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장 참여] 남녀 간(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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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은 흔히 남녀가 진정 동성친구처럼 지낼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 아버지도 그렇게 여기시던 분이셨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저 태어나길 남자, 여자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사회적 성별이 확고하며 성정체성이 강하다면 이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정체성이 강하다는 말은 이성애자, 동성애자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성이 얼마나 강한가, 여성성이 얼마나 강한가를 이야기하는 것이니 오해는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하여튼 이러한 이성적 판단에도 인간은 생물적 본성을 뛰어넘은 존재라 반론하고 싶은 나 자신이 충돌합니다.

몇가지 사건들이 있습니다. 10대에 있었던 일입니다. 밤마다 길게 이야기하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하루종일 있다가 집에 들어오는 것이 하루 일과의 끝인데 뭐가 그리 떠들 일이 많았던지, 매일 평균 2시간씩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야기를 듣다가 내가 먼저 잠든 적도 있고, 신나게 떠들다보니 숨소리가 들릴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 친구가 고백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넘겼습니다. 당연히 내가 깊은 유대감을 느끼는 사람은, 내 나름의 기준에서 높은 인간적 매력을 가진 사람일 것이고, 내가 보편성에서 많이 벗어난 사람이 아니라면, 그 가치를 알아보는 남자가 없는게 더 이상한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2년에 걸쳐 몇번 더 고백 받았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중에는 울면서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게 어떤 의미인지는 알았지만,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그 남자가 마음에 드냐고 물었습니다. 그렇다고 합니다. 그럼 사귀면 되는거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그토록 촘촘하고, 깊은 유대감을 형성했다고 생각했던 관계도 쉽게 무너지더군요.

아마 내가 처음으로 이 주제에 고민한 순간입니다. 그 뒤로도 간간히 연락은 하며 지냈지만, 예전 같은 관계로 돌아갈 순 없었습니다. 분명 진정 친구였다면, 관계가 이토록 쉽게 무너질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후에도 이런 여성의 신호를 애써 무시한 적이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점점 노골적으로 표현을 하더군요. 당시 사용했던게 네이트온이었나요? 상태메세지라 하는지 잘 기억은 안 나는데 제 이니셜과 자신의 이니셜을 써두었습니다. 그 외에도 노골적인 메세지가 더 있었으며, 제 앞에서 만취한 적도 있습니다. 만취한 이 친구를 보낸 곳은 찜질방이었습니다. 그래도 탕에는 들어가지 말고, 샤워는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미지근한 물로 하라고 당부는 해주었습니다. 나중에 들은 말은 "나쁜 새끼."였지요.

10대의 마지막에 만난 친구는 남자친구가 '나보다 쟤랑 이야기하는 시간이 많다'는 질투를 하여 연락을 좀 줄이자고 하더군요. 배신감을 느껴서 더 이상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복잡한 감정이 있었습니다. 이상적인 관계에 대한 환상이 있어서일까요, 친구인 나를 소중히 여긴다면 아마도 나와의 관계를 해치는 남자를 사귀진 않았을 것이며, 반대로 그 남자도 자신의 연인을 신뢰한다면 그런 질투를 하진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알고 있습니다. 그 남자친구는 연인을 믿지 못 한게 아니라 남자의 본성을 믿은 것이라는걸요.

너무 심하게 집착하는 친구도 몇 있었습니다. 이 경우엔 여러번 이야기해도 통하질 않더군요. 미안한 일이지만 결국 스팸에 등록한 적도 있었습니다.

반대로 내가 몸이 달아 실수한 적도 있지요. 굉장히 독특한 친구였는데 목소리도 남성적이고 취미도 남성스러웠습니다. 그 남성스러움이 여리고 고운 외모와 겹쳐져서 아주 큰 매력이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남자친구를 원하지 않았으며, 나는 거기에 기대어 이번에는 내가 생각하는 관계를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친구도 많은 남자들의 관심을 받았고, 마찬가지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내 바로 앞에서 고백을 받는건 다른 일입니다. 같이 술을 마시고 있는 자리에 남자가 대뜸 찾아와 고백을 하는 모습을 보고, 차근차근 쌓아올린 관계가 또 다시 무너질까 두려웠습니다. 그 친구는 그 자리에서 바로 거절했지만 난는 결국 몸이 달아 며칠 뒤에 실수하고 맙니다. 결말은 "내가 해줄 수 있는게 없어."

