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15일. 기록적인 한파가 커피가게를 덥쳤다. 단 하룻밤 사이에 가게 안의 커피나무가 얼어죽었고, 옥상에 설치된 물탱크의 물은 거대한 얼음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꽁꽁 얼어붙은 물 안에 박제된 부레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물을 쓸 수 없다면, 가게를 쉬어야 했다. 헛수고라는 것을 알면서도 5층 옥상 물탱크까지 뛰어올라가 펄펄 끓는 물 7리터를 들이부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얼음은 녹지 않았다. 2주가 흘러도 기온이 영하 이하로 내려가지 않았고 가게를 닫을 수 밖에 없었다. 손님들은 아쉬워하며 가게앞에서 발걸음을 돌렸다.
드디어 날씨가 풀렸다. 그러나 물탱크 안의 물이 녹으면서 옥상에서 건물 내부로 들어가는 관이 파열되었다. 옥상은 물바다가 되었고 1층으로 뛰어내려와 직수가 유입되는 밸브를 잠그고 건물주에게 전화를 했다. "너희가 쓰고 있는 수도를 왜 내가 관리해야하느냐"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나와 가게를 같이 하던 친구는 한 달동안 여행을 가자고 했다. 그래서 밀라노행 비행키 티켓을 끊었다. 물론 가게를 닫은 채로. 물이 안나오는 가게 걱정을 떨칠 수 없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단골손님이 다 떨어지면 어쩌나... 라는 생각도 잠시였다. 밀라노에 짐을 풀고 그 다음날 새벽 베니스행 기차를 탔다.
기차역에 내리자 전혀 딴 세상이 펼쳐졌다. 우연히도 그날은 가면축제 첫날이었다. 북적이는 인파는 코스튬을 입고 화려한 가면을 쓰고 다녔다. 친구와 나도 노점상에서 멋진 가면을 각각 샀다. 산 마르코 광장의 유명한 카페 플로리안에서 여유롭게 커피도 마셨다. 커피를 마시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물이 안나오는 가게에서 하루종일 건물주만 원망하며 죽치고 있었다면, 이렇게 즐거운 축제를 경험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건물주가 수도관을 고쳐주지 않았기때문에 나는 베니스에서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때 나는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내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해석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생각의 방향은 내가 원하는 각도로 바꿀 수 있었다. 조종관을 잡은 사람은 바로 나였으니까. 이 원칙은 그 후 내 삶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나는 건물주에게 진심으로 감사했다. 건물주가 나에게 친절했다면 나는 한없이 자유로운 삶을 꿈꾸지 않았을 것이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났다. 나는 베니스에서 한 다짐 그대로 자유로운 사람이 되었다. 또한 닥치는 어떤 일에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조종관을 잡고 꿈꾸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