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딸

며칠전 퇴근하면서 아파트 주차장에서 딸의 운전
연습을 도와주고 있는 엄마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친구같이 다정해 보이는 엄마와 딸의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지금은 세살인 딸과 저의 20년 뒤의 모습도
저럴까 하며 행복한 상상도 해 보았습니다.

사실 저와 엄마는 그런 시간을 보내지 못했습니다.
엄마는 늦게 결혼하신데다 늦게 아이를 낳으셨고
엄마는 옛날분이셔서 전 학창시절동안
엄마랑 참 많이도 싸웠습니다.

철없었던 그 때는 엄마가 나이가 많은 것도 싫었고
엄마가 나를 이해해 주지 못하는 것 같아
엄마와 딸이 친구같이 지내는 친구들이 마냥
부럽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엄마한테 참 못된 말도
많이 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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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장손인 아빠를 만나 결혼하셨고
아이가 늦어 30대 후반에 저를 낳으시고
내리 딸만 셋을 낳으셨습니다.
지금이야 딸만 셋이라고 하면 해외여행 다닐
팔자라 좋아하지만 저 어렸을 때만 해도 어른들이
지나가시면서 고추 하나 더 낳아야지 할 때였습니다.
게다가 아빠가 대가집의 장손이셨으니 아들 못 낳은
죄인이라는 심정으로 평생을 사셨습니다.
엄마는 지금은 아니지만 그때는 아들만 둘이었던
작은 어머니가 엄청 부러우셨다고 합니다.

게다가 아빠는 그 당시 가부장적 아버지의
표본이셔서 집안일은 항상 엄마의 독차지였지요.
다른 아빠들이 다 해주던 형광등을 가는 일도
엄마가 해야했으니까요. 게다가 1년에도 몇번씩
돌아오는 제사상 차리는 것도 큰 일이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집안일에 찌들고 자식들한테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자신을 위한 씀씀이에는 한없이
인색하셨던 엄마의 삶이 너무도 궁색맞아 보여
엄마처럼은 살지 않겠노라 큰소리도 쳤습니다.

그렇게 20여년이 훌쩍 지난 지금 저도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엄마처럼은 살지 않겠노라
큰 소리 쳤던 큰딸은 어느새 엄마처럼
마흔맘이 되었지요.

저와 제 동생이 시집가서 첫째 아들을 가졌을 때
엄마는 누구보다도 기뻐하셨습니다. 엄마가 딸만
낳아서 딸들도 딸만 낳았다는 얘기를 듣기 싫다셨던
엄마에게 아들 손주는 평생을 가슴 속에 품어두었던
응어리가 조금씩 풀어지는 그런 것이었나 봅니다.
제가 아이를 낳던 날 엄마는 우셨습니다.
"너도 엄마가 되어 봐라"라며 엄마의 입버릇처럼
엄마가 날 낳을 때 이렇게 아팠겠지 생각에
저도 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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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없던 시절 엄마한테 참 많이도 대들고
못된 말들로 엄마 속을 무던히도 뒤집어 놓았지만
지금은 엄마가 우리 엄마라서 참 고맙고 감사합니다.

지나가다 불쌍한 사람이라도 볼라치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주머니 쌈짓돈이라도 털어줘야
했던 엄마, 지금도 딸들이 드시라고 먹을 걸 사다
드리면 콩 한쪽이라도 옆집 분들과 나누고서야
드시는 엄마, 시집간 딸들의 생일날 미역국이라도
끓여 놓아야 밖에서라도 얻어먹을 수 있다시며
귀찮아도 꼭 미역국을 끓이시는 엄마, 7살 생일까지
딸들이 아프지 않고 자라길 바라시며 액땜의 의미인
수수팥떡을 새벽부터 손수 만드시던 엄마,
항상 기도로 딸들을 응원하셨던 엄마,
공부하라는 잔소리 한마디 안 하시며 늦게까지
공부하는 딸에게 빨리 자라고 잔소리 하셨던 엄마,
지금은 열심히 애키우면서 커리어 우먼의 삶을 살고
있는 딸을 누구보다도 자랑스러워 하시는 엄마...

그런 엄마가 우리 엄마였기에 너무도 고맙고
우리 딸에게 내가 그런 엄마가
되어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딸들이 효도할 수 있도록
오래오래 건강하게 그냥 이렇게 우리 곁에 계셔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셋째 낳느라 아주 오랜만에 친정에 와서
엄마가 해주신 집밥도 먹고 딸들끼리 오순도순
이야기 꽃도 피우며 잠들기 딱좋은 그런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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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출처: 1. https://brunch.co.kr/@kim-ochee/15, 2. 네이버 블러그 그림나라사람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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