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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앨런 그린스펀의 참회와 달러 불신의 세계
2008년 이후의 미국과 이전의 미국은 분명 같지만 다른 나라가 되었습니다. 소련의 붕괴와 함께 냉전 구도에서 승리하며 자본주의를, 민주주의의 승리를 선포한 미국은, 걸프전쟁에서 이라크의 모든 거점을 단 39일만에 F-117과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을 사용해서 파괴시키면서 충격과 공포에 빠뜨렸습니다.
2001년, 9.11 테러가 미국을 흔들었지만, 오사마 빈 라덴 인도를 거부하던 탈레반 정권하의 아프가니스탄 역시 분노한 미국의 폭격 앞에 3개월도 버티지 않고 붕괴되고 맙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만 보였습니다.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라는 신조어가 증명하듯, 미국은 세계의 모든 시장을 열어제끼고 미국의 질서 앞에 무릎꿇게 만들었습니다.
달러는 전 세계 시장의 만능열쇠였습니다. 중동의 석유 시장은 무력을 통한 안정이라는 사탕을 가져다 준 미국 앞에 무릎 꿇었습니다. 유일한 걸림돌이던 이라크는 미국에게 떡이 된 뒤였지요. 금은 그냥 귀찮기만 한 쇳덩어리에 불과했습니다. 달러가 있는데 금이 무슨 문제였겠습니까?
후세인의 축출은 - 의도하지 않았지만 - ISIL이라는 괴물을 낳았습니다.
하지만 균열은 항상 가장 빛날 때 발생하는 법이죠. 2차 이라크 전쟁은 2주일만에 후세인 정부를 무너뜨리면서 또 다시 미국에게 눈부신 승리를 가져다 주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라크라는 수렁은 거기서부터 시작이었습니다. 후세인이라는 억제제가 사라진 이라크 지역에서는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 약칭 ISIL이 대두되기 시작했으며,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당신들에겐 시계가 있지만, 우리에겐 시간이 있다"고 말한 탈레반 간부의 말 처럼, 지루한 소모전이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그린스펀이 만든 저금리 정책은 미국 경제에 부동산 버블이라는 시한폭탄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라는 최악의 형태로 폭탄은 터졌습니다. 주가가 무너졌습니다. 자산, 특히 대부분 대출을 끼고 구매했던 주택 시장이 붕괴되었으며, 미국의 소위 말하는 '자유 경제'에는 수많은 물음표가 던져졌습니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앞다투어 연방정부에 구제금융을 요청했습니다. 조지 부시 행정부가 벌여놓은 전쟁은, 더 이상 자유 수호의 의미를 주지 못했습니다. 가뜩이나 모자란 연방정부의 돈을 빨아먹는 거머리가 되었을 뿐입니다.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과 더불어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졌고, 전 세계적 불황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서민층에게 전가되었습니다.
'월가를 점령하라'시위는 부실은행들이 정부 지원금으로 배당금 잔치를 한데서 촉발되었죠
다시 한번 시계를 조금 뒤로 돌려보겠습니다. 1995년, 미국은 WTO를 출범시켰습니다. WTOWorld Trade Organication, 세계 무역 기구는 '우루과이 라운드'로 대표되는 관세, 비관세 장벽 철폐로 잘 알려져 있지요. '차별 없는 무역'을 추구한다는 WTO는 선진국들과 거대 자본을 가진 글로벌 회사들의 일방적인 자금 폭탄에 후진국과 개발도상국의 문을 강제로 열어제끼는 역할을 했습니다.
1990년을 전후로 발효된 우루과이 라운드로 인해 쌀 시장이 전면 개방되면서 농민들이 도저히 경쟁할 수 없다며 데모를 하던 풍경이 아직도 떠오릅니다. 지금 농민을 중심으로 한 반미 정서는 여기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뭐, 하지만 오늘 이 부분을 중요하게 다룰 건 아니니 일단은 넘어가겠습니다.
