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을 처음 접하는 분들의 반응은 가지각색이지만, 그 중에서 인상적인 것 하나를 꼽자면 “실재하지도 않는 데이터일 뿐”이라는 의구심입니다. 얼핏 생각하면 합리적인 비판이고, 사실 대답하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비트코인을 “실물”로 생각하고 있으며 그 근거를 제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실물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실제로 존재하는 사물입니다. 여기에는 물리적인 존재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고, 실제 우리가 만질 수 있다는 뜻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실물을 중요하게 생각할까요? 그것은 바로 인간이 물리적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물리적인 세계 속에 속박된 존재이기 때문에 물리적인 존재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비용이 들어갑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반대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물리적인 세계에 구애받지 않는 신에게는 금덩어리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창조해버리면 그만이죠. 아니면 오병이어의 기적처럼 복제해버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물리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신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들을 초자연적인 “기적”이라고 합니다.
이제 레벨를 한 단계씩 낮춰서 디지털 세계와 인간으로 가보겠습니다. 디지털 세계에서 인간은 신과 같은 존재입니다. 데이터를 창조할 수도 있고, 복제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디지털 데이터는 인간에게 큰 의미를 갖기 어렵습니다. 만약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어떤 주체가 있어서 복제방지 기술을 적용하고 그 가치를 보증해주어야 합니다. 전자화폐가 한 예입니다.
그런데 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암호화폐는 조금 다릅니다. 비트코인은 분명 데이터 쪼가리이긴 하나 인간이 마음대로 복제할 수 없습니다. 또한 비트코인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실제 물리적 세계의 에너지나 비용을 필요로 합니다 (PoS는 에너지를 사용하는 비중이 낮긴 하지만 “시간”이나 투입된 자본이라는 비용이 존재합니다).
이렇게 놓고보면 비트코인은 실물화폐 또는 실물자산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금은 귀금속으로라도 사용될 수 있다고 반박하실 수도 있겠지만, 실물화폐가 꼭 금 같은 귀금속만 있지 않다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고대 중국에서는 조개껍데기를 화폐로 사용하기도 했고, 얍 섬에서는 돌덩어리가 쓰이기도 했으며 (참조포스팅), 초기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사슴가죽이 쓰이기도 했습니다 (미국에서 달러의 의미로 종종 쓰는 Buck이라는 단어는 숫사슴을 의미합니다). 즉, 사회적인 합의가 있으면 어떤 실물이든 화폐로 쓰일 수 있습니다.
즉, 비트코인은 디지털 데이터이지만 실물과 같은 비복제성과 희소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다른 블록체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비트코인은 현재의 패러다임을 주도하고 있는 신용화폐와는 전혀 다른 시스템을 가지고 있으며, 오히려 옛날에 쓰였던 실물화폐와 더 닮았습니다. 비트코인은 정부가 화폐발행을 마음대로 할 수도 없고, 인플레이션을 주무를 수도 없는 실물화폐입니다.
물론, 비트코인이 실물화폐와 비슷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화폐로서 우월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수수료나 속도, 국가경제 내에서의 가치보존기능 등에서는 현재의 불환화폐를 이길 수 없습니다. 하지만 비트코인은 불환화폐가 갖는 본질적인 취약점에서 자유로우며, 비록 교환기능의 화폐로는 덜 쓰일 수도 있으나 가치보존이나 리스크 헷징 같은 측면에서는 더 유리한 측면이 있습니다.
저는 “비트코인이 현존 화폐를 대체한다”는 의견에는 부정적인 입장입니다. 하지만 현존화폐가 몰락할 때 비트코인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많은 분들이 가격상승을 보고 비트코인인이나 기타 암호화폐를 구매하셨겠지만, 조금씩이나마 그 본질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부족한 내용이나마 적어봤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