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와 인플레이션] 1) 화폐, 신뢰, 그리고 정치와 비트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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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와 인플레이션] 서문) 왜, 지금, 비트코인인가?

지난 글에서 저는 10가지의 명제를 언급한 바 있습니다. 앞으로 그 하나 하나의 명제에 얽힌 역사적 이야기와, 앞으로의 전망을 통해 비트코인이 갈 길을, 우리가 갈 길을 짚어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Theorem 1.

돈은 그 자체로 신뢰다. 돈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화폐가 무너진다. 돈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지 않도록 남용을 막는 것이 정치의 우선적 의무다.

여기저기서 많이 쓰이는 수수께끼를 하나 드려보겠습니다. 위와 같은 수련이 있는 연못이 있을 때. 수련은 매일 두 배씩 증가해서 17일이 지나면 연못을 완전히 덮는다고 해 보죠. 그렇다면, 수련이 호수의 절반 면적을 덮는데는 몇 일이 걸릴까요?

정답은 16일입니다. 간단하죠. 2의 17제곱을 2로 나누면 2의 16제곱이니까요. 그러나 16일에서 17일이 되는 날, 우리는 순식간에 수련이 불어나서 연못을 가득 채운 것 처럼 느끼게 됩니다. 기하급수적 변화란, 이렇게 무섭고 거대하게 다가올 수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이런 기하급수적 변화는 우리가 체감하기도 힘듭니다.

하지만 이런 기하급수적 변화가 우리 생활에 밀접하게 연결된 곳이 한 군데 있습니다. 바로 인플레이션입니다. 심지어 온건한 인플레이션이라 불리는 낮은 인플레이션조차 시간이 쌓이면 우리에겐 엄청나게 다가옵니다. 300원짜리 새우깡 한 봉지가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제가 국민학교 시절에 먹었던 가격이네요.

인플레이션율이 1%라고 가정하면, 1년 후 새우깡 가격은 303원, 10년 후에는 약 330원, 20년 후에는 약 360원이 됩니다. 그렇다면 인플레이션율이 2%라면? 10년 후에는 360원, 20년 후에는 437원이 됩니다. 현재 물가가 약 1500원이니, 실제로 우리가 겪은 인플레이션율은 대략 6%정도 되겠다고 봐도 되겠습니다. 20년쯤 이 물가가 더 오르면 새우깡 한 봉지에 5천원이 되는것도 거짓말은 아니라는거죠.

우리는 보통 군대와 대학을 졸업하고 대략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부터 제대로 된 직장 생활을 시작합니다. 좀 더 일찍 하는 분도 있고, 은퇴를 늦게 하시는 분도 계실테니 40년간 우리가 일을 한다 치면 구매력은 인플레이션율이 2%일때 절반이 되고, 4%일때는 80% 수준으로 감소하게 됩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6%라면.. 더 설명할 필요도 없겠죠.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넣는 연금만으로 과연 노후 대비가 가능할까요? 아니, 그 이전에 돈을 받고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살 수 있다는 국가에 대한 돈의 믿음이 생길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인플레이션에 대해 좀 더 깊게 생각하기 위해, 잠시 시계 바늘을 뒤로 돌려 역사 공부를 해 봅시다. 1700년대 프랑스에는, 현대적 의미의 인플레이션을 일으킨 장본인이 있었습니다. 바로 존 로(John Law)죠. 그의 아버지는 금 세공사였습니다. 금을 맡기면, 일정한 금을 받았다는 영수증을 줬었죠. 그리고 그 영수증을 가지고 가면 금을 줬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파리에서는 저 영수증이 일종의 화폐처럼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죠. 나누기도 힘들고 무겁기까지 한 금덩이를 들고 다니는 것 보다 일정한 금액을 분할해서 잘게 쪼갤 수도 있고, 종이의 형태라 들고 다니기도 쉬웠거든요. 존 로는 여기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루이 14세의 사치와 거듭된 전쟁으로 피폐해진 프랑스로 건너간 존 로는 루이 15세와 오를레앙 섭정 펠리페를 설득하여 최초의 지폐 발행은행인 '뱅크 제네럴(Banque Generale)'을 설립합니다.

