다

_ 바비킴 <사랑 그놈>




오늘은 임재범 버전으루다가..



사랑 그 뒤에서 피터는 번뇌에 시달렸지만, 떠나간 그녀를 놓아줄 수는 있어도 도그마를 용서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의 날카롭고 예리한 논리의 검은 모든 도그마의 허위를 칼로 베어내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그의 글에는 도그마가 없습니다. 그는 영성의 모든 가르침을 진지하게 대하지만 조금이라도 도그마를 내어놓으려 하면 단칼에 잘라 버립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우리는 변화하는 것이라고, 우주도 변화하고 사랑도 변화하니, 가르침도 변화하고 사람도 변화해야 한다고. 매임과 묶임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흘러가야 한다고. 그래서 그는 도그마에 묶이지 않고 변화하는 우주를 따라 다시 세상 속으로, 불길 속으로, 나아 온 것입니다.


세상에 고통이 아닌 것이 없으니 인생은 아름답지 못하다. 다만 나의 마음이 아름다워서 아름답게 보이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그 마음이 영원히 아름다울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따지고 보면 ‘아름답게 보인다는 것’은 착각일 뿐이다. 모든 현상은 변화하니 나라고 주장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젊을 때는 얻고 싶은 것을 얻으면 반드시 행복하리라고 생각했다. 노력하면 분명히 얻을 수 있으니 얻지 못한 것은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리화했다. 운명에 대해 신세 한탄도 많이 했다. 얻지 못할까 봐 불안했고 간혹 얻게 되면 더 큰 것을 원했다. 다시 새로운 것을 얻기 위해 불안해하고, 얻지 못할까 봐 불안해한다. 마음 하나 바꾸면 되는데 그게 쉽지 않다. 세상의 모든 것이 변화하고 영원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한 어리석음 때문이다. 어리석으므로 계속 갈증을 느끼면서 추구한다. 돈이든 명예든 그 밖에 무엇이든. 그러니 인생은 괴로움의 연속일 수밖에. 그런데 <법화경法華經>에서는 반대로 상락아정常樂我淨을 이야기한다. 상락아정이란 영원하고 즐겁고 절대 변하지 않는 본질과 깨끗한 것을 뜻한다. 역설적이게도 지금 내가 사는 바로 이 자리가 상락아정의 토대라는 것이다. 다만 마음이 완전히 바뀌면 된다.

_ 피터 <배낭영성>



"그러나 그에게, 번뇌로 고통스럽더라도, 또다시 상실의 시대를 견뎌내야 할지라도, 사랑하기를, 다시 사랑하기를 권유합니다. 채워지고 비워져야 하는 것이 인생이라면,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사랑이라면. 번뇌로 고통스러울지라도 사랑으로 충만하기를, 상실로 가슴 아플지라도 설레이고 행복하기를, 상처로 고통스럽더라도 아련하고 꿈만 같기를, 잠시라도 잠깐이라도, 한 번이라도 단 한 번이라도 더 사랑할 수 있기를 권합니다."



피터는 이제 골방을 나와 세상 앞에 섰습니다. 그를 기다리는 것이 번뇌의 불길일지언정, 지난 생에서처럼 외롭지는 않을 겁니다. [스팀시티]가 있으니까요. 도그마에 갇히지 않는, 사랑과 우정의 도시 [스팀시티]가 그를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우리는 그와 함께 계속 걸어갈 겁니다. 그는 충분히 외로웠으니까, 더이상 그가 외롭지 않아야 하니까요. 우리는 커뮤니티이니까요. 그의 비워진 마음에 행복이 가득하기를 우리는 바라니까요. 그래서 만났으니까요. 그렇게 약속했으니까요. 지난 생에 우리는..



그리고 그의 새로운 사랑 역시 기다리고 있습니다. 자신을 찾아오기를, 골방에서 신을 쫓듯이 자신을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번뇌의 바람을 품고 살아간다. 번뇌가 원래 그러한 것이라면 애써 소멸해야 할 이유도 없다. 다만 번뇌에 매이지 않으면 된다. 나에게도 번뇌의 바람이 항상 불어온다. 열정적으로 사랑했던 젊은 시절의 연인처럼 번뇌에 집착하고 그것을 사랑하고 있다. 번뇌를 소멸하고자 수행하는 사람조차도 번뇌에 집착하고 그것을 사랑한다. 번뇌가 바람이라면 붙잡을 수 없는데 붙잡으려고 왜 그리 애를 썼던 것일까? 결국 소멸할 것인데 무엇 때문에 잡으려고 했을까? 번뇌가 소멸해야 깨달음이다. 시간이 가면 소멸하는 것을 일부러 소멸시키려 했으니 처음부터 틀렸다. 본래 한 물건도 없다지, 아마.

_ 피터 <배낭영성>







P.S.

글을 쓰는 와중에 그의 첫 책 <배낭영성>에 베스트셀러 딱지가 붙었다는 소식이 전해져 왔습니다. 아직 지인빨로 버티고 있는데 베스트셀러라니. 아마도 이것은 우주의 예언일 것입니다. 그의 상실의 아픔이 곧 우주의 에어드롭으로 물화될 것임을 계시하는 우주의 표지일 것입니다.



그리하여 마법사는 전심으로 이 위대한 영혼의 물화를 환영하고 응원하며 공약 하나를 약속하려고 합니다. 모름지기 베스트셀러라면 그 말에 따르는 행동이 걸맞아야 할 테니, <배낭영성>이 진정한 베스트셀러의 자리에 오르는 그날, 피터의 헤어스타일로 '사랑 그놈'을 불러보렵니다. 그걸 녹화해서 영상으로 올려보겠습니다.



아, 그건 좀 아니라구요? 민폐라구요?? 어쩌겠습니까. 이것도 마법사의 번뇌의 소산이니 함께 가는 겁니다!! 우리는 커뮤니티이니까!!



(베스트셀러 기준은, 모름지기 베스트셀러라면 백만권? 십만권쯤?? 나가야 하는 것일 텐데. 음.. 요즘 시절도 그렇고 하니.. 딱 만권만 잡겠습니다. 스팀도 만배를 기원하고 있으니 <배낭영성>도 딱 만권! 많이 썼다!! 그런데 좀 다행인 것은, 이 글을 통 보는 사람이 없으니 말입니다. 하하하)



휘리릭~





<배낭영성> 베셀만권 가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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