여튼, 그들의 무역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WTO라는 무역 장벽 철폐와 소위 '세계화, 국제화'를 통해 세계에 활짝 열린 금융시장을 기반으로 한 금융 자본주의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미국이 고난에 처하자, 미국을 비롯한 G8개국의 목에 바짝 겨누어진 비수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박정희 정권의 저가 미곡 정책은 시장 개방 앞에서 농민들에게 큰 타격으로 돌아왔죠.
비수를 겨눈 그 주인공은 바로 BRICsBrazil, Russia, India, China로 대표되는 신흥국이었습니다. 급격한 산업화를 통해 달러를 꾸역꾸역 쟁여둔 중국과, IMF라는 불길에 한번 데이고 외환보유고와 환율정책에 치를 떨던 한국, 그리고 유가 상승 등으로 인해 실탄을 빵빵하게 채워둔 중동 산유국의 자금들은 바로 활짝 열린 미국 시장에서 돈을 빼먹기 위해 달려들고 있었습니다.
그 이전까지의 달러의 위상과 지금 달러의 위상은 가히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일전에 저는 '화폐는 국가의 신용 그 자체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세계 금융 위기와 그 위기를 어떻게든 모면하고 미루기 위한 양적 완화, 그리고 의도치 않은 인플레이션 수출, 거기에서 벗어나오고자 한 일본의 아베노믹스는 모두 하나의 끈으로 길게 연결된 결과입니다. 축에 빠진 줄도 모른 채, 한수 한수 앞만 보고 도망가게 한 이 정책들은 결국 미국 달러와 일본 엔의 신뢰를 크게 떨어뜨렸습니다.
이 틈을 타 중국-러시아는 변경무역 결제 통화로 위안화와 루블화를 쓰기로 협의하면서 달러화에 다시 한번 큰 타격을 먹입니다. 미국은 당장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경제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이들 국가에까지 통화 스왑을 체결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 빈 자리에 꾸준히 달러를 채워 왔던 중국이 들어온 것입니다. 실제로, 2009년 런던에서 열린 G20 정상회담에서는 BRICs가 달러 중심의 기축통화 체제를 바꾸자는 폭탄선언까지 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백이 아무리 도망가도 결국에는 따라잡혀 죽게 됩니다. 이것이 '축'입니다
비실대는 달러를 어떻게든 살려보고자 IMF는 통화 바스켓으로 구성된 $DR을 세계 통화로 하자고 주장하기도 했으며, 또 다른 일각에서는 인민폐(중국 위안)가 이 제 새로운 기축통화가 되는 것이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들 국가에서 공통적인 행보를 보인 것이 단 하나 있습니다. 심지어 양적 완화를 통해 달러를 왕창 찍어낸 미국까지도요.
바로 금지금의 보유량 증대입니다. 특히 이런 현상은 중국에서 강하게 드러납니다. 오늘날의 경제 상황을 지켜볼 때, 상당히 흥미있는 것은 중국이 미국의 채권을 상당 수 쥐고 있고, 유럽은 그런 중국 회사의 지분을 쥐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중국 입장에선 달러화가 흔들리면 그 손실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리스크가 있습니다. 중국이 흔들리면 유럽 역시 흔들리겠죠.
중국의 선택은 현물시장과 외환 바스켓의 다변화였습니다. 그동안 중국이 보여온 금 싹쓸이나 '총력전'이라 불릴 정도의 국내 채굴량 증산, 그리고 최근까지 있었던 금 거래 통제를 본다면 중국이 탈 달러 시대를 어떻게 준비하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유럽 각국의 기금, 특히 도이체 방크 등의 자금이 미국이 아닌 중국의 성장에 의존성을 지니게 된다면, 중국의 재채기는 유럽에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중국의 채굴장입니다. 그들의 해시파워는 BTC에 여전히 절대적 압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암호화폐 시장에서 중국의 행보 또한 일관된 모습을 보입니다. 중국은 공식적으로 국내에서 암호화폐 거래소를 세우는 것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위안화, 혹은 다른 형태의 외환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는 것입니다. 또한 2018년 초 들어서는 압도적인 해시 파워로 세계 암호화폐 시장을 통제하던 중국 내 채굴장까지 전면 금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뒤에서 일어나는 P2P 거래는 단속하지 않는다거나, 채굴기를 만들어 파는 중국 회사인 Bitmain은 단속하지 않는 등 중국은 암호화폐 시장 내에서의 영향력을 줄이는 행위는 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거래소와 채굴장을 해외로 수출(?) 했죠. 타국의 전력을 쓰고, 자국에 자금이 유입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렇다면 금과 디지털 금인 BTC로 대표되는 현물 가격은 계속 오를까요? 2017년 말 시장처럼 기존 투자자 모두가 수백에서 수천 퍼센트 정도의 이익을 얻는 장이 다시 올까요? 거기에 대해 당장 답변을 내리기는 이를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현물의 가치가 극대화 될 때는, 경제 파국의 위험이 절정에 도달했을 때이기 때문입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연임된다면, 보호무역 정책 기조는 완화될것입니다.
그리고 현재 미국은, 겉보기에는 골디락스 경제 상태에 있는 것 같지만 여전히 양적 완화의 후유증이 언제 터질지 몰라 불안해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고름이 먼저 터져서 암호화폐나 금이 자산 보존의 방안이 될지, 혹은 블락체인 자체가 닷컴 버블이 터지듯 먼저 터질지 확신할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암호화폐가 투기적 자산이자 가치 보존적 효과를 동시에 갖는 양면성 자산이라는 점입니다. 단기적인 골디락스 상태로 인한 호조와 장기적인 불안감으로 인한 매입 - HODL이라 하죠 - 은 암호화폐 시장 자체가 붕괴되는 경우를 제외한다면 어떤 상황에서든 우리에게 자산 상승을 가져올 것이라는 점입니다.
물론 암호화폐에만 모든 자산을 배팅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다양한 자산으로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꾸리시고, 최소한의 유동성은 확보하셔야 합니다. 암호화폐 시장에 진출한 투자자분께서도 하루하루에 손을 떨며 조급하게 스캘핑을 이어 나가기보다, 금과 같이 최소 몇 개월에서 길게는 년 단위로 시장을 보면서 진중히 기다리는 자세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 광주리에 계란을 다 담지 말라는 격언은 언제나 유효합니다.
하지만 그 기다림에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튼튼한 포트폴리오입니다. 기술 백서도 없고, 성장 가능성도 부족한, 오로지 중소 세력의 펌핑이나 상장 효과에만 의존하는 어중이떠중이 알트코인으로 구성된 위험 천만한 포트폴리오가 아니라, 다양한 dApp 생태계를 형성할 수 있는 프레임워크와 커뮤니티와 시장에서 컨센서스를 얻고 있는 항목들로 구성되어야겠죠. 그래야 하락장에서도 편한 마음으로 '존버'할 수 있습니다.
작년 말이 월가의 빅 플레이어가 암호화폐 시장에 CME, CBOE라는 형태로 발을 담군 정도라면, 올해 초는 빅 플레이어의 본격적 진입 준비라고 봐도 될 것이라 봅니다. 시장은 점점 뜨거워지겠지요. 시장이 차가워 진다고 두려움에 모든 손해를 떠안지 마시고, 시장이 뜨거워진다고 또 불나방처럼 따라가지 마시길 바랍니다.
아직 암호화폐 시장은 여전히 미성숙한 단계를 걷고 있습니다. 얼리어답터인 우리가 좌충우돌하면서 헤매는 것도 당연합니다. 게다가 시장엔 각국의 규제와 버블의 공포라는 짙은 안개 또한 끼어 있습니다. 두려워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에겐 그 공포를 이겨낼 성숙한 이성과 지성이 있다고 믿습니다. 공포에 지지 마시고, 모든 신호에 눈을 크게 뜨고 이성적으로 대응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모든 선택과 행동에 필요한 때를 위한 작은 행운이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좋은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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