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은 고대사 콤플렉스 때문에 역사를 왜곡하고 한국인은 근대사 콤플렉스 때문에 일본 문화를 무시한다. by 유홍준
유홍준 교수는 현재 한국와 일본의 역사 인식의 차이점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한반도에 갇힌 역사 의식으로는 한일관계를 풀어나갈 수 없다. 우리가 삼국시대로 배운 4세기~6세기는 가야와 왜까지를 포함한 5국시대로 재조명되어야 한다. 칸사이 지방에서 시작된 나의 일본 여행기는 이러한 유교수의 역사관을 바탕으로 시작되었다.
칸사이 지방은 지금으로부터 약 2300년 전에 한반도에서 온 첫 도래인(일본의 입장에서 한반도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정착한 곳이다. 그 이후 백제와 가야에서 넘어간 수많은 인물들과 문명, 문화들로 일본이 고대국가로의 급속한 성장을 하게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칸사이 지방의 오오사카, 나라, 쿄토 등에는 이러한 고대 일본의 발자취가 담긴 유적지들이 참으로 많다. 이런저런 이유로 우리에겐 칸사이 지방이 가장 친숙하게 느껴지는 곳이다.
오오사카성의 천수각
오오사카성하면 누구나 이 천수각을 떠올린다. 하지만 이 천수각은 일종의 망루로서 일본의 성마다 많이 있는 것이다. 그 종류만 해도 현존 천수, 복원 천수, 부흥 천수, 모의 천수로 구분할 정도로 많이 있다.
일본 뿐만 아니라 중국과 유럽처럼 지방호족들이 발호하여 서로 싸우던 전국시대를 거친 나라들은 우리나라와는 성의 구조와 기능이 다르다. 외적을 방어하는 목적이 아니라 바로 이웃한 적들을 방어하기 용이하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천수각 역시 가까이에 이웃하여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는 적들의 동태를 감시하고 성을 방어하는데 용이하도록 지어진 것이다. 실제로 센코쿠 시대(전국시대, 15세기~16세기) 이전에 만들어진 성에는 이러한 천수각이 없다.
오오사카 성의 천수각은 토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만들어졌다가 내전 중에 소실된 것을 토쿠카와 이에야스가 재건하였으나 이 또한 다시 소실된 것을 1931년에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 복원한 것이다. 따라서 오오사카 성을 상징하는 이 천수각에 실제로 발을 들여보면 상당한 실망을 금할 수 없다. 일본인들의 실용성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인데 솔직히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로는 이해하기 힘든 구석이 있다.
성을 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해자이다. 오오사카 성에는 이런 해자를 외호와 내호로 만들어놓았다. 하지만 해자는 화포(공성포)로부터 성을 방어하는데는 무용지물이다. 따라서 일찍이 화포가 발달한 우리나라에는 해자 같은 것이 없는 것이다.
천수각 내부에는 오오사카성의 역사를 알려주는 여러 전시물이 있었는데 해설 판넬에 이런 재밌는 구절이 있다.
풍신수길의 조선 침략은 비전투원을 포함한 대량 살육, 포로의 일본 강제 연행 등 조선 민중에게 큰 상처를 남겨주었다.
수길이 임진년에 일으킨 전쟁 뿐만 아니라 일제의 한일강제병합에 대해서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심히 궁금하다. ㅎㅎ
쿄토의 청수사(清水寺)
일본에서 가장 부러운 것은 숲이다. 일본의 숲에는 자연의 냄새가 살아있다. 자연을 보존하기 위해선 어떤 양보도 불허하는 것이 선진된 나라의 자세이다. 고작 2주간의 올림픽을 위해 5백년된 가리왕산 숲을 싹 밀어버리는 것과 같은 짓은 일본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오오사카 난바역에서 약 1시간반 거리에 있는 이 청수사(清水寺)도 이런 숲을 뒤로하고 있다. 깊은 숲은 아니지만 자연만이 선사해줄 수 있는 신선한 냄새... 그 향기에 듬뿍 취해버렸다.
한중일 삼국에는 비슷하면서도 매우 다른 것들이 많다. 가람(절집)의 배치도 그 중의 하나이다.