그리고는 가야금을 타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같이 국악 공연을 보러가기로 했습니다. 공연 전에 남자친구가 생겼습니다. 미안하다고 하더군요. 내가 먼저 말을 꺼내야했는데, 어려운 말 하게 해서 미안했습니다. 이 친구와는 그래도 아주 재밌는 추억이 있습니다. 미안한 일이 좀 많았던 터라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는데 "친구라면 미안하다고 하지 마라"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그 후로 걷다가 발을 밟아도 "하나도 미안하지 않아."라 하고 같이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 친구를 통해서는 활자를 통한 의사소통의 어려움과 기분에 따른 해석에 대해서도 배웠습니다. 저는 말을 할 땐 악센트도 강하고, 제스쳐도 많이 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글은 일상적인 문자메시지도 딱딱하게 보내는 편이었습니다. 당시, 초성과 이모티콘을 절대로 사용하지 않았는데 이는 수많은 비언어적 표현을 그 짧은 초성과 이모티콘으로 표현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어설프게 하느니 하지 않는다는 생각이었죠. 그러다 처음으로 초성을 이용해 문자를 보냈을 때 그 친구가 놀라던게 아직도 생생하네요. 본론으로 돌아가서, 그 친구와 사이가 조금 멀어진 시점이었습니다. "착한 척 하지마."라고 반어적인 농담을 보냈는데, 이모티콘도, 초성도 없었습니다. 예전 같았다면 잘 이해했을 농담인데 이 시점에는 그렇지 않더군요. 그 친구는 굉장히 크게 화를 냈습니다. 같은 말도, 말하는 사람, 말하는 사람과의 관계에 따라 크게 다르다는 사실이 와닿았습니다. 이는 이상적인 평등에 반하는 사례입니다. 절대로, 개인은 모든 개인을 평등하게 볼 수 없습니다. 농담이 허용되는 상대, 농담이 허용되지 않는 상대.

한번은 유학가서 연락이 뜸하던 친구에게 연락을 한적이 있었습니다. 이 친구에겐 내 인생에서 가장 잘 그렸다고 할 수 있는 그림을 선물 했었는데 아주 좋아하며 벽에도 걸어두었다고 합니다. 그림에 대한 해석은 내 의도와 달랐는데 결론은 비슷해서 아주 흥미로웠던 기억이 납니다. 추억이 자꾸 새어나오니 글도 자꾸 새어나가는군요. 하여튼, 이 친구와 연락을 하던 도중에 남자친구라는 사람이 연락을 했습니다. 아주 친절한 이야기를 했지만 하고 싶은 말은 "뒤진다. 꺼져라."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저는 무릇 친구라면 서로에게 시간을 많이 투자하고, 생각하는걸 모두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정성 없는 소통의 대상은 '그냥 아는 사람~'이지 친구라 표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대상이 이성으로 향하면 모든 사람이 이를 오해합니다. 이성의 마음을 가지고 노는 나쁜 사람이 됩니다. 이를 미리 밝혀도 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부터가 대부분의 상황에 불가능했던 마음가짐입니다. 이성에게는 '친구'라 할 수 있는 관계가 된 순간 더욱 깊은 마음을 품게 될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나부터가 친구로 대할 자세가 아니었던 것이죠. 그럼에도 이들과 친구가 되고 싶어 그토록 고집을 부렸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니 의식의 나체를 드러내는 것 같아 부끄럽습니다. 나체를 드러내는 김에 내 나체 중 하나인 그림도 보여드립니다. 7년이 지나 그림이 상태가 좋지 않아, 도저히 스캔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 그림은 내가 처음으로 내 마음 가는 그대로 그려본 그림입니다. 모자라지만 배우지 않은 형식, 배우지 않은 방법으로 처음 그린 그림입니다. 사용한 도구는 에어졸, 면봉이며, 아마 하트를 선택한데는 큰 이유가 없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단지 둥근 곡선을 그리고, 날카로운 모서리를 그렸더니 하트가 연상되어 마무리 했습니다. 아직은 형태에 갇혀 있었던 시절입니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라고 하셨는데 배설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글도 참가자격이 있는 것일까요? 글을 계속 쳐다보니 너무 부끄러워 그냥 재빨리 포스트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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