고객에게 대출을 승인하고, 예금을 받고, 은행권(지폐)을 발행했죠. 존 로는 국가 부채의 일부를 떠안는 대신, 국가가 은행권(지폐)에 대해 은으로 환급을 해 줄 수 있다는 보증을 서게 합니다. 하지만, 존 로는 아버지에게서 배운 것이 있었죠. 바로 '부분지급준비'입니다. 동시에 모든 예금자들이 은으로 교환해달라고 요청하지만 않는다면, 은행은 그 이상의 돈을 찍어내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거죠. 돈에 신뢰가 있을 때 까지, 리스크는 없다고 생각했던겁니다.

물론 이 원칙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물론 현대의 금융가는 예금자보호법이나 부분지급준비제도같은 법령으로 어느정도 제약이 걸려있긴 하지만, 모든 사람이 한번에 돈을 찾겠다고 몰려가는 순간 은행이 작살나는 현상 (뱅크런)까지 과거의 이 현상과 동일합니다.

그리고 파국의 시간이 다가옵니다. 서인도 회사를 세운 존 로는,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부르봉 왕조(국가)와의 결탁을 통해 서인도회사에 식민지, 흡연자(담배독점권), 납세자를 착취할 수 있는 권리를 얻은 대신 국가의 채무를 떠안기로 한거죠. 이 계획의 마지막 목표는 국가의 부채를 회사의 주식과 맞바꾸고, 금과 은을 지불수단에서 완전히 배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식민지는 불모지였습니다. 아무런 부가가치를 낳지 못했어요. 부를 기대할 수 없었죠. 배당금을 어떻게 줘야 할까요? 네. 폰지 사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새로운 사람에게 돈을 받아 예전에 있던 사람에게 돈을 주는거죠. 그 현상이 겉으로 드러나면서, 서인도회사 주식 매도세가 시작되었습니다. 현금이 부족해진 은행은 화폐를 더욱 발행하여 적자를 메꿉니다. 인플레이션이 급격히 일어납니다. 경기가 과열되고, 물가가 미친듯 올라갑니다.

1720년 10월. 프랑스는 다시 금과 은을 지불수단으로 돌리고 존 로의 화폐를 철폐합니다. 비슷한 일은 스웨덴에서도, 미국에서도, 중국에서도, 심지어 조선에서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국가라는 신뢰가 사라진 화폐가 어떤 꼴을 겪는지, 그리고 경제적 취약계층이 피해를 가장 먼저보고 가장 심하게 본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더욱 무서운 것은, 대부분의 정치가들은 남용을 막지 않았습니다. 못한것이 아닙니다. 하지 않은 것입니다. 많은 경제학 책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적당량의 인플레이션은 경제 성장과 경기 순환에 도움을 준다.' 고요. 일련에서는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존 로의 사건에서 볼테르가 지적했던 것 처럼 지폐의 내재가치가 떨어지는 순간, 차곡차곡 쌓여온 인플레이션은 어느새 무서운 눈덩이가 되어 굴러떨어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사토시 백서의 출범은 여기서 우리에게 새로운 전환점을 주게 됩니다. 바로 정부(등의 권력)가 개입할 수 없는, 탈 중앙화된 화폐라는 점입니다. 그렇기에 비트코인은, 지금껏 명목화폐와 정치환경이 실패해온 실험의 또 다른 해답이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과 기대감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여전히 비트코인은 걸음마 단계를 걷고 있습니다. 초기 코인 투자자들에게 집중된 코인의 편중성, 난이도가 늘어나며 블록 채굴이 지연되면 거래 자체가 지연되는 등의 기술적 한계점, 그리고 주변 자본들로 인한 과도한 변동성과 이로 인한 시장 불안에 이르기까지 비트코인이 넘어가야 할 길은 험하고 멀기만 합니다.

하지만 비트코인은 인플레이션을 활용해 통치자가 채무를 회피할 수 없다는 강렬한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 있는 기능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화폐 붕괴의 본격적인 과정과 더불어 돈과 통치자, 그리고 인플레이션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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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와 인플레이션] 2) 증쇄, 그 달콤한 독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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