우리나라에선 절집마다 다른 개성이 있지만 제법 규모가 있는 절집은 일주문을 통해서 들어가야 하고 대문엔 사천왕들이 눈을 부라리고 있다. 사천왕 사이를 지나 마당으로 들어가면 바로 중앙에 대웅전이 있고 좌우나 뒷쪽에 관음전이나 지장전 그리고 절 뒤 숲으로 들어갈만한 길목에 삼신전 등이 있다. 그리고 절 입구나 주변에 승탑이 있을거라는건 전문가가 아니라도 한국인이라면 통박으로도 다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만큼 한국의 가람에는 배치 질서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본의 절집에는 전혀 그런게 없는 것 같다. 물론 필자가 전문가가 아니라서 엉뚱한 소리를 하는 건지는 몰라도 적어도 우리 기준에는 그렇다는 것이다.
청수사의 본당 또한 우리 절집의 대웅전과는 완전히 다르다. 위치도 그렇고 생김새도 그렇다. 아마도 건물의 기능 또한 다를 것이다.
어쨌거나 낮은 절벽 끝에 자리잡은 청수사의 본당은 참으로 멋진 곳이다. 지금은 수리 중이라서 아쉽지만 예전의 사진을 보면 계절마다 바뀌는 주변 경관과 어우러져 감탄이 절로 나올만한 곳이다.
절을 돌아 나오니 어김없이 차와 소바를 파는 식당이 있다. 지친 다리도 쉬어갈겸 아내와 평상에 앉아 간단히 먹을 것을 주문했다.
감주와 우뭇가사리 냉채...
맛은 어땠을까? 우리나라의 단술(경상도에선 식혜를 단술이라고 부른다)은 이 감주에 비하면 천상의 그것이다. 일본의 음식은 대부분 깊은 맛이 없는 것 같다. 달거나 짜거나... 우리는 활어회를 선호하지만 일본에선 주로 삭힌 선어회를 먹는다. 사실 활어회보다 선어회로 먹는 것이 더 맛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왜 음식은 발효시킨 것이 별로 없을까?
오오사카에 와서 맛있게 먹은 유일한 음식은...
컵라면이다.
헐! 그럴리가? 소바, 돈까스, 규동, 스시 등이 있는데 내가 보기엔 그게 전부다. 소바에도 무지 많은 종류가 있지만 우리 입맛엔 그게 그것같아서 다르다고 보기 힘들다. 음식에 야채가 나오는 경우가 드물고 육고기도 몹시 인색하게 나온다. 오오사카에서 제대로 된 먹방을 찍어야지 했던 바램은 그렇게 수포로 돌아갔다.
...그래도 컵라면은 제대로였다! 국내 라면회사들은 왜 그따위로 만드는 것일까?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찍은 재밌는 장면이다. 기모노를 입은 여인네 5명이 상점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기모노를 입은 여인들은 아름답다. 한복의 화려함과 우아함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기모노도 동양적인 아름다움을 충분히 표현하는 의복이다. 도심에서도 기모노를 입은 여인들을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그것이 꽤 실용적인 의복이기 때문일 것이다. 폼생폼사로 살았던 우리 조상님들 덕에 한복은 실용성을 얻지는 못한 것 같다. 한복의 그 거창한 치맛자락으로 지하철을 탈 수 있을까? 기모노를 즐겨입는 일본인들을 보면서 몹시부러운 생각이 든다.
나라 공원
나라 현을 고작 사슴 공원이 있는 곳으로 설명하기는 참으로 미안한 감이 없지 않다. 794년 수도가 현재의 교토 시로 옮겼을 때까지 일본의 중심이었고 찬란한 아스카 시대를 연 곳이다. 하지만 연이은 노독에 흥법사마저 주마간산격으로 지나쳐온 마당에 역사적 의미까지 되새겨볼 여유가 없었다.
처음 가는 일본... 그 설레임도 잠시...
너무 익숙한 곳을 고르지 않았나 싶다.
다음엔 보다 이국적인 홋카이도나 오키나와로 가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