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장 참여] 아내와의 대화 00.

내가 사는 집에는 어머니와 아버지, 아내와 딸
모두가 함께 거주하고 있다.
그렇다.
그 힘들다는 시집살이를 와이프가 하고 있다.

이렇게까지 된 사정이야 길고 복잡다난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함께 사는 것을 큰 고민 없이 결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 부모님이 굉장히 선하고
이타적인 성격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다.

뭐, 주관적인 견해일 수도 있지만
여러 객관적인 정황들이 존재하기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심치 않고 있다.

하지만 다들 어느 정도 예측했듯이
함께 사는데는 사람 좋은 것 만이 전부는 아니었고,
생각보다 결혼생활이 그리 순탄치는 않았다.

걸핏하면 와이프는 나에게 와서
상처받은 일을 이야기하기 일쑤였고
나는 이러저런 시도들을 모두 실패한 채
그저 중간에서 애만 탈 뿐이었다.

하지만 어느샌가 자연히 쌓인 화는
나를 신경질적으로 만들었고,
사소한 부모님의 개입에도 화를 내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주 전인가, 어머니를 모셔오던 어떤 날이었다.
자기좀 태워가라는 어머니를 직장에서 모셔가다가,
사놓고 못먹던 한약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하시는 어머니에게
알아서 할테니 신경쓰지 말라며 짜증을 내었었다.

어머니는 그 뒤로 기분이 상하여 한 마디도 하지 않으셨고
덩달아 기분이 상한 나에게
그 마음을 풀어드릴 여유따윈 없었던 것 같다.

나는 그 날 있었던 일을 와이프에게 대략 이야기하고 넘어갔다.

그리고 아내와 그 다음 날은
대학원 일정을 마치고 밤 늦게 들어온 날이었다.

부모님과 아기는 모두 자고 있었고
불 꺼진 방에 자려고 누워 있는데, 와이프가 내게 물었다.
'어머니 무슨 일이 있으셔? 기분이 되게 안좋아 보이시던데.'

'어, 아마 어제 ...... 이러저러 말한것 때문인 것 같아.'

사실 아내가 평소에 불만있던 부분중에 하나가
우리의 생활에 대한 부모님의 직간접적 개입이었기에,
나는 이것에 대해 무어라 대꾸를 한 것에 나름
칭찬 한마디 정도 후에 그래도 그러면 안된다 같은
뻔한 반응을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완전히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었다.

‘나는 사람의 어깨를 보면 너무 슬퍼보여’

'응? 슬퍼보여?'

평소라면 그렇게 하면 자기가 더 곤란해진다던가
말을 짜증섞어 뱉었을텐데
그 날은 무언가 달랐다.

‘사람의 어깨가 쳐져있는걸 보면 너무 슬퍼보여.
왠지 힘 없이 내려가있는 어깨를 보면 그래.
우리 엄마가 시댁에서 힘들게 일했을 때
어깨가 생각이 나 여보.
근데 오늘 어머님이 퇴근하셔서 부엌에서 무얼 하시는데
어깨가 축 쳐져있는 것 같은거야.
근데 그 모습을 방에서 봤는데, 너무 슬퍼보였어.'

나는 왠지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어머님한테 가서 혹시 어제 오빠가 뭐라
한 것 때문에 기분 좀 상하셨지 않냐고, 이야기를 하니까
자식키우면서 상처받는게 한 둘이 아니라고
그러시더라. 너도 키워보면 알 꺼라고'

'여보가 그걸 이야기를 했구나'

'응, 그러시더니 기분이 좀 풀리셨는지
주아랑도 즐겁게 놀아주시고
밥도 같이 먹고 그랬어.
나도 평소라면 괜히 눈치보고 그랬을텐데.
오늘은 왠지 신기했어, 히히'

세상에서 내가 제일 어린것 같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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