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가 복잡해졌을 때, 우리는 처음을 떠올린다. 현대미술은 난해하거나 혼란스럽다. 그림이 탄생했던 곳을 돌아보면 의외로 현대미술과 맞닿은 부분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발견 못 해도 좋다. 그림의 거친 원시성, 에너지가 느껴지는 고대인의 힘찬 드로잉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뭔가를 그리고 싶은 욕망이 가득해진다면.
고대인의 입은 팔레트
기원전 3만5천년 전의 알타미라 동굴벽화를 도판으로 볼 때 항상 궁금한 점이 있었다. 윤곽선은 목탄으로 그렸다고 해도, 채색은 어떻게 했을까? 조사해본 결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구나 한 번쯤 김치찌개 먹다가 사래 걸려서 빨간 국물을 밥상에 뿜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당시 인류도 안료를 입 안에 넣고 침과 섞어 벽에다가 쫘아아아아아아악! 뿜었다고 한다. 입이 일종의 팔레트, 에어브러쉬었던 셈이다.
왜 그렸을까? 라는 의문이 남는다. 답은 아무도 모른다. 그동안 많은 학자들에 의해 숱한 가설이 제기되었다. 그 중 오늘날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브뢰이유 신부의 '주술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가상과 현실
양상은 다르지만 고대인들은 현대인들과 마찬가지로 가상과 현실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았다. 고대인은 그림을 통해 현실의 소망을 이루려고 했다. 동굴 벽에 사냥감을 비슷하게 그려 놓고 창으로 찌르거나 하는 행위로 햐여금 현실 사냥에서의 성공을 바랬다. 아무리 고대인들이라고 해도 바보일까? 그림 그려놓고 창으로 찌르는 가상의 행위가 현실에 영향을 미쳤을까? 그런데 놀랍게도..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경험과 지식을 담는 수단
고대인들은 동물을 그린 그림 위에 단순히 손으로 패고 창으로 찌르는 행위가 끝이 아니었다. 일종의 집단적인 '세레모니'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인디언들처럼 수렵무를 추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사냥감을 잡는 퍼포먼스도 연출하기도 했다. 세레모니는 사냥감을 포획하는 전 과정을 담아내고 있었다. 실제 사냥을 위한 절차의 전 과정을 이러한 제의적인 활동으로 재현했던 것이다. 동굴벽화와 세레모니는 그들이 경험에서 얻은 지식을 담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몸짱이 되는 효과
세레모니를 통해 그들은 실제사냥을 나가기전에 충분한 훈련을 할수 있었다. 이처럼 반복된 근력 운동을 통해 사냥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식스팩을 소유할 수 있었다. 또 실제사냥에서 사냥감이 나타났을때 편대는 어떻게 구성하고, 어떻게 구석으로 몰고, 누가 창으로 찌르고, 이러한 전술 작전도 충분히 훈련으로 습득할 수 있었다.
자신감 업! 가즈아!
퍼포먼스의 하이라이트는 사냥감을 때려잡는 것으로써 막이 내린다. 항상 승리로 끝나는 이 극의 구조는 이길 수 있다는 사냥에 대한 자신감을 팍팍! 일으켰을 것이다. 신체 단련과 함께 멘탈까지 업 되면서 동굴 안에서 모두 가즈아! 를 외쳤을 거라고 확신한다!
정보전달의 기능
어른들이 벌이는 이런 한편의 '쇼'는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2세에게 보여졌을 것이다. 2세들은 어릴 때부터 이런 퍼포먼스에 참여함으로써 자연스럽게 테크닉과 기술과 정보들을 습득했을 것이고 그들 또한 그들의 후손에게 지식을 대물림했을것이다.
고대인이라고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드로잉 실력이 정말 장난 아니다. 묘사 실력이 장난이 아닐 수밖에 없는 이유는 위에서 살펴본대로 이 그림이 감상용이 아닌 '생존용' 이기 때문이다. 벽화는 사냥감의 정보를 담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동물의 생김새는 어떠하고, 동작은 어떠하며, 급소는 어디에 있고, 등등... 잘못된 그림은 잘못된 정보를 뜻한다. 잘못된 정보는 사냥에서의 그들의 생존과 관련이 있다. 그들의 정확한 드로잉 실력은 생존에 필수적인 지식이었던 것이다.
다양한 해석가능성
구석기시대의 원시예술은 해명된 것보다는 해명되지 않는 것이 더 많다고 한다. 동물의 번식을 기원하는 토템사상이라는 학설, 나타나는 기호들은 계절을 나타낸다는 학설, 동물로 밤하늘의 성좌의 모티브로 조상신을 기렸다는 학설, 한번에 완성된게 아니라 나중에 오랜시간 다른시대에 걸쳐 완성되었다는 학설.. 우리는 발견된 작은 단서들을 토대로 '정설'이라고 주장해 일반화시켜버리지만 그들의 예술은 우리가 현재 생각하는 것 이상의 훨씬 더 다양한 깊이를 지니고 있을지도 모른다.
고대인들은 그들의 그림에 대해 최종적, 특권적, 권위적인 해석을 거부하고 있다. 바로 이런 다양한 해석가능성은 끝없이 불확실성을 추구하는 현대미술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억지로 연결시켜보기도 하고, 사실 이 모든 것은 UFO 외계인들이 와서 그렸다고도 음모론을 제기해봐도 좋다. 어쨌든 지금 봐도 훌륭한 그림이고 정말 보기에 좋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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